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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하후돈과 뒤집힌 장수
게시물ID : humordata_18108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퀼라
추천 : 12
조회수 : 3229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9/04/19 01:03:04
베오베에 하후돈에 대한 평가글을 보고 정사와 연의의 모습이 뒤집한 장수가 생각이 났습니다.
하후돈은 후방관리에 뛰어났지만 전쟁터에서는 형편없는 장수임에도 연의에서는 맹장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정사에서 명장이자 맹장임에도 연의에서 허구한 날 지는 졸장이 된 인물이 있죠.
 
바로 조인(曹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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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인척으로 처음부터 조조와 함께 했으며, 조조가 가장 믿는 장수였습니다. 조조사후에도 조비 휘하에서 사망 직전까지 전쟁터에 나갔던 명장이자 맹장이었습니다. 유비에게 관우가 있었다면, 조조에게는 조인이 있었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중요한 전투의 최선봉부대를 도맡아 했으며, 수백명으로 수천명을 상대하는게 일상인 장수입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살아돌아왔죠.
그리고 항상 법(군율)과 원칙을 따지는 원리원칙주의자.
뭐랄까 연의에서 보여주는 하후돈은 사실 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삼국지연의를 제외한 다른 기록들을 보면 조조휘하 최고의 장수로 장료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입니다. 조조초기부터 조조사후 조비때까지 활약했으니 커리어 전체로 따지면 항장출신 장료를 압도합니다.
 
정사에는 남군 공방전과 유수전투 빼고는 전승장군입니다. 주유에게 비록 졌지만, 사실 스스로 후퇴한것에 가깝습니다. 적벽대전 직후라 지원도 없이 자신이 가진 군세만으로 유비와 주유의 협공에서 1년이나 싸웠으며 결국 형주 전부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당시 미개발지인 형남을 내주고 형북으로 국경선을 그은 것은 상당히 냉철한 판단이었죠.
유수전투는 생애 마지막 전투였고, 평생 기마부대 전문가로 지낸 장수가 수군을 운영하다가 벌어진 비극이었을 뿐이죠.
관우의 죽음을 몰고온 번성공방전의 위나라 사령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를 보면 능력도 없으면서 조조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높은 관직에 올라, 꽤나 오만하지만 서서와 주유에게 털리는 모습으로 대표적인 낙하산 무능력자로 그려지는 인물입니다. 번성공방전에서 관우를 죽게 만든건 사실 조인이 버틴 덕분이었는데, 빈집털이한 여몽의 신묘한 계책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나관중의 장난질에 무능력자가 되어버렸고, 코에이 삼국지에서도 계륵같은 장수로 나옵니다. 그나마 조인 재평가를 했다는 최훈의 삼국전투기에서도 연의의 모습을 어느정도 남겨두어 장료에게는 확실히 못미치는 무장으로 표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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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최전선에 있었기에, 삼국지연의에서 善으로 상징되는 유비와 자주 싸워 재미를 위해 악당으로 표현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그런데, 능력있는 악당으로 그려도 되었을텐데 왜 나관중은 이런 장수를 무능력자로 만들어버렸는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조인의 이미지를 왜 뜬금없이 하후돈에게 입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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