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된 대형 목곽고, 백제시대 저장고로 쓰였던 일종의 냉장고로 목재 결구방식이 잘 남아있다.>
백제시대 생활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대형 나무 저장고와 저수 시설이 135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질서정연하게 조성된 건물 집터와 과학적 운용으로 설치된 저수지 등지에서 수백 점이 넘는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백제가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멸망하기까지 일구고 누린 찬연한 문화가 실물과 정황으로 역사 저편에서 살아 돌아왔다.
23일 오전 11시, 금강변에 위치한 공북루 안쪽 성안마을. 1980년대 초부터 공주 공산성 유적을 발굴해온 이남석 공주대박물관장이 상기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사적 제12호 공산성 왕궁부속시설 제7차 문화유적 발굴 성과를 이 관장은 “박물관 하나를 따로 만들어도 될 정도 수확”이라고 어림했다. 백제 시대 아름드리 참나무 결이 살아있는 목곽고(木槨庫)는 가로 3.2m. 세로 3.5m, 깊이 2.6m 크기로 현대판 대형 냉장고를 연상시켰다. 수분이 충분한 땅 밑 진흙에 묻혀 있어 썩어 없어지지 않고 원형이 살아남았다. 못 없이 나무만으로 껴 맞춘 결구 방식과 점토 맥질로 여러 차례 보강한 흔적이 생생했다. 사람이 오르내릴 수 있는 발받침인 말목 구멍이 보였고 배수구 시설도 드러났다. 이 안에서는 복숭아씨·박씨 등 식재료와 무게를 재는 석제 추, 목제 망치와 공이 등 다양한 생활 용품이 수습돼 저장 시설임을 짐작케했다. 이 관장은 “이번 발굴의 핵심이 목곽고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저수지와 거기서 나온 유물에 주목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저수 시설 언저리에서는 백제 멸망 시기에 신라·당나라 연합군과의 전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다량의 전쟁 도구들이 발견됐다. <목곽고에서 나온 출토품>
특히 두 세트로 된 갑옷과 칼 일습, 두개골, 대량 화살촉과 철모 등이 나와 660년을 전후한 시기에 공산성에서 항전했던 백제인의 기개를 읽게 한다. 이번 조사에 앞선 2011년 발굴 당시, 저수시설에서 ‘정관 19년(貞觀十九年)’, 즉 645년이라 적힌 옻칠 갑옷과 말 갑옷이 나왔었다. 이번에는 ‘참군사(參軍事)’ 등 20여 자 명문이 새겨진 옻칠 갑옷이 출토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 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던 깃대꽂이가 최초로 발굴돼 백제 기승(騎乘·말을 타는 일과 수레에 오르는 일) 문화를 입증했다. 발굴지 구석구석을 소개한 이현숙 공주대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축대를 쌓고 배수로와 도로 등을 합리적으로 배치한 점으로 미뤄 백제인의 선택과 집중 정신을 잘 집약한 주거지 유적”이라고 설명했다. 발굴단은 제60회 백제문화제가 열리는 26일부터 10월 5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발굴조사 현장을 일반에 공개하고 설명회도 연다. 041-840-8202.
공주=정재숙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