수많은 나의 친구들, 그리고 더 많은 나의 적들은 이스라엘의 무장방어에 대한 나의 관심이 어떻게 열렬한 평화협상에 대한 헌신으로 바뀌었는지 묻는다. 왜냐하면 나는 거의 20년 동안 국방부의 기획국장과 차관, 그리고 총리직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안보관계 직책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내가 해명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설명은 하겠다. 내가 말할 수 있는 전부는, 주로 준비와 무기체제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국방개념에서 국민총화에 기초한 국제적인 안보 및 경제적 고려를 하는 현대적 개념으로 진로를 변경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가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국제적인 변화의 진행은 우리로 하여금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부터 새로운 현실에 맞는 접근 방식으로 바꿀 것을 강요했던 것이다.
통상적인 군사이론은 오늘날의 지리학적인 현실이나 기술적인 위협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 지리학적인 문제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로 야기된다. 자연장애물과 인공장애물, 병력이동, 전장의 위치에 기초한 전통적인 전략상의 물리적 고려사항들은 오늘날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와는 무관한 것이다.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과 같은 방어무기들조차도 거의 쓸모가 없으며 엄청난 재정지출을 필요로 한다. 미사일 문제가 지리적 문제를 대체함으로써 ‘전략적 깊이’라는 용어의 중요성은 감소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없으며 ‘전면적’이라는 용어에 새롭고 끔찍한 의미를 부여해 준 현대식 무기에 대해 군사적 해답은 전혀 없다. 장거리 미사일로 인해 이러한 현대식 파괴도구들은 인구밀집지역을 직격할 수 있으며 시민들은 그러한 무기가 일으키는 엄청난 파괴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다른 해결책이 있다. 관련당사국의 국경을 넘어 치명적인 미사일 사정거리에 있는 전지역을 포괄하는 쌍무협정 및 다자간협정이 그것인데, 이는 해당지역 전체를 대상 범위로 한다. 한 지역내에 있는 국가들은 분규의 대가를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며 비싸게 치르고 있기에 서로 화생방무기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평등하고 안전한 지역안보체제를 유지하는 열쇠는 경제이다. 오늘날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데는 자유무역과 국경개방, 그리고 과학 및 기술에 대한 의존을 필요로 하다. 진정한 국력, 심지어는 군사력까지도 이제는 병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존재한다.
과거에는 국가간의 관계가 영토의 크기, 천연자원, 인구밀도, 위치 등의 양적인 요소에 좌우되었다. 국가들은 이러한 자원들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했다. 이러한 경쟁은 적개심을 낳았고 흔히 무력충돌로 발전했다. 승리자는 실질적인 물리적 자산을 획득했으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승리가 악순환의 새로운 시작이 될 뿐이었다. 또한 새로운 지위는 새로운 조건들에 맞추어 낡은 전략들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20세기의 종말이 다가오면서 국가간의 관계는 새로운 질적인 차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학의 발전과 신속한 통신, 자료수집방법, 고등교육, 인공지능, 첨단기술, 부와 친선을 도모할 수 있는 평화적 환경의 조성 등에 더욱 큰비중이 주어지고 있다. 위에 열거한 요소들이야말로 현대의 국력을 이루는 원천이다. 저울의 추가, 군사력보다는 경제력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군대는 물리적인 대상들을 정복할지 모르지만 질적인 요소들을 정복할 수 없다. 이러한 게임의 무대에서는 군사적 점령의 대상이 되는 목적들은 더 이상 가치를 갖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평화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잠재적인 적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해야하는 어려움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중동에서의 군비증강은 아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기체계와 군사적 하드웨어의 조달 비용은 천장부지로 치솟았다. 이러한 국방비 부담은 한 국가가 중요한 다른 도전들을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고 있다. 결국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농장의 크기보다 중요하며, 첨단기술이 천연자원의 부존량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세계의 여러 곳에서 옳은 것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에게도 진실이다. 운명은 우리를 영토분쟁의 세계로부터 경제적 도전과 인간의 지능발전으로 생긴 새로운 기회의 세계로 데려왔다. 케네디 교수가 쓴 바와 같이 역사는 새로운 승자들과 패자들의 명단을 만들고 있다. 오늘날 중동은 승자이다, 공이 우리 쪽 코트로 넘어와 있다.
