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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12장 대궁밥)
게시물ID : history_180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3
조회수 : 5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10 17:20:22
오늘 부터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글을 올립니다.
완결을 향해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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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대궁밥
 
15971225일 오후 경주부 동헌
 
. 접반사 오셨는가?”
 
수북이 쌓여있는 문서 더미 속에서 나이 든 사내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 영상대감. 원로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생은 무슨. 전장에 있는 한음 자네가 더 힘들지.”
 
영의정 겸 도체찰사인 서애 류성룡이 웃으며 접반사 이덕형에게 말했다.
 
대감. 이쪽은 명나라에서 온 대상인 장 대인이라 합니다.”
 
이덕형은 자신과 함께 온 비단옷을 입고 유건을 쓴 자를 소개했다. 소개받은 사내는 포권의 예를 행하며 인사치레를 했다. 함께 있던 통사가 부지런히 말을 바꾸었다.
 
장 대인이라 하옵니다. 이렇게 조선의 집정 대신의 옥안을 뵈올 수 있게 되어 가문의 영광이옵니다. 대감님의 존성대명은 중원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있사옵니다.”
 
허허. 위명 아닌 위명이라니. 국토를 참절하고 백성을 유린한 역도들을 막지 못한 이 불충한 인사에게 과찬이시구려. 하여간 아국의 명운이 걸린 대사에 흔쾌히 참여해주어서 고맙소이다.”
 
류성룡은 장 대인의 칭찬에 쓸쓸한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서류의 바닷속에서 문서 한 권을 캐내었다.
 
. 이것이 이번에 울산으로 수송해야 할 군량미의 양과 질에 대한 대장이오. 밖에 나가면 호조에서 파견된 관리가 있을 것이니 수량을 검사해보오.”
 
도체찰사는 대장을 내어주며 장 대인에게 눈치를 주었다. 상인으로 눈칫밥을 먹은 지 오래되었던 장 대인은 싱긋 웃으며 다시 예를 갖추었다.
 
그럼. 저는 밖에 나가 보겠습니다. 두 분께서는 오랜만에 환담을 하시길...”
 
그가 나가자 경주부윤의 작은 직무실은 접반사 이덕형과 도체찰사 류성룡만이 남았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영상이 입을 때었다.
 
이 보시게 한음. 전황이. 어떠한가?”
 
서애 대감. 솔직히 말씀드리면 서전 이후 나아진 게 없습니다. 호각세라 할까요? 외각의 왜군 진지들은 다 제압이 되었으나 본성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오전에 개시되었던 명군 제독 마귀가 주도한 공성도 실패했습니다. 저희가 잔꾀를 내어 적의 치중하나를 불태웠으나 적의 성세를 막기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할 말은 하는 남자인 이덕형이 전과의 가감 없이 류성룡에게 공성의 결과를 보고했다. 그의 솔직한 얘기에 류성룡의 이마 주름이 더 깊게 팼다.
 
경주부에 들어오면서 쌓여있는 양곡 더미를 보았는가?”
 
. 생각보다 많은 양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대감께서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셨을지.”
 
그거 내가 한 게 아닐세. 다 이 나라 백성의 피와 고름일세.”
 
도체찰사는 눈을 감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안동에 2만 석, 이곳 경주에만 26천 석에다가 경상좌도의 군량을 모두 합하면 8만 남은 자리일세. 그뿐인가? 경상도에는 사헌부 대사헌 윤승훈 등을, 전라도에는 어사 남탁을, 황해도와 평양에는 순찰사 홍세공과 종사관 박이서 등을 보내어 양곡을 모집하게 하였다네. 그러니 동헌 밖의 곡식들은 조선 팔도의 모든 것일세.”
 
대감.”
 
영상을 부르는 접반사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서애 대감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허나... 이 모든 것이 조선의 온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면 믿겠는가? 왜적에게 버리고 달아난 이 못난 나라와 조정이 또다시 염치불구하고 손을 벌리는데 백성들은 두말없이 자신들의 생명을 턱 하니 내주었다는 말일세. 이것은 무엇을 뜻하겠는가?”
 
민초들도 아는 게지요. 이 전투의 승패가 조선의 명운이 걸렸다는 것을.”
 
이덕형은 그의 말을 받으며 류성룡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체찰사는 감았던 눈을 떴다. 시뻘겠게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대궁밥으로 누룽지 하나 못 만드는 것이 작금의 조선일세. 반드시. 기필코. 왜성을 무너트리고 가등청정을 잡아야 하네. 그것도 한시바삐. 더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낼 수 없단 말일세!”
 
접반사는 의관을 정제하고 자세를 바르게 하였다. 그리고 읍을 했다.
 
