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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49.전숙열전(田叔列
게시물ID : history_181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3
조회수 : 75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25 02:08:29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http://www.podbbang.com/ch/6526   <ㅡㅡ 팟캐스트를 들으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

blog.daum.net/carilla


*전숙열전(田叔列傳)

 

이야기의 순서가 잠시 앞으로 돌아간다.

오늘의 이야기는 고조가 항우를 멸하고 한 제국을 창건한 당시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결국 이야기는 사마천이 살아있던 한무제시대에 가서야 끝을 맺게되니

그 시간의 흐름이 매우 빠르다.

 

이 즈음의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와 함께 반고의 한서(漢書)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사마천의 사기에 누락되거나 미흡한 부분을 저소손이 보충한 부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후미에 등장하는 임안 이라는 사람은 사마천이 자신의 심경을 적은 서신을 보낸 친구로

사마천의 이야기를 그린 반고의 한서 '사마천전'에 수록된 보임안서 에 등장하는 바로 그사람이다.

 

이 당시는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드는 무렵이므로 등장인물들에게 요구되는 사상은

신의나 절개 등이었던것으로 보인다.

 

절개를 지키기에 신실하기 그지 없었고 의로운 마음은 청렴결백을 주장할만 하였다.

전숙은 자신의 신념을 지켜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전숙의 일생과 함께 그 아들 전인.그리고 임안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월만즉휴 물성즉쇠(月滿則虧 物盛則衰)

 

전숙(田叔)은 조나라 형성 사람이다.

그는 제나라의 명문 전씨의 후손 이었다.

전숙은 검술을 좋아 했고 또 악거공에게서 황제.노자의 학문을 배웠다.

그는 청렴 결백 했으며 뜻있는 인사들과 교제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았다.

 

조나라 사람들이 그를 조나라 재상 조오에게 천거 했고 조오는 또 그를 조왕 장오에게 추천했다.

조왕은 그를 낭중으로 삼았다.

 

전숙이 평소 진절하고 청렴.정직.공평한 인물이어서 조왕도 그를 인정 했지만

미처 승진을 시켜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때에 진희가 대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7년

고조가 친정하여 진희를 주살하고 조나라를 지나갔다.

 

조왕 장오는 손수 밥상을 들고 고조에게 식사를 올리며 매사에 예의를 다했다.

그러나 고조는 상위에 두 다리를 올리고 조왕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심하게 모욕하고

무수한 결례를 범했다.

 

조나라 재상 조오나 관고등은 크게 분개하여 조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황제를 섬기기를 모든 예를 다하였는데 폐하의 태도는 참으로 오만합니다.

저희는 도저히 참을수 없으니 반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대왕께서는 저희의 청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조왕장오는 대경실색하며 말했다.

"무슨말이오.

나의 선왕이 나라를 잃었을때 폐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의 시체에서는 한창 구더기가 끓고 있을것이오.

어찌 감히 그런말을 하는가?

나는 못들을것으로 할테니 다시는 그런생각을 하지 마시오."

 

대신들이 물러나왔으나 분이 풀리지 않아 다시 모여 논의 했다.

"우리 왕은 유덕하신 분이라 은혜를 결코 잊지 못하는분이오.

그러니 우리끼리 모의하여 고조를 죽입시다.

만일 성공하면 그것은 우리 왕의 홍복이요 실패한다면 그것은 우리들만의 죄이니

그 책임은 우리가 지면 될 일이오."

 

그리하여 관고.조오등이 조왕 몰래 고조를 죽이려고 만반의 준비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모의가 사전에 누설 되었다.

고조가 칙령을 내려 조왕과 모반에 동조한 신하들을 모조리 체포하도록 명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조오등 관련 대신들은 모두 자살 하려 했다.

그러나 관고는 죽지 않고 화를내며 그들을 꾸짖었다.

 

"누가 그대들에게 그 일을 시켰는가?