중동은 지역 분쟁의 수렁 속에 빠져 있는 것만큼이나 인류의 오랜 지혜가 저장된 보물 창고이다 서구문명의 첫 번째 초석이 여기서 놓여졌다. 이교도 신들의 영역을 파괴하며 세상에 빛을 던진 일신교의 불꽃도 이곳에서 솟아올랐다. 모세와 함무라비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지킬 수 있도록 석판에 새긴 법률에 따라 운영되는 합법적인 정부의 기틀을 이곳에 놓았다. 이곳에서 설교한 선지자들의 뒤를 이어 다른 위대한 종교들의 창시자인 예수와 마호메트가 이곳에서 등장했고, 그들은 평화와 정의 그리고 도덕성들의 원칙들을 모든 인류에게 전파했다. 인류가 자신의 필요에 맞추어 거대한 강들을 다스리고 황무지에서 추수한 곡식을 거두는 등 자연을 길들이기 시작한 곳은 중동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과 동아프리카 지구대 그리고 나일강변에 걸쳐있는 방대한 지역이다. 나일 강 삼각주와 티그리스 강 및 유프라테스 강의 계속, 시나이 사막, 유태의 구릉지대는 모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시민생활등이 싹트고 자란 곳들이다. 그리고 고전적인 그리스 문화의 정수인 이성과 미의 문화가 시작된 곳도 여기이다.
그 외에도 많은 역사가 이 지역을 언급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중동은 전 인류의 복지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 지역은 세계 무역통로의 안보유지와 흥망성쇠를 거듭한 위대한 제국들의 안정에 기본적인 요소였다. 제국의 통치자들은 항상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관심을 기울였다. 중동은 어느 시대에나 선지자와 몽상가, 여행자와 탐험가, 무역업자와 모험가, 투사와 통치자의 상상력을 이글거리게 했다. 3대 종교의 추종자들과 신의 계시를 믿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이 지역을 통해 상상력을 불태웠다. 하나님의 사도들이 전능한 신의 말씀을 세계에 전파하기 시작한 곳도 바로 중동이다. 도한 사람들은 이 지역의 자연환경에 매혹됐다. 불타는 백색 모래벌판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지평선 너머로 오래 전에 사라진 에덴동산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찾았다. 따라서 중동은 교역과 여행의 중심지 구실만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천국의 문에 이르는 길인 영적 생활의 중심지이고 했다. 따라서 외세의 이해관계와 기대가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중동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못된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 중세의 십자군, 현대의 프랑서, 영국, 러시아, 미국 등 열강 지도자들이 어느 시점에선가 한 번 이상은 중동에 관심을 집중했으며 중동에서 일어난 사태에 개입했고, 중동의 전략적 거점들을 점령했으며 중동의 사태발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했다.
20세기 후반에 식민지들이 해방되면서 중동 사태에 대한 서구의 개입과 이 지역에 대한 패권 다툼은 중동이 서유럽의 국가 개혁과 경제에 대한 관여를 증가시키는 것과 함께 가중되었다. 일부 아랍 산유국들이 1970년대의 석유위기와 욤키푸르 전쟁에서의 위기를 이스라엘에게 불리하게 적용시키려고 획책함에 따라 20세기 중동과 서유럽의 역학관계는 새로운 분수령을 맞았다. 그러나 1974년 겨우내 추위에 떨며 몇 시간식 줄을 서서 휘발유를 구입했던 서유럽인들의 고통도 중동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은 중동전에 자극받아 군비증강을 맹렬히 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엄청난 자원이 군사력 구축으로 전용되었다. 그것은 그 규모의 당사국들의 경제-사회적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중동 전역이 경제적인 침체에 빠졌다 중동의 엄청난 개발 잠재력은 길가에 버려진 채 주민들의 복지생활은 외면당했다. 아랍-이스라엘 전쟁의 장기화는 불가피하게 수백만 주민의 지속적인 고통을 초래했다.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좌절하여 신비주의와 내세신앙에 빠져들었고, 현대적인 국가 체제를 거부한 채 종교적인 원리주의를 탐닉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오늘날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고 전 세계적인 국가들의 이익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전 세계에 사는 10억이상의 회교도들이 중동을 생명의 원천이요 신앙의 샘물로 생각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극동,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회교도들은 기도를 올릴 때 매카를 향해 절을 하며 매년 수만 명이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한다. 그들이 찾는 메카와 메디나, 예루살렘과 카이로, 다마스쿠스와 바그다드는 모두 회교도들에게 영감을 주는 문화와 가치의 중심지들이다.