명군 접반사 이덕형. 모든 계책을 짜내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여 경리 양호를 보좌하겠나이다. 영상대감.”
 
류성룡은 절을 하는 이덕형을 손수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나이를 먹으니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지 요즘엔 눈물이 잦네그려. 허허. 나도 이제 치사(나이가 들어 관직에서 물러남)할 때가 된 게지.”
 
대감. 당치도 않으십니다. 아직 환갑도 안 되신 연세이신데. 대감께옵서 조정에서 물러나시면 전란으로 피폐해진 이 나라는 누가 반석 위에 올리겠나이까?”
 
접반사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치사를 만류했다. 류성룡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허허. 이 사람이 장 대인이란 작자와 함께 다니더니 공치사가 늘었구먼. 걱정 말게나. 내 사직상소를 올리지 않아도 낙향하게 될 터이니. 그리고 요즘 짬이 날 때마다 틈틈이 쓰고 있는 습작이 있는데 나중에 자네가 한번 보고 괜찮다 싶으면 서문이나 써주게나.”
 
저작이라 하시면?”
 
영상은 다시 서류 더미를 뒤져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공손히 서책을 받아든 접반사는 세로로 쓰인 제목을 읽어 내려갔다.
 
. . .”
 
그렇다네. 주책 맡게끔 벌써 표제를 지어놓았지. 징비록. 지난 일을 반성하며 앞으로의 일을 경계한다는 의미로 적어 보았다네.”
 
시경 소비편에서 따오셨군요.”
 
서애 대감은 제목에서 눈을 때지 못하는 한음에게서 책을 다시 돌려받고선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평안한 세상이 오거든 내 누옥에서 바둑이나 한 수 두세나. 그럼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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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사 대감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함께 말을 타고 도산성 인근의 조·명연합군 진지로 돌아가고 있던 장 대인이 말을 꺼냈다. 그들의 뒤편에는 수많은 우마차에 그득하게 실린 양곡의 행렬이 따르고 있었다.
 
. 아니오. 잠깐 잡념이 들어서. 그나저나 장 대인은 이번 전투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는 이덕형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급히 말을 이었다.
 
저 같은 천한 장사치가 어찌 대업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옵니다.”
 
겸양하지 않아도 되오. 비록 상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하나 장 대인의 인덕은 내 대장부라 알고 있소이다. 고견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들려주시구려.”
 
오히려 접반사가 더욱더 예를 차렸다. 장 대인은 헛기침하며 작심한 듯 입술을 뗐다.
 
험험. 대감께서 이리도 원하시니 소인의 쓸모없는 잡수를 말씀드리자면 궁지에 몰린 적을 무턱대고 치는 것은 아군을 소모 시킬 뿐이라 사료됩니다. 지금 아군의 수는 왜적을 압도하니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에 피로한 적을 맞아 싸우며 상대에게 위기나 내분이 찾아왔을 때 재빨리 공격을 취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삼십육계 중에 승전계로 군요. 이일대로하여 진화타겁이라...”
 
대감. 진지에 도착했습니다.”
 
이덕형이 그에게 말을 이을 찰나에 군량미 수송을 호위하던 무장이 진중도착을 알렸다. 장 대인은 재빨리 말에서 내려 우마차에 실린 양곡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이게 무슨 냄새지?”
 
진중에 고소한 고기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접반사는 호위 무관에게 사정을 알아보라 명했다. 잠시 후. 진 내에 들어갔던 무장이 돌아와서 보고했다.
 
저기 있는 장 대인이 명나라 대상들을 독려하여 조·명연합군 병졸들에게 돼지 수백 두를 위문품으로 돌렸다 하옵니다. 오늘 낮에 공성에 실패하여 꺾긴 군졸들의 사기진작 차원과 왜군에게 아군의 위세를 과시하고자 양 경리가 왜성 가까이에서 돼지를 취식하라고...”
 
이덕형은 무관의 뒷말은 듣지도 않고 서둘러 양곡을 손수 검수하고 있는 장 대인에게 달려갔다.
 
알았소이다. 알았어. 하하.”
 
? 무슨 말씀이시온지?”
 
갑자기 달려와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파안대소하고 있는 접반사를 보여 장 대인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하하. 자세한 것은 내 나중에 말하리다. 지금은 한시바삐 경리께 가야 할 듯싶소. 그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니 사양치 마시구려.”
 
. .”
 
장 대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부리나케 학성산 정상의 조·명연합군 수뇌부 진지로 달려가는 이덕형이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옮는다고 하더니만, 오성이 옆에 오래 있다 보니 내가 그 꼴이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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