우리의 왕은 실제로 우리들이 꾸민 음모를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그대들이 모두 죽어버린다면 우리 왕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누가 밝힐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관고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조왕과 함께 체포되었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조왕과 관고를 장안으로 압송하며 조서를 내렸다.

ㅡ조나라 사람으로 감히 조왕을 따라 장안으로 오는자는 삼족을 멸할것이다.ㅡ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서.전숙등을 비롯한 10여명이 머리를 삭발하고 붉은 옷을 입고

목에 사슬을 걸고 발에 차꼬를 차고 왕의 노예임을 스스로 선양하며 조왕의 함거를 따라 장안으로 들어갔다.

 

관고의 변론으로 조왕이 모반에 가담하지 않았다는것이 밝혀지자 조왕 장오는 석방 될수 있었다.

그러나 왕위는 폐해졌고 선평후로 강등 되었다.

 

얼마후 선평후 장오가 자신을 따라온 10명의 신하들을 선처 해줄것을 건의하자

고조는 그들을 불러 만나 보았다.

 

고조가 만나보니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능력있고 한나라의 신하들보다 현명했다.

고조는 기뻐하며 그들을 모두 군수나 제후들의 재상으로 임명 했다.

이때 전숙은 한중의 태수로 임명 되었다.

 

전숙이 약 10년정도 한중 태수로 있는 사이에 고조가 붕어 했고 여태후 마저 죽었다.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여씨 일족을 주멸하고 효문제를 세웠다.

 

그때 효문제는 전숙을 불러서 물었다.

 

"그대는 지금 천하에서 누가 가장 유덕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제가 어찌 감히 그것을 알겠습니까?"

"그대가 유덕자이니 알고 있을것 아니오?"

"저는 아닙니다.

그러나 굳이 물으시니 말씀 드리면 전날의 운중태수 맹서가 유덕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 당시에 흉노가 한의 변경을 자주 약탈 했는데 운중군의 피해가 가장 커서 맹서에게 책임을 물어

면직 시켰기 때문에 황제는 깜짝 놀랐다.

 

황제가 물었다.

"선제께서 맹서를 10년간이나 운중태수로 두셨소.

그런데 성을 굳게 지켜 나가싸우지 말라고 했는데도 맹서는 나가 싸우다가 부하 사졸들이 수백이나 죽었소.

그러한 자가 어찌 유덕자란 말이오?"

 

"바로 그것이 맹서가 유덕자인 증거입니다.

조나라 관고 등이 모반하자 조정에서는 조왕을 따라 장안으로 들어오는자는 삼족을 멸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맹서는 자진해서 머리를 깎고 차꼬를 차고 조왕을 따라 죽기를 각오하고 장안으로 왔습니다.

그가 어찌 자신이 죽음을 면하고 운중태수가 될것을 알았겠습니까?

 

흉노선우 묵특이 북방을 정복하고 승승장구하여 쳐들어 왔습니다.

흉노가 쳐들어 왔을때 운중의 사졸들은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병사가 지친것을 아는 맹서가 어찌 사졸들에게 나가 싸우라 했겠습니까?

그러나 사졸들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위하고 아우가 형을 위하듯 달려나가

싸우다가 죽은 전사자가 수백명이었습니다.

이것은 맹서가 서졸들을 싸움에 내보낸 것이 아니고 사졸들이 스스로 나가 싸우다가 죽은것이니

그것이 바로 맹서가 유덕자인 증거입니다."

 

황제가 탄식하며 맹서를 칭송하고 즉시 맹서를 소환하여 다시 운중 태수로 삼았다.

 

몇년후 전숙은 법에 저촉되어 관직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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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제때 양효왕이 자객을 시켜 원앙을 암살한 일이 있었다.

황제는 일이 괴이하여 전숙을 불러 양나라 사건을 조사 보고하게 하였다.

 

전숙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돌아오자 효경제가 물었다.

"양효왕이 정작 그런일을 저지른거요?"

"그러하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더이상 이 일을 추궁하지 마시옵소서."