회교문화가 현대 과학과 철학, 수학, 문학, 예술, 무역에 기여한 공로를 감안하지 않고는 서구문명의 역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회교주의의 르네상스를 목격하고 있다 오늘의 회교부흥은 서구적 가치와 문화에 대한 반대, 근대화의 외면, 독재적이고 압제적인 회교공화국 건설을 위한 무력사용의 촉구 등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회교의 과격파 가운데 하나인 시아파는 격렬한 민중혁명을 통해 호메이니를 이란에서 집권시켰다. 또 다른 종파인 수니 파는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을 배후조종했고 현재는 아랍의 최강국인 이집트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의 절대군주제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으며 더욱 온건한 수세안 요르단왕을 노리는 하편 시리아의 아시드 대통령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 가운데 회교 과격파들은 정신적 영역이나 회교사원의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주민들에 대한 통제와 영향력 행사를 놓고 싸우고 있다. 회교 원리주의자들이 발표한 모든 성명들은 두 가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빈곤을 종교적-도덕적 용어로 도식화하여 표현하는 동시에 그들은 회교도들의 곤경도 대변한다. 단순하고 선량한 신앙생활을 위협하는, 근대화와 자유주의 여건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독실한 회교도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근대화 과정이란, 내세에 에덴동산을 실현한다는 약속을 현세에 시키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다. 회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현세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내세의 극락생활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그리고 내세로 가는 길은 종교적 원리주의 혁명이다. 그러므로 현재 중동의 여러 지역을 삼키고있는 원리주의 물결은 사회적 질서의 안정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불안정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이나 태동하는 평화과정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회교원리주의가 이스라엘을 압제적이고 이단적이며 제국주의적인 정부에 봉사하는 이질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회교 원리주의의 본질적인 근대화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동 회교 원리주의의 전형적 상징은 호메이니이다. 그가 세운 정부는 팔레비 왕이 이룩한 진보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서방의 모든 것을 집단적으로 증오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수립되었다. 그러나 호메이니는 서방으로부터 한 가지 원칙을 빌려왔는데, 그것은 결함을 지닌 압제적인 두가지 정부 형태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는 모두 근본적으로 세속적이며 신의 존재와 마호메트의 가르침을 부정하며 시민들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이탈자는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메이니는 이러한 독재적 통치방법을 세속적인 이념의 이름으로서가 아니고 ‘알라의 이름’으로 채용했다. 그는 신의 의지를 실현한다는 주장 아래 자신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탄압하는 권리를 장악했다. 그의 신권정치는, 서방사회의 무능에 당혹감을 느끼고 서방사회가 약속한 경제-사회적 번영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에 실망한 대중들에게 해답을 줄 수 있도록 현대사회의 복잡성에 맞추어 재단된 것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세계를 이해하는 데 혼란과 어려움, 그리고 고통을 느끼는 젊은 세대 전체에게 호메이니의 해답은 단순하고 명료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해답은 적극적인 정신적인 만족을 주고 행복한 내세로 가는 구체적인 길을 보여준다. 청년들은 호메이니가 해석하는 회교의 가르침만 따르면 된다. 구원의 열쇠는 개개인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호메이니를 추종하는 시아파와 회교의 형제애를 주장하는 수니파에 대한 시반교수의 비교연구는 두 종파가 주장하는 바가 매우 유사한 사실을 밝혀냈다.
진단 : 20세기 들어 현대의 회교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 당면한 위협은 범위와 깊이 면에서 사상 유례가 없이 크다. 이번의 위험은 회교의 속성과 운동내부에서 야기된 것이다. 국가의 이익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민족, 사회주의, 자유주의, 경제개발, 민주주의 등 서방 이데올로기의 ‘마법약’을 자발적으로 주입했다. 이러한 마법의 약에 ‘취한’ 회교도들은 ....... 이름만의 회교도이고....... 그 결과 회교세계는 이단상태에 빠져들었으며 그러한 상태가 가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처방 : 진정한 신도들은 그들이 오랜세월동안 망각했던 정치의 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회교의 탈을 쓴 근대화의 모든 측면들을 체계적으로 엄하게 비판해야 한다. ....... 회교 과격파들은 기성정권들의 정통성 상실이라는 불가피한 결론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조치 : 그러한 강력한 정권들의 정통성 상실은 준비단계를 거쳐 무장봉기를 통해 회교의 정치적 선봉들에 의한 정부장악으로이어져야 한다.
