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안 가고싶다. 격하게 가기 싫다. 내일 만큼은 꼭 가라고 하시는 아버지. 근무가 잡혀 있어서 안된다고 말씀드리니 그까짓 쥐꼬리만큼 벌어서 뭐 한다고 안 가냐고 하셔서 더 가기 싫다. 친할머니께서 친할아버지 생전에 할아버지께서 가끔 가뭄에 콩나듯 반주로 소주 한 잔씩 마실때마다 잔을 뺏어 마당에 던지는건 예삿일 이었고, 내 얼굴을 볼때마다 너는 내 아들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며 온갖 비아냥과 욕지거리를 하던걸 생각하면 더 싫다. 장남이랍시고 참고 넘겼지만 이제는 더이상 가기 싫다. 내일 제사에는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 제사가 싫지만 어차피 꼭 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얼굴도 잘 알고 생전에 항상 날 존중해주셨던 친할아버지 제사에나 충실하고 싶다. 할머니가 딸 여럿과 아들 여럿이 있어도 농사 짓는 날에는 매번 아버지와 나만 불러서 일 시키셨던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장남이랍시고 특별대우를 원하는건 아닌데 이런걸 생각하면 내가 장남이고 뭐고 오지게 싫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의 엄마랍시고 내일 만큼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서 친가에 이번 딱 한번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오늘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더더욱 친가에 가기 싫다. 괴롭다.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