 

황제가 의아하여 그 이유를 묻자 전숙이 대답 했다.

"이 일을 밝히고도 양왕을 주살하지 않으면 한나라는 법이 시행되지 않을것이며

만일 법을 지켜 양왕을 죽이게 되면 황태후께서 상심하여 음식을 드셔도 맛을 모를것이며

누워도 잠을 주무시지 못하실것이니 폐하의 처지는 딱하게 되고 남는것은 근심 뿐일것 이옵니다."

 

말을 들은 효경제는 고민끝에 결국 양나라의 문제를 묵살해 버렸다.

효경제는 이일로 전숙이 몹시 현명하다는걸 다시한번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노나라 재상으로 임명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전숙이 노나라로 부임하자 백성 백여명이 몰려와서 그에게 호소 했다.

"왕께서 저희의 재물을 탈취 해가셨습니다.

선처 하여 주시옵소서."

 

전숙이 노하여 말했다.

"노왕은 너희의 주인이 아닌가?

주인이 자신의 물건을 취하는것도 탈취인가?

감히 주인을 비방하다니!"

 

전숙은 주동자20명을 붙잡아 곤장 50대를 치고 손바닥 20대를 친뒤 쫓아 버렸다.

 

노 왕이 그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 했다.

그래서 노왕은 전숙을 불러 부고의 재물을 내어 백성들에게 변상하게 하였다.

 

전숙이 말했다.

"그럴수 없습니다.

빼앗는것은 왕께서 하시고 갚는것은 재상에게 하라 하시면

왕은 악행을 저지르고 재상은 선행을 하는것이 됩니다.

저는 이 일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왕은 직접 백성들을 불러 보상 하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노왕은 사냥을 좋아 했다.

그래서 전숙은 항상 왕을 호종하여 어원으로 갔다.

 

전숙은 항상 뙤약볕에 서서 왕이 사냥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노왕은 항상 전숙에게 관사에 들어가 쉬라 했지만 전숙은 말을 듣지 않았다.

"왕께서 바람과 햇볕 속에 옥체를 내 놓으시고 고생 하시는데 내 어찌 관사에서 편히 쉬고 있겠는가?"

 

그렇게 되자 결국 노왕은 그 이후로 오랜시간동안 사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전숙이 관직에 있다가 죽자 노왕이 백금의 황금을 주어 그의 장례에 쓰도록 했다.

막내아들 전인(田仁)이 받지 않으며 말했다. 
"백금의 돈으로  돌아가신 부친의 명성을 훼손시킬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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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田仁)은 신체가 건장해서 대장군 위청의 사인이 되었다.

위장군이 흉노를 칠때 따라가 공이 있어서 위장군의 추천으로 낭중이 되었다.

나중에 전인은 녹봉2000석의 장사가 되었다가 면직 되었다.

 

그후 효무제가 전인에게 삼하지방을 감찰하게 하였는데

그 결과를 보고하는 내용이 좋아서 효무제가 그를 경보도위로 삼았다.

한달여 후 그는 다시 사직으로 승진 했는데 그때 태자의 난이 일어났다.

죄승상 유굴리가 사직인 전인에게 군사를 이끌고 성문을 지킬것을 명했지만

전인은 고의로 황태자를 도주 시켰다.

전인은 그 죄로 형리에게 넘겨져 주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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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말미에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공자께서 말하시기를

ㅡ내가 가는곳마다 그 나라의 군주가 내게 정치에대해 의견을 물었다ㅡ 고 했는데

전숙도 바로 그런 입장이었던듯 하다.

그는 의를 지켜 현인을 버려두지 않았고

군주의 미덕을 드러내어 과실에 빠지지 않게 했다.

 

전인은 나와 잘 아는 사이이므로 그에대해 자세히 논할수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른 편과 달리 이번편은 여기서 끝을 맺지 않고 추가되는 부분이 있다.

후대의 사가 저소손이 사마천이 빠뜨린것이나 잘못된점 등을 보충한 내용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저선생(褚先生)이 말한다.