호메이니의 추종자들이 회교혁명을 확산시키려고 하는 것은 과연 놀라운 일인가? 팔레비 왕과 그의 개혁적인 ‘녹색혁명’의 뒤를 이어 호메이니는 회교도들의 ‘천상의 혁명’이랑 깃발을 내걸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전세계적인 ‘해방’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호메이니’는 체제 자체에서 생겨난 본질적인 개념의 소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중동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공산주의가 파멸함에 따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킨다는 원칙을 신봉하는 유일한 집단으로는 호메이니 추종자들만이 남게되었다. 지상에 알라와 성스러운 회교도 왕국을 건설한다는 지고한 혁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이나 뇌물제공, 절도, 살인도 허용되는 집단이다. 회교원리주의는 테러분자들에게 에덴동산에 들여보내 주겠다고 보장하며, 테러분자들은 내세의 축복받은 영생을 얻는 대가로 저열하고 비참한 이승의 짧은 인생을 얼마든지 버릴 태세가 되어있다. 그들이 소위 말하는 사명에 열렬히 헌신하고 신앙의 제단 위에 자신을 희생할 용의는 위험천만한 희망을 퍼뜨리는데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21세기의 문턱에 서 있는 현시점에서도 진보와 발전을 위한 중요한 인물들의 능력이 질식당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은 최근 이란이 핵개발 능력을 획득한 데서 구체적으로 실감할 수 잇다. 천상왕국의 열쇠를 갖고 있다고 믿는 과격주의자들이 핵능력을 보유했을 때 과연 어느 정도의 합리주의를 필요로하는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우리는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란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가 핵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과 쿠르드 족 봉기를 진압할 때 이미 화학무기를 사용했다. 이라크의 후세인이 핵무기를 얻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세계가 새삼스럽게 놀라움을 표시하고 충격을 받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또 다른 형태의 과격분자인 이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핵이라는 민감하고 지극히 위험한 분야에서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고 있다. 종교적인 광신자들의 손에 들어간 핵무기의 위험은 대단한 것이다. 가까운 인접국가와 인접지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대한 위협이 된다. 회교 원리주의와 미사일 , 그리고 비재래식 무기의 가공할 만한 결합은 국제평화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세계가 좁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중동의 지속적인 분쟁은 이러한 위험을 더욱 가중시킨다. 장기화되고 있는 레바논의 비극적 사태와 희망없는 쿠르드족의 독립투쟁, 수단의 내전, 1980년대의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의 계속되는 패권다툼, 쿠웨이트를 병합하려 드는 후세인의 권력야욕, 끝으로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모두 개발과 발전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것이다. 이 지역의 건설과 개발에 대한 투자대신 군비경쟁, 무력증강, 전쟁 파괴가 이 지역의 주요한 자원들을 낭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가장 해독이 큰 위협은 호메이니 주의의 확산이다. 호메이니를 추종하는 과격파들은 그들의 거대한 석유산업 덕분에 연간 150억 달러의 수입을 제멋대로 지출할 수 있다. 현재 이라크의 군사적 지위에 비추어 볼 때, 이란은 전략적 우위를 누리고 있으며, 이란의 회교지도자들은 이집트와 수단에서 터키에 이르기까지 손 닿는 모든 나라에서 회교혁명을 부채질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가운데서 이란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자원이 풍부한 동부지역에서 시아파 과격분자들이 준동하고 있다. 적당한 시기가 오면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일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도자인 페드랄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은 사람이 먼저 일을 벌여야 한다. 왜냐하면 알라는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기 때문이다.”
시아 파와 마찬가지로 수니 파 과격분자들 또한 ‘죄지은’정치 지도자들을 제거하는 것을 성스러운 행위로 간주하며 어떠한 수단을 동원해도 좋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 명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지하드’, 즉 성전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조국을 바스 추종자들한테서 완전히 해방시킨 다음에야 이스라엘과 맞서 싸울 것이다.” 시리아의 회교 원리주의 테러 단체인 비흘라브의 지도자인 아부가 아사드 대통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폭동이 진압된 다음 재판관들 앞에서 한 말이다. 사다트 대통령을 암살한 지하운동 단체의 이론가인 파루지는 최근의 저서에서 유사한 주장을 폈다.“현재의 지도자들이 적이다. 우리는 당면 임무는 이러한 지도자들과 싸우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진정한 회교 지하드이다. 모든 회교도들이 자신의 땀을 쏟고 피를 흘려 완수해야 할 지상의 임무다.” 따라서 최근 요르단과 알제리에서 그들의 우호세력이 총선에서 거둔 성과와 이집트에서 점증하는 과격파들의 끊임없는 압력은 중동 전역을 위협하는 회교 원리주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변지역들 조차도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구소련의 와해로 탄생한 신생회교공화국들도 마찬가지로 취약하다.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역사의 십자로에 서있다. 한쪽 길은 현대화와 개인의 권리, 종교와 정치의 분리, 민주주의 , 번영을 향해 간다. 다른 길은 메시아주의, 극단주의, 노예제도, 전체주의 , 비합리성, 빈곤을 향해 간다.
