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피가 용솟음쳐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던 시절.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의 기억.
그시절 더운 자취방에 들어누워 늘 맛도 모르고 홀짝이던 술에 젖어 살던 나는 무료하고 지겨운 일상에서 제대로된 풍류를 즐겨보자는 생각에 평소 같이 놀던 멤버 네명을 소집, 거창하게 여행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
하지만 자금부족과 행동력 부족으로 인해 멀리 가지는 못하고, 결국 시내에서 1시간 반 정도 외곽에 위치한 태화강(울산광역시 소재)상류의 촛대바위에 다녀오기로 결정했었어.
텐트와 침낭를 울러매고 소주박스와 고기를 들고 아침에 출발해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갈아타니 조금후 산 사이에 위치한 목적지가 보이더군.
버스에 내리고 주위를 둘러봤어.
강을 두고 한쪽은 조그만 자갈이 넓게 깔려있고 저편은 절벽이 강을 따라 죽이어지고 그 앞으로 하늘을 찌르는듯한 바위가 턱하니 서있어 정말 멋진 경관을 했지.
지금과는 좀 달랐어. 개발도 되지 않았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멋지다니.
강은 그다지 깊지않아 가족들이 아이들과 물장구를 치고있는 모습도 보이고, 강곁에 있는 덩그러니 있는 판자로 지은 횟집마저 운치있었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함성...
"우~~~아 경치 지~기네..."
"이야 좋네 여기.."
"사람도 많이 없고야...딱이네...오~~탁이 이런데 또 우째 찾아냈노?"
"내가 누구고? 흐~"
우리는 아웃도어라이프의 프로답게 신속하게 텐트를 치고 강가에 수박과 소주를 재놓고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았어.
오후5시쯤 되자 슬슬 물장구에 지쳐가고, 우리 중 가장 술을 밝히던 박상녀석이 맥주를 한캔 까서 마시기 시작했고, 순간부터 거나한 술판이 벌어졌지.
장작을 주워와서 불을 피우고 철망을 올려서 고기를 굽고, 좋은 친구와 맛있는 술과 멋진 경치.
풍류의 기본아니겠어?
산쪽이라서 그런지 해가 빨리 떨어지더군. 여름인데 7시쯤되니 금방 어두워졌지.
주변의 놀던 사람들은 어느덧 모두 집으로 돌아갔더군.
판자 횟집(이름이 '강나루'였던가?)아저씨도 횟집 문을 잠그고 집으로 가는것같더라구.
"어이, 야들아!!"
"예?"
"늦게까지 놀지말고 빨랑들 드가라이~여 위험하다이"
"아~예 감사합니다."
정말 훈훈한 정이라 생각했어. 우리도 우릴 걱정해주는 착한 아저씨를 위해 건배를 외치며 술잔을 기울였지.
가져간 소주 한박스가 동이날무렵, 내 여물지않은 머리로 개똥철학을 논할 때쯤 당근알레르기가 있는 '박쥐'라는 친구 녀석이 말하더군.
"야...촛대바위 위에 저 반짝이는거 뭐고..."
"뭐?"
"저기 빨간불빛"
정말이였어. 빨간 싸이렌 같은 불빛이 깜빡이고 있는거야.
'깜빡깜빡'
"저게 뭐지?"
"비행기 부딪히지말라고 그런거 아닌가?"
"아...그런가?"
"바보들아...여기서 보니까 저게 높지 원래 여기가 저지대잖아...비행기가 저래 낮게 나나?"
술취해도 똑똑한 '깡박사'의 말.
"아 알겠다!!!~절벽 높이랑 촛대바위 높이랑 비슷하니까 사람들이 촛대바위로 계속 넘어가서 넘어가지말라고 싸이렌 달아논기라!!"
'순두부'놈의 추리...상상력도 풍부하지...사람들이 칼루이스냐? 저 거릴 뛰어넘게?
"그럼 뭔데?"
"모르지..."
"뭘까?"
"자세히 봐바라"
"음..."
어느덧 말이 없어진 우리는 싸이렌의 점멸만 바라보고 있었어. 한 10분쯤 바라보고 있었나?
