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죄송합니다.
연휴에는 쉽니다.^^ 역게 여러분들 모두 즐거운 명절되시길 바랍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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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우엉 우왕”
“딱딱 딱”
몰이꾼들은 두 패로 나누어 몰이를 시작했다. 한패는 소리를 지르며 나무 사이를 헤쳐나갔고 또 다른 패는 산정상 위에서 돌을 던졌다. 이들이 던진 돌은 바위에 부딪히며 시끄럽고 큰소리를 냈다. 일각의 시간이 흐르자 산 중턱의 숲 속에서 갑자기 날짐승들이 하늘 높이 올랐다.
“어흥 으어흥 으아어흥”
산 전체를 포효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처음으로 진짜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왜군들(일본은 선사시대 이후로 호랑이가 멸종되었다.)의 일부는 나자빠지거나 혹자는 바지에 실례했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산군의 부르짖음 이였다.
“산 주인이 가까이 있소. 모두 경계를 늦추지 마시오.”
최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집채만 한 호랑이가 순식간에 일행 앞에 나타났다. 황갈색의 털에 굵은 검은 줄무늬, 흰 이마에 뚜렷이 새겨진 임금 왕 자가 이 산의 주인임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었다.
“으악…. 다스케데...”
가토의 주변에서 경계를 서던 포수 앞에 대호가 달려들었다. 무려 3 간(약 5.5m)을 도약해서 그의 앞에 선 것이다. 최 씨를 제외하고 갑작스럽게 호랑이랑 대면하게 된 왜군들의 표정이 얼음장 같았다.
“크르렁……. 크릉”
“도케…. 도케…. 바캐모노...”
낮게 짖어대는 산군과 마주한 왜병은 총구를 맹수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그의 양팔과 두 다리는 사시나무 떨듯이 후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크왕”
“아악아아... 헉….”
대호는 한번 포효를 내뱉더니 순식간에 조총병의 목을 물었다. 강인한 송곳니가 왜군의 목을 사정없이 짓이기고 있었다. 피가 두 생물을 빨갛게 물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을 목에 문 채 사방을 살펴보던 호랑이는 부지 간에 자신의 영지인 숲 속으로 달아나버렸다.
“이래도 산 주인을 잡으러 갈 거요?”
최 아무개가 끔찍한 장면을 목도한 왜군들에게 심드렁하게 물었다. 가토는 자신의 주 무기인 편겸창을 부여잡고는 사냥대에게 명했다.
“놈을 쫓는다. 텟보 아시가루들은 항상 발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
“이보시오”
최가가 기요마사에게 항의하는 찰나 가토 키요베에가 그를 붙잡았다.
“이 이상 토를 달면 가만두지 않겠다. 어이. 누구 하나 산 아래로 내려가서 이놈의 자식새끼를 데려와라.”
“무슨 짓이요. 다 자란 어른도 위험한 곳에 아이를….”
“퍽”
통사가 번역하기도 전에 부장은 왜검의 손잡이 끝으로 최 씨의 배를 쳤다.
“다음번엔 내 칼끝이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군사들은 주군과 함께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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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울울창창한 산 중턱에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핏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가토의 해수 구제단은 반 시진가량 숲을 헤맨 끝에 왜군 병사의 흔적을 발견했다.
“여기다. 여기…. 우엑….”
수색하던 왜병 하나가 손짓을 하다 욕지기를 느꼈는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가 속히 그가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그들은 경악했다.
“세상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병졸의 시체는 참혹했다. 입으로 목덜미를 잡고 이리저리 내팽개쳤는지 그의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병사의 허리가 접혀 있었다. 척수를 완전히 끊어 놓은 것이다.
“흠…. 정말 인육을 먹지 않았군. 곳곳에 부러지기는 했지만 사지는 유지하고 있어.”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며 시체를 살펴보던 가토가 말했다.
“내 뭐라 그랬소. 이곳의 산왕은 사람을 먹지 않소이다. 지금이라도 인명을 살리려면 철수해야 하오.”