이러한 신생국들이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회교 원리주의의 성장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대변하는 사회적 항의는 정당하다. 회교원리주의는 문화적 유산에 바탕을 두고 오랜 세월 인정받으며 신성시된 것으로서 외부세계에서 도입된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이러한 항의운동을 촉발했는지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이 운동의 확산을 막는 방법을 결정하기 앞서 그 운동의 유형과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통탄할 만한 결과를 빚은 최근의 요르단과 알제리의 총선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대적인 계층구조와 합리적인 부의 분배, 하층계급에 있어서도 비교적 상당히 높은 생활수중, 자치주의 등이 결여된 사회들에 있어서는 독재체제가 서구식의 민주주의로 반드시 교체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종교적 극단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이 큰데, 이는 국가의 주권이 아닌 지고한 권위를 소망하는 민중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당지배와 보수적인 군주제도, 혹은 군사정부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경제 및 사회의 발달과 안정보장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민들은 새로운, 또는 개혁된 사회기관과 정치체계에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 그리고 시민의 충성이 없는 상황에서는 민중의 고통을 이용하는 선동가들이 득세하여 민중의 지지를 얻는다. 이라크의 작가 미하아가 지적한 것처럼 위기사태는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는 언어와 이슬람 정치의 언어사이에서 야기되며 회교정치는 오늘날 중동의 정치에 새로운 문화의 도입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한다. 결론을 말한다면 민주주의 가치관은, 제도적 민주화가 근대화, 대외개방, 사회적 번영을 수반하지 않을 경우 민중에게 동화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민주적 질서에 익숙지 않고 그에 수반되는 기본권을 잘 모르는 지역에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따라서 경제-사회적 개발이야말로 중동의 민주화 성공의 시금석이다. 전세계 석유자원의 60퍼센트가 중동에 집중해 있다. 중동의 시장잠재력은 거대하다. 중동의 시장 건설은 엄청난 도전이며, 그것을 성공할 경우 이 지역에는 무한한 지회가 주어질 것이다. 민주화는 지역 및 세계평화에 대한 위험을 종식시킬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회교 원리주의의 요람인 빈곤과 무지부터 극복해야 한다. 근대화에 반대하는 운동은 서구에서 도입한 경제적 사고방식 및 기대와 현실의 괴리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괴리는 낮은 1인당 국민소득과 GNP, 신분상승의 장애, 높은 실업률, 과밀한 인구, 제한된 생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익이 생길지라도 거대한 국방예산에 삼켜지고 만다. 사막지대는 확장되고 수자원은 줄어들고 있다.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해당지역의 경우 심각한 문제이다. 결국, 전쟁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확인된 도구이며 전투의 함성과 깃발은 비판과 논쟁을 억압한다. 그러나 거대한 군비투자와 안보분야의 지식 및 인력의 집중은 다른 사회적 고려를 희생시킨 대가이며 민중의 빈곤과 고통을 야기하여 급기야는 광신주의와 원리주의, 그리고 사이비 메시아주의를 불러들인다. 이러한 악순환을 깨뜨리기 위한 해결책은 자명하다. 적대감정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15년 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결연히 실행했듯이 전쟁의 중단을 결정하는 것이다. 더 이상 유혈사태를 불러서는 안된다. 자식을 잃은 부모, 고아가 된 어린이들, 울부짖는 미망인들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된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및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평화는, 설사 가장 위험한 것의 제거는 아닐지라도 중요한 긴장의 원천을 제거하게 될 것이다. 피와 눈물의 암울한 전망대신 행복과 아름다움, 생명과 평화의 미래상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십자로에 서있다. 우리는 신랄한 상호비방과 솟구치는 포연, 피의 강물로 가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꽃피는 사막, 복원된 야생의 황무지, 진보와 성장 정의와 자유로 가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자국민에게 암살당한 라빈총리와 함께 아라파트와의 회담을 성사시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시몬 페레츠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