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올린 글에 고칠 점이 있어서, 다시 업로드합니다ㅠㅠ 양해 부탁드려용
안녕하세요! 저는 '글쓰는이혁'입니다!!
앞으로 매주 토요일 낮 12시에 에세이를 써서 올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공언을 해놔야 제가 게을러지지 않을 거 같아서요ㅠㅠ)
일상과 삶의 단면을 최대한 유머러스하게 표현해보고자 합니다!
꾸준히 써서 올리겠습니다~~ 다들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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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염
한 달 정도 수염을 길러 봤다.
수염을 기르게 된 계기는 턱에 난 여드름 때문이었다. 턱 여기저기에 여드름이 나서 차마 면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자 분들은 다들 아실 거다. 면도날에 여드름이 베이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마침 그때가 설 연휴이기도 했다. 설 연휴에 나는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드름을 핑계 삼아 또 연휴를 기회삼아, 마음 놓고 한 번 수염을 길러 보았다. 물론 아무 관리 없이 막 기른 건 아니었고, 족집게와 코털 가위를 이용해 나름 깔끔하게 손질해가며 기른 것이었다.
연휴 끝날 때 보니 수염이 얼굴에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씨익 웃을 때 가지런한 치아 위로 콧수염이 넓게 펴지는 게 매우 섹시해보였다(죄송). 그래서 도저히 수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연휴 끝나고 학원 아이들을 만났다(나는 학원 선생이다). 수염을 기른 채였다.
아이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이상해요”, “나이 들어 보여요” 같은 반응과 “잘 어울려요”, “멋있어요” 같은 반응들. ‘김흥국 아저씨 같긴 한데 멋지다’라고 한 아이도 있었다. 이건 긍정적인 반응으로 쳐야 할까, 부정적인 반응으로 쳐야 할까.
아무튼 나는 긍정적인 반응에 의지하여 계속 수염을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은 처음 한 주 뿐이었다.
그 다음 주가 되자 반응은 9 대 1 정도로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거의, 탄핵 직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같은 양상이었다. ‘늙어 보인다’, ‘지저분하다’, ‘이상하다’ 같은 반응이 절대 다수였다. 내가 이러려고 수염을 길렀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수염을 계속 기르겠다면 학원을 그만 다니겠다고 하는 아이까지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수염을 자르느냐 아니면 내가 학원에서 잘리느냐, 갈림길에 설 판국이었다. (물론 그 아이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콧수염은 좀 아니긴 했다. 내가 바란 건 할리우드 느낌이었는데, 막상 기르고 보니 80년대 건달 같은 느낌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에 단역으로 나오는 조직폭력배…….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기왕 기른 수염을 그냥 자르기는 좀 아쉬웠다.
어쩌지 하다가 문득, 턱수염만 길러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래퍼 더 콰이엇이 하는 수염 있지 않나. 그런 스타일로 가보기로 했다.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수염은 링컨 대통령 같은 수염이었는데, 내 한 줌짜리 턱수염으로는 불가능했다(흑흑).
마음을 정했다. 나는 과감하게 콧수염을 밀어버렸다.
턱수염만 남은 얼굴을 보니, 그건 그것대로 매력이 있었다. 멋있다, 세련됐다, 같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재밌다, 개성 있다 같은 느낌은 들었다. 어차피 잘생긴 걸로는 승부가 안 되니, 개성 있는 쪽으로 밀고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학원 아이들을 만났다. 반응은… 다들 예상하신 바와 같다. 아이들은 ‘질색팔색’을 했다.
여러 안 좋은 소리가 나왔는데, 그 중 가장 압권은 바로 “색연필 같아요”라는 말이었다. 길쭉한 얼굴이 연필 몸통 같고, 턱수염이 연필심 같아 보인다는 뜻이었다. 참.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봤을 때, 남자 대다수는 한번쯤 수염을 길게 길러보고 싶은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다. 수염은 남자의 로망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 평생 수염 기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 번 쭉 길러보니 알겠다. 나는 수염이 안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