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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집사의 고양이 관찰일기 - 1. 고양이 발견(하)
게시물ID : humordata_18059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방향치
추천 : 28
조회수 : 1674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9/03/21 21: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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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사이 많이 친해졌다. 이젠 내 발 바로 옆까지 와서 간식을 주어먹는다. 하지만 아직은 딱 그만큼이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건 오로지 녀석의 마음이다. 내 바로 옆에서 간식은 먹다가도 내가 움찔이라도 하면 바로 도망가 버린다. 언제쯤 나에게 마음을 열까....

 근처에 나처럼 녀석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사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담긴 작은 플라스틱 용기가 근처에 놓여 있다. 녀석이 그것을 먹는 걸 본 뒤로 ‘묘’한 질투가 시작되었다. 그 질투심은 나에게 고양이 사료를 사게 만들었다. 사료뿐만 아니라 더 많은 종류의 간식까지.... 나는 틈만 나면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갈 때마다 내가 놓고 온 사료와 누군가가 놓고 간 사료의 양을 비교하기까지 했다. 결과는 무승부... 나는 나름 많은 관심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누군가도 많은 관심을 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발 옆까지 와서 간식을 먹는 녀석... 문득 녀석의 머리 뒷부분, 목덜미에 이물질이 묻은 게 보였다. 거기까지는 녀석이 혼자 어떤 방법을 써도 떼어내지 못했으리라... 나는 무심코 손을 뻗어버렸고, 녀석은 ‘하악’ 소리를 내며 도망가 버렸다. 아차! 녀석의 허락 없이 거리를 좁혀버렸다. 한참을 서성거렸지만, 숨어서 기다려보기도 했지만 구석으로 도망가 버린 녀석은 사과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나는 남은 간식을 아쉬움에 담아 그 자리에 두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녀석의 아지트로 찾아갔다.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에게 겁을 먹고 보금자리를 옮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은 간식을 모두 뿌려 놓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자리를 옮긴 것인가, 혹시 탈이라도 났나, 아니면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나. 남겨두었던 간식은 누군가 건드린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녀석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혹시 녀석이 숨어버린 사이 다른 고양이가 영역을 빼앗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구석에서 부스럭거리며 녀석이 나왔다. 아! 다행이다! 그냥 지금 일어났을 뿐이구나! 녀석은 아직도 졸린지 손 뻗어도 닿지 않을 곳에 가만히 앉아 꾸벅꾸벅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녀석은 보금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그 뒤에도 계속 내 말 옆까지 와서 간식을 먹곤 했다. 단순히 그냥 좀 놀랐을 뿐이구나... 전에 사두었던 장난감도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인조 강아지풀. 앉아서 장난감을 흔들어 줄 땐 내 무릎 위까지 올라오곤 했다. 쓰레기 더미 사이로 숨었을 때 그 사이로 장난감을 넣어 흔들면 녀석이 앞발로 툭툭 치는 게 느껴졌다. 귀엽다. 그마저도 귀엽다. 이따금씩 물어서 당기기도 한다. 끙끙 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마치 ‘내 꺼야! 내가 잡았으니까 내 꺼야!’ 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좀 놀랐다. 아니 무서웠다. 장난감을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장난감을 입에 문 채로 내 코앞까지 끌려 나와도 나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톡톡 치면 그때야 호다다닥 도망가는데, 다시 장난감을 흔들어 주면 지금까지의 기억은 모두 잊은 듯 다시 문 채로 끌려 나왔다. 너무 격한 반응에 오히려 무서웠다. 작용이 크면 반작용도 크다고, 이러다 나를 영영 피하진 않을까... 항상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너무 친해졌다

 그렇게 해가 지고 핸드폰 손전등 없이는 녀석을 찾을 수가 없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녀석은 여전히 장난감에 모든 정신을 팔았는지 배고픔이나 피곤함 따위에 쓸 정신은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결국 내가 먼저 끝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난감을 주머니에 주섬주섬 넣자 그때야 녀석은 나를 인지하는 것 같았다. 도망가고는 싶은데 장난감이 아쉬운지 살살 내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 녀석이 장난감에 아쉬워하는 만큼 나는 시간이 아쉬웠다. 다만 내일 또 녀석이 나를, 장난감을 기다릴 거란 확신이 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내가 매일 내일을 기다렸듯이, 녀석도 이젠 매일 내일을 기다리겠지. 이제 조금은 대등한 자세로 녀석과 마주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아직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눈앞의 즐거움으로 전부 가릴 수 있는 나이. 그런 녀석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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