기요마사는 용퇴를 주장하는 최가를 한번 흘겨보고는 말을 이었다.
“호랑이가 이 주위에 있을 것이다. 조선인 몰이꾼을 앞장세워라. 최 아무개 자네는 아들과 뒤에서 따라와라. 이제부터는 내 방식대로 놈을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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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무서워…. 산신령님이 우릴 잡아먹을 거야.”
“걱정 마라. 아비가 있지 않니. 내가 우리 산이를 지켜주마.”
최 씨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들을 달랬다. 벌써 한 시진이나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 대낮의 볕도 겨우 희미하게 비추는 깊은 산림 속에서의 적은 공포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아비는 결심한 듯 주변의 일행들에게 외쳤다.
“인제 그만 하산하여야 하오. 산중은 밤이 빨리 찾아오오.”
“으르렁”
그때였다. 산이가 있는 후방의 수풀에서 대호가 나타난 것이다. 산군은 자신이 원하는 사냥터에 침입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성한 숲을 방패 삼아 배를 깔고
천천히 미끄러지듯이 8 간(약 15m)을 낮은 포복으로 대열의 맨 끝으로 접근했다. 무리 중 가장 약한 것이 대오의 마지막에 있다는 것을 본능에 따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앙…. 호랑이가... 호랭이님이... 우왕….”
아이는 갑작스러운 맹수의 등장에 놀라 자빠지며 울기 시작했다. 최가는 침착하게 옷 속에서 항상 지니고 다니는 헝겊 주머니에서 작은 종지 병 하나를 꺼내어 내용물을 주변에 뿌렸다.
“탕탕탕”
호랑이가 나타나자 앞서 가던 가토의 포수들이 사격을 개시했다. 맹수는 잠시 주춤하더니 총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날렸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총병들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대호는 그들을 덮쳤다. 산왕은 앞발로 그들을 후려쳐서 날려버렸다. 그리곤 다시 숲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때다. 아들놈과 함께 달아나자.’
최 아무개는 울고 있는 아들을 안고선 재빨리 숲 속을 빠져나갔다. 그는 산속에 마련되어 있는 모둠터(심마니와 약초꾼이 산에서 지내는 임시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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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나 추워”
“조금만 있거라. 금방 따뜻해질 터이니….”
최 씨는 모둠터에서 마른 나뭇가지와 잎을 모아 불을 피우고 있었다. 호랑이와 왜적에게 쫓기는 몸이었지만, 낮의 충격과 피로로 오한을 느끼는 아들을 보고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몸을 움직이는 것은 무리다.’
최가는 불을 지피며 산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우려하던 산중의 밤이 찾아온 지금에는 운신의 폭이 좁았다.
“아부지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
이제야 몸의 감각이 돌아왔는지 산이는 아비에게 냄새가 난다며 코를 틀어잡았다. 최 씨는 그런 아들에게 살짝 꿀밤이 먹이고는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 묵은 감식초다. 살쾡이나 칡범 등은 신 냄새를 싫어하지. 호랑이한테도 통했구나. 덕분에 부자의 목숨을 구했으니 옆집 사는 과부 할멈에게 나중에 사례라도 해야겠구나.”
아비가 모닥불을 살피며 말하는 사이 아이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는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최가는 오늘 하루 고단했을 아이를 어깨에 기대게 하였다. 긴 하루가 그렇게 끝나는 듯싶었다.
“코코 아타나. 오마에”
오붓한 부자 사이를 방해하는 왜어가 들려왔다. 아비는 움직일 사이도 없이 서늘한 검기가 자신의 목을 뒤에서 겨누고 있음을 알았다. 잠시 후 모닥불 주위로 사람형체가 하나둘 나타났다. 가토 기요마사와 통사 그리고 왜군 조총수 한 명이 전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갑주와 옷이 찢겨나가고 상해있었다.
“키요베에 칼을 거둬라.”