내가 낭 으로 있을때 들은 말인데 전인은 본래 임안(任安:任少卿)과 친분이 있다고 했다.

 

임안은 형양 사람으로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므로 곤궁하여 남의 수레를 끌다가

어찌어찌 장안으로 흘러들어갔다.

거기서 하급 관리라도 되어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호적을 만들어 무공으로 가서 정착했다.

무공은 파촉으로 가는 길의 작은 읍이었기때문에 인구가 적어 호걸들이 없었으므로

남의 우두머리가 되기 쉬울것이라 생각하고 그곳으로 간것 이었다.

임안은 처음에 도둑잡는 일을 하다가 정부 가 되었다가 나중에 정장이 되었다.

 

임안은 고을 사람들이 사냥을 나가서 잡은 사슴이나 꿩.토끼 등을 사람들에게 분배하고

사냥할 때의 맡은 일도 노인과 어린아이 및 장정들을 어렵고 쉬운 것을 구분하여 안배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며 말했다. 

 

"임소경은 분배를 매우 공평하게 하니 지략이 있는 사람이다."

 

그 이튿날에도 고을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임안이 잠시 둘러보더니 말했다.

 

"어제 왔던 장씨네 세째아들은 오늘은 왜 나오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임안의 눈썰미를 신기하게 여겼다.

 

 

그후에 임안은 다시 삼로의 벼슬에 오르고 다시 친민으로 추대 되었다가

녹봉 300석을 받는 관리로 임명 되었다.

그러나 황제의 행차가 지나갈때 맡은일의 준비가 미흡하다는 죄로 파면되고 말았다.

 

임안은 대장군 위청의 사인으로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전인을 만나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었다.

 

두사람은 가난했기때문에 가감에게 뇌물을 주어 환심을 살수 없었다.

그래서 두사람은 사람을 물어뜯는 사나운 말을 기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두사람이 한 침대에 누워 자다가 불평했다.

"가감은 사람을 볼줄 모른다."

"대장군도 사람을 볼줄 모르는데 어찌 가감따위가 우리를 알아보겠는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두사람이 위장군을 따라 평양공주의 집에 가게 되었다.

공주의 집에서는 두사람을 노비 정도로 대하여 홀대하고 식사도 같은 자리에 앉아 먹게 하였다.

임안이 칼을 뽑아 밥상을 내리쳐 둘로 잘랐다.

그리해서 두사람은 독상을 받은것처럼 따로 앉아 밥을 먹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황제가 조칙을 내려 위장군의 사인들 중에 뛰어난 인물을 가려뽑아 낭으로 삼겠다고 했다.

위장군은 사인들중에 부유한 자들만 골라 말안장을 호화스럽게 치장하고

붉은 옷을 입고 옥이 달린 검을 차게 하였다.

 

위청의 집으로 사람을 선발하러 온것은 현명하기로 소문난 소부 조우였다.

조우가 세밀히 심사한후에 실망한듯 위장군에게 말했다.

"장군의 집에 이토록 쓸만한 사람이 없소?

저것들은 모두 쓸모없는 것들 뿐이오.

자고로 ㅡ주인을 알기위해서는 그 아랫사람들을 보라ㅡ 고 했소이다.

천자께서 굳이 장군의 사인들중 인물을 천거하라는것은 그들을 통해 장군을 알고자 하시는것인데

저렇게 겉만 번지르르한 자들만 골라 내게 보여주시니 폐하께서는 몹시 실망하실 것입니다.

 

위장군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별수 없었다.

"대부께서는 내가 선발한 열명만을 보셨지만 내집에는 그 외에도 90여명의 사인이 더 있으니

그런 별볼일 없는것들도 모두 보시겠소?"

"기왕 온것이니 그럽시다."

 

그리하여 조우는 나머지 90여명도 모두 만나 보았다.

그리고 나서 위장군에게 말했다.

"됐소이다.

