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초기 청나라의 최고 정무기관은 <내각>이었습니다. 1658년 순치제가 기존의 국사원과 비서원 홍문원의 내삼원을 내각과 한림원으로 재편하면서 탄생된 기관이었습니다. 내각의 주 업무는 황제를 보필하고 내각회의에서 정책을 입안 및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6부와 그리고 지방기관인 성(省) 정부에 대한 실제적인 집행권은 없었고 다만 황제의 결정권에 영향을 주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황족과 귀족, 고위관료들로 구성된 의정왕대신회의가 국가의 중요정책을 의결함으로써 내각은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 강희제의 친정 이후 남서방(南書房)이 부상하면서 내각의 권위는 더욱 실추되었습니다. 이후 옹정제가 군기처를 설치하면서 내각은 단순히 유지를 전달하고 공문서를 공포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 남서방(南書房) : 내각대학사들의 붕당 다툼이 국가를 망치는 요인이라고 본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한림학사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경사를 강의하게 하고 서적편찬을 담당케 하며 비공식적으로 자신에게 자문을 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남서방이었습니다. 황제권 강화를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써 초기에는 비공식적 자문기관이었지만 점차 그 기능이 확대되어 칙령이나 유지의 초안을 작성하고 국가업무에 관하여 조언하는 등 중요 기밀업무를 다루는 기관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군기처는 1729년 청의 준가르족 원정 때 군수품 공급을 위하여 만들어진 군수방으로 설치한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이후 1730년에 군사 및 행정업무를 관장하는 군기방으로 개편하고 이후 다시 군기처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군기처는 내각을 제치고 그 기능이 점차 커져가면서 건륭초에 이르러서는 청나라의 유일한 최고 정무기관으로 격상하였습니다.
설립 초기의 군기처의 일원인 군기대신들은 대부분 육부의 상서(장관), 시랑(차관) 등 고위 관료들이 겸직하였습니다. 이후 군기처가 공식기관이 된 이후에는 행정업무까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군기처에는 만주족과 한족 관료 6~10명으로 구성된 군기대신들과 그 아래 만주족과 한족 각각 16명의 군기장경들이 행정업무와 황제의 비밀명령을 지방 정부에 하달하고 지방관의 비밀보고를 황제에게 직접 전달하는 업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기처는 지방기관인 성(省) 아문에 대한 집행권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행정업무를 담당한 이호예병형 즉 6부가 있었습니다. 장관인 상서 1인과 차관인 좌우시랑 2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 6부도 실제 행정업무를 관장했으나 엄밀히 따지자면 황제의 참모기구에 불과하여 집행권도 없었고 성(省)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도 없었습니다.
그 밖에 특수행정기관으로는 최고 감찰기구인 도찰원,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을 관리하는 이번원, 궁중의 문서를 담당하는 한림원, 문서출납을 담당하는 통정사사, 궁정사무를 담당하는 내정부가 있었습니다.
* 출처 : 청사 -만주족이 통치한 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