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결심하던 날 무지개가 떴다. 달동네 윗자락 뒤에 살짝 숨은 무지개. 이미 거의 다 츻어져 연하게 퍼져있는 검은 구름. 그만큼 점점 진해지는 검은 하늘이 무지개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줬다. 저 무지개는 나의 마지막을 위로해주는 신의 선물일까. 나는 조금이라도 더 위로받고 싶어졌다.
그 시절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내 삶을 그보다 정확히 표현하는 말은 없으리라. 안고 태어난 가난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열정이나 노력의 크기보다 더 큰 구멍은 아무리 애써도 채워지지 않는 빈 그릇만 남겼고. 오히려 무작정 채우려다 구멍의 균열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미 다 허물어진 언덕 입구 건물 잔해 가장자리를 따라 미로 같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몇 년을 버텨온 동네지만 아무렇게나 지어진 건물 사이 골목은 처음 지나보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냥 위로, 위쪽으로만 향하면 무지개에 닿을 거라 생각했다.
버티고 버텼다. 자존심을 떼어 구멍을 막았다.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가족 회사에서 온갖 상스러운 소리를 들어도 웃는 얼굴로 막고 집에 돌아와 소리 없이 울었다. 하지만 결국 자존심으로도 구멍은 막지 못했다.
골목 깊숙이 들어가니 작은 내 키보다 조금 더 큰 건물들이 내 무지개를 뺏어갔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 중 몇몇은 빈 집을 알리는 빨간 페인트 표시가 있었다. 몇 주 뒷면 내 집, 아니 내가 사는 집도 저런 표시가 남겠지. 그런 집 사이를 헤매며 이리저리 무작정 위를 향해 올라갔다. 가다 막힌 길에 되돌아갈 때면 내 집 같은 저 집들이 원망스러웠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무지개는 점점 연해져 갔다.
구멍 난 마음으로 모든 희망 열정 노력 같은 긍정들이 쏟아져 버렸다. 힘들고 지쳐 모든 걸 손에서 내려놔도 아직도 힘들기만 했다. 끝내자. 다행인 것은 가난이 선물한 눈치 보는 삶 덕분에 크게 잘못한 일은 없었다. 전생의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생의 난 그리 큰 잘못을 하지 않았으니 후생의 난 조금이라도 평범한 인생을 걸을 수 있으리라. 그런 결론이 나왔다.
욕심. 욕심이었을까. 저 화려한 무지개를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은 게 욕심이었을까. 바람은 차지만 몸은 뜨거웠다. 숨이 차지만 발바닥은 계속 뜨거웠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이미 빛으로 가득 찬 달이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높은 하늘을 홀로 채우며 자리 잡은 달을 부러워하듯 가로등도 하나둘씩 빛으로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아직도 달동네 정상엔 오르지 못했다. 아직도 무지개가 남아있을까. 무지개는 과연 위로였을까. 가로등 불 근처를 날아다니는 하루살이가 측은했다.
주마등. 죽기 전 살아온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죽기로 마음먹으니 어린 시절부터 잊었던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왕따 당했던 일과 억울하게 혼나야 했던 일들. 버스비가 없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두 시간 거리를 걸어 하교했고 퇴근했던 기억.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간다는 말에 군기가 빠진 거라던 선생님의 말. 안 좋은 기억들만 떠올랐을까. 나 스스로도 죽을 이유를 찾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지개는 벌써 사라졌을 거란 걸. 하지만 마지막이란 생각은 발걸음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밤하늘이 완성되고 한참 뒤에서야 나는 겨우 달동네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무지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볼 수 없었다. 산 넘어 자리 잡은 내 키보다 훨씬 더 큰 아파트가 밤 하늘을 모조리 가리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소원은 이룰 수 없었다. 무지개는 정말 위로였을까. 허탈한 마음 돌려 돌아갈 길을 바라보았다.
죽는 순간까지 슬프고 싶진 않았다. 조금이라도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모범상을 받았던 기억. 처음 핸드폰이 생겼을 때.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수학여행 때 선생님 몰래 술 마시던 기억. 참 별거 없다. 처음 무대에서 공연하던 날. 월급 받던 날. 그저 술 한 병으로 밤새 친구와 수다 떨던 날. 길고양이가 나에게 와서 비비던 순간. 술 취해 놀이터에서 그네 타다 떨어졌을 때. 그건 왜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을까.
힘들다. 아쉬운 마음만큼 피곤이 몰려왔다. 잠시 앉아 쉴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저쪽에 낡은 벤치가 보였다. 몸을 붙였다. 다시 일어나지 못할듯한 기분이 들었다. 차올랐던 숨을 몰아쉬니 살짝 현기증이 났다. 그대로 의자 위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문득 언덕 바로 아래 낡고 낮은 집 지붕 넘어가 보였다. 야경. 내가 사는 동네의 야경은 이런 모습이었다. 이곳저곳 켜진 가로등과 아직 잠들지 않은 집이 보여주는 야경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아름다웠다. 이 황홀함이 그토록 험한 길을 품고 있었다니. 검은 종이에 아무렇게나 찍힌 하얗고 노란 점들은 일곱 가지 색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기억을 꺼내봤을 때, 기쁨의 크기는 슬픔의 크기에 비해 한없이 작고 작았다. 하지만 그게 왜 좋았을까. 오늘 하루도 그렇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덮고 밤이 연해질 때쯤에야 겨우 잠들었다. 그만큼 옅은 잠을 자다 싫은 알람 소리에 일아났다. 대충 씻는 시늉만 하고 허겁지겁 달려 나왔지만 항상 타던 시간 지하철은 놓쳤다. 다행히 지각은 안 했다. 졸린 만큼 실수도 많았다. 점심 먹고 겨우 피던 담배 한 대. 그 시간이 왜 그리 행복했을까. 퇴근길에 산 맥주 한 캔을 골목 어귀에서 급히 마실 때 상쾌함. 그리고 내일을 일주일 뒤를 한 달 뒤를 일 년 뒤를 십 년 뒤를 생각하니 몰려오는 막막함. 그래서 죽기로 했었다. 아니, 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백 번의 슬픔 뒤에 한 번의 사소한 행복.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나는 저 멀리 닿지 못할 환상을 위해 나를 감싸고 있던 풍경을 헤집고 달려왔구나. 피로감이 좀 남아 있었다. 저기 저 풍경에 파묻혀 쉬고 싶다. 나는 지친 다리를 이끌고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