저 두사람이야 말로 쓸만한 재목이오.

나머지는 아무 쓸모가 없소이다."

 

위장군이 보니 거지꼴의 임안과 전인 이었다.

조우가 돌아간후 위장군이 두사람에게 말했다.

"그 꼴이 무언가?

각자 알아서 좋은 안장과 붉은 비단옷을 마련하라."

두사람이 대답 했다.

"저희는 가난해서 그런것들을 갖출 형편이 못됩니다."

위장군이 화가나서 외쳤다.

"그대들이 가난한것이 나때문이라는 말이냐?

너희를 폐하께 추천하는것인데 마치 나에게 은덕이라도 베푸는것처럼 말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러나 위장군은 별수 없어서 명부를 작성하여 황제에게 올리고 기별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조칙이 내려 임안과 전인이 황제 앞으로 불려 갔다.

 

황제가 두 사람에게 지략과 능력에 대하여 이것저것 묻자 두사람은 서로에게 양보하여 말했다.

"북채와 북을 가지고 군문에 서서 사대부들이 기꺼이 죽음을 무릅쓰게 하는것은 제가 임안만 못합니다."

"의문을 명쾌하게 해결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잘 다스리고

백성들이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하는것은 제가 전인만 못합니다."

 

이렇게 서로 사양하며 겸양의 말을 하자 황제가 크게 웃고 말했다.

"훌륭하다.

대장군 위청의 사람보는 안목이 대단하구나."

 

이리하여 황제는 즉시 임안을 북군 감찰로 임명하고 전인은 황하로 수송되는 양곡을 감찰하는 일을 맡겼다.

이로부터 두사람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다.

그후 임안은 익주자사가 되었고 전인은 승상의 장사가 되었다.

 

전인은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상서했다.

"천하의 각군 태수들 대부분이 법을 어겨 사사로운 이익을  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중에도 특히 삼하지역이 더욱 심합니다.

청하옵건데 먼저 삼하를 조사하여 부정을 밝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삼하의 태수들은 모두 궁중 내의 귀인들에 의지하고 있거나

삼공과 친척관계에 있어 두려워하거나 거리끼는 바가 없습니다.

마땅히 먼저 삼하의 지역을 바로잡아 천하의 간사한 관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그 무렵 하남.하내의 태수들은 모두 두주 의 부자.형제였으며 하동태수는 승상 석경의 자손이었다.

더구나 석씨는 아홉명이나 2000석의 봉록을 받는 관료 였기때문에

바야흐로석씨 가문의 전성기였다.

 

전인의 상서문이 올라가자 두주와 석경은 사람을 시켜 변명 했다.

"우리들이 감히 변명을 하려는것은 아니지만

원컨대 전장사 께서는 무고하여 우리를 더럽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전인은 이미 삼하를 감찰하고 부정을 저지른 태수들을 적발하여 형리에게 넘겨

이미 모두 사형을 시켜버린 후였다.

전인이 돌아와 보고하자 효무제는 매우 기뻐하며

강력한 호족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과단성있게 일을 처리한 그를 특별히 신임해서

승상의 사직에 임명 하였다.

전인의 위세는 드디어 천하를 진동 했다.

 

얼마후 황태자가 군사를 일으킨 사건이 벌어졌다.

승상이 스스로 병사를 일으켜 황태자를 치려하였다.

승상은 사직 전인에게  성문을 지키게 하였다.

전인은 이 일이 황제와 태자사이의 골육간에 벌어진 일이라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

장릉으로 피신하여 태자가 문을 열고 탈출할수 있도록 했다.

 

황제가 승상에게 황태자를 도피시킨 책임을 묻자

승상은 그것이 전인이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고했다.

사직 전인은 체포되어 형리에게 넘겨지고 곧 주살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당시 임안은 북군 자사가 되어 군을 감찰하고 있었다.

태자가 북군의 문 앞에 수레를 세우고 임안을 불러 부절을 주며 칙명이니 군대를 발동하라고 명했다.