갑자기 발끝이 시려지며 굉장히 추워졌어.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하더군.
'뭐지? 왜일케 춥노?'
"어!"
가슴까지 철벅거리는 물.
난 강속으로 첨벙첨벙 걸어들어가고 있었던거야.
그 싸이렌만을 보면서.
강에서 나오려 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않았어. 앞에 보이는건 나와 마찬가지로 싸이렌만 보며 가는 친구녀석들의 뒷모습이었지.
아직도 그 말소리들이 생생해.
남자 다섯명이서 "야~저거 무슨 불빛이고?"를 계속 중얼거리며 강 속으로 들어가는거야.
그 눈빛들. 뭔가를 홀린듯이 바라보는 눈빛들.
막아야되는데 난 다리가 너무 아려서 움직일수없었어.
"으어어억~"
말소리도 나오지않았어. 되려 몸에 힘을 줄수록 너무 아팠어.
맨먼저 싸이렌을 발견한 박쥐녀석은 목까지 물이 차서 숨도 꾸역꾸역 쉬면서, 멍청하게 계속 들어가고 있어지. 솔직히 난 죽기보다 두려웠어. 우리 모두 죽는구나라고 생각했어. 미칠것같더군.
그 때 어디선가 따가운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이 우릴 비추는게 느껴졌어.
강가의 갓길에서 선 택시 한대.
'노란 택시?'
택시기사신지 노란 구형 소나타 택시에서 내려 미친듯이 달려오는 한 아줌마. 허리까지 내려오는 푸석푸석한 파마머리. 큰 얼굴에 선명하고 잘게진 많은 주름. 번쩍이는 눈빛. 사실 정말 무섭게 생긴 아줌마였어.
그런데 그 무서운 순간에도 난 아줌마가 숫사자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웃기지?
"휘이이익~휘이이익~끼이이익"
그 아줌마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향해 첨벙첨벙 강으로 뛰어들어왔지.
'이 아줌마 정말 빠르네...날아다니는것같아...
"허어~~~헉!쿠에엑"
아줌마는 나의 뒷목을 잡고 강속에 내동댕이쳤어. 한순간에 물을 확 먹으니 신기하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는거야.
"휘이이익~휘이이익"
이상한 소리를 계속 내며 미친듯 움직이는 아줌마. 내 친구들 또한 아줌마에게 내동댕이쳐지고 물먹으면서 정신을 차리더군. 우리 정신없이 기어나왔지. 결국 가장 깊게 들어가있던 박쥐녀석마저 용케도 아줌마는 질질 끌고 나왔어. 그때 우리 심정은.........정말.
"이런 젗같은거!이 지금 뭐고!!내 미쳤나??와이라노!"
흥분한 순두부가 욕을 하며 떨리는 심장을 추스리려 하더군. 난 아무말도 할수없었어. 내가 겪은 일이 뭔지.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게 미칠것같이 두려웠어.
저편을 보며 숨을 돌린 아줌마가 약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어.
"휴~저거는 귀신이 너거 잡아갈라고 부르는 소리다. 여기가 원래 자살바위데이. 여게 빠지면 회오리가 생기가 시체도 못찾는다. 다시는 절로 가지마라이...알겠제?"
할말을 마친 아줌마는 물을 뚝뚝 흘리며 터벅터벅 택시를 타고 왔던곳 반대로 가버리시더군. 유유히 미끄러져 가는 택시를 보며 우린 아줌마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지만, 너무 무섭고 두려운 나머지 정말 필요한것만 빨리 챙겨서 도로를 타고 걸어나왔지.
마을버스가 온길을 두시간쯤 걷다가보니 '깡박'이 말하더군.
'야. 여기 주변에 집이 없다.'
여긴 근처에 주택이건 뭐건 집들이 없는거야.
가장 가까운 집이 시외버스가 내려준 곳에 있었거든.
모두 어떻게 아줌마가 우리를 찾았을지 고민할 때, 난 문득 아까 상황이 떠올랐지.
'제기랄.'
그 빈 구형 소나타 택시에서...
아줌마가 내리고 탄 쪽은...조수석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