임안은 부절을 받아들고는 군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꼼짝을 안했다.

 

효무제는 임안이 태자에게 황제의 부절을 받고 들어가 문을 닫아건것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함인것을 알았다.

그러나 태자를 공격하지 않은것은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당시에 임안의 군대 재정담당이 부정을 저질렀다가 적발되어 태형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

그 재정담당관이 앙심을 품고 임안을 무고하여 상서를 올렸다.

ㅡ임안을 체포하여 취조 하십시오.

임안이 태자에게 부절을 받을때 제가 옆에서 들었는데 임안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좋은것을 주십시오'(좋은 부절을 주십시오.정예군을 주십시오)

[@서적마다 해석이 달라 원문대로 옮김.]

이것이 황태자와 공모한 증거입니다.ㅡ

 

이 상서문을 받아본 효무제는 크게 노했다.

"임안은 노회한 장수다.

가만히 앉아서  승패를 관망하다가 이기는 쪽의 편을 들려 하는구나.

이것은 두마음을 품은 것이니 그의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

황제는 임안을 형리에게 넘겨 주살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릇 달도 차면 기우는것이고 만물도 극성하면 쇠하는것이 천지의 상도다.

나아갈줄만 알고 물러설줄을 모르면 그 기운이 쌓여 불행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범려는 벼슬과 부귀를 사양하고 월나라를 떠나

이름이 후세에 전하여 만세토록 잊혀지지 않고 있으니 어찌 그의 지혜를 따를 수 있겠는가?

후세 사람들은 진퇴를 결정할때 이를 경계로 삼기 바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으로 전숙과 그의 아들 전인.또 임안의 이야기까지 모두 알아 보았다.

 

전숙은 신의와 절개를 지켜 죽음을 무릅쓰고 조왕을 보필 하였고

그 명성이 높아졌을때 자신의 벗 맹서를 잊지 않았으며 황제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양왕의 일을 덮게 하여 태후에게 효도를 다할수 있게 하였다.

무도한 노나라 왕을 교화하여 예의와 염치를 알게 했으니

그 위인의 인물됨이 어떠한지 가히 알수 있을듯 하다.

 

전숙의 아들 전인은 어찌된 일인지 알수 없으나

아버지가 조정 대신의 자리에 있었는데도 가난하였으니 이 일도 참으로 괴이하다.

 

전인과 임안은 사마천과 같은시대에 효무제를 섬긴 인물들인데

젊은 시절 매우 가난 하였으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천자에게 나아가 높은 벼슬을 하게 되었으니

이들의 인품이나 능력은 참으로 높았던듯 하다.

 

이들이 벼슬에 있을때 지방의 부정을 타파하고 변경을 굳게 지켜 황제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황태자의 난에 연루되었을때 그들의 행동은 분명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황제와 태자는 부자 지간이고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편을 들기가 어렵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이 두사람은 각자 눈치를 보면서 부자간의 일에 개입하는것을 꺼리고

자신의 안전을 꾀한듯 하니 그 일생의 인품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것은 어찌 할수 없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전인과 임안이 황태자의 난을 만났을때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자신의 주군인 효무제만 바라보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 했다면 태자의 난은 쉽게 평정 되었을 것이고

그들 자신 또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수도 있었을 것이니

결국 한번 처신을  잘못한것이 비극을 낳은 씨앗이 된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을 살다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을때 정도를 찾고 원칙을 지키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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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후에 프랑스에서는 나치에 부역한 언론과 학자들까지 모조리 숙청 하였다.

어떤 언론인은 '자신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바로 그 "언론인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이 죄이다"라는 유명한 판결을 받고 처형 되었다.

이 언론인의 행동이 임안과 다른것이 무엇이겠는가?

일신의 안전과 영달을 위해 아무일도 하지 않고 숨어있는것이

바로 권력에 영합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교황께서 다녀가실때

"나는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수 없었다" 는 말씀을 남기신것을 다시한번 상기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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