가토와 그의 일행은 불길 옆에 앉았다. 검을 내린 부장은 여전히 최 아무개를 노려보고 있었다. 최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것이오? 그 많던 군사들은 어디에 있소?”
“모두 죽었다. 그 망할 놈의 괴물에게….”
가토는 그 한마디를 하고선 입을 닫았다. 생각해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전국시대를 호령한 자신의 부하들이 조선의 이름없는 맹수에게 그렇게 처참히 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사실이었다. 대호는 가토 일행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숲 속 곳곳에서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무리를 유린하고선 바람같이 사라져 버리기를 수차례. 결국, 남은 인원은 이 모닥불에 모여 앉은 자들이 마지막이었다. 가토는 결심한 듯 최 씨에게 말했다.
“최모에게 부탁한다. 이 지옥 같은 산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다오.”
“날이 밝더라도 흥분한 산군이 우릴 가만 둘리 없으니, 위험하지만 지금 호랑이를 유인하겠소. 단, 아이는 방해가 될 터이니 늙은 통사와 여기 남기는 것이 좋겠소이다. 불이 있으니 산영감이 함부로 덤비지는 못할게요. 다만 혹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이의 목숨만은 보장해 주오.”
“알겠다. 약속하마.”
기요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일행은 작전을 숙의하고는 통사와 잠든 산이를 남겨 둔 채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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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터 인근의 공터에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가토의 일행들이었다. 공터에는 길이가 10자(약 3m) 정도 되는 굵은 통나무들을 엮어놓고 그 위에 어른 머리만 한 큰 돌들이 올려져 있는 벼락틀이 설치되어 있었다. 60도 정도 되는 각도에 이를 바치는 조금 가는 참나무 대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장대의 밑에는 약간 긴 새끼줄이 묶여 있었다.
최 아무개의 작전은 이랬다. 사람냄새를 맡고 온 대호를 조총병이 벼락틀로 유인하고 그가 빠져나오면 최씨가 끈을 당겨 호랑이를 압사시킨다. 이때 가토와 키오베에는 조총과 창으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일각의 시간이 지나자 그들의 예상대로 산군이 그들을 찾아냈다. 호랑이를 유인하는 왜군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횃불을 가지고선 맹수를 위협했다.
“크아앙”
호랑이는 울부짖으며 홰가 없는 병사에게 다가왔다. 병졸은 조금씩 조금씩 벼락틀 쪽으로 몸을 빼기 시작했다. 대호는 천천히 다가가는 척을 하면서 갑자기 뛰어올랐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 틈을 타서 호군은 앞발로 밀어버렸다.
“으악”
왜병은 벼락틀 안으로 떠밀려버렸다. 호랑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도약하여 틀 안으로 들어갔다.
“이마다!”
키요베에가 최 아무개에게 신호를 보냈다. 최 씨는 왜군병사 생각에 잠시 머뭇거렸다.
“어이 하야쿠시로!”
부장은 그런 그를 다시 한 번 독촉했다. 둘 사이를 지켜보던 가토 기요마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으아악”
왜인의 비명을 들으며 최가는 새끼를 당겼다.
‘미안하오. 내 이 죄는 저승에 가서 꼭 갚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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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르 쾅쾅”
야심한 숲 속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불기운에 잠이 들었던 산이는 그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모닥불 곁에 아비는 온데간데없고 갓과 도포를 입은 늙수그레한 사내 하나가 있을 뿐이였다.
“아부지는 요?”
“니 애비는 왜놈들이랑 호랑이 잡으러 갔다. 요 근방의 벼락틀로 유인한다고 했는데…. 성공했나 보다. 아비는 곧 올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라.”
“아부지”
아이는 통사가 말릴 새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났다.
“얘야. 기다리거라... 고놈 참….”
통사는 뛰어간 산이를 쫓아 늙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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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 징그러운 놈을 잡은 것인가?”
“그런 듯합니다. 주군. 설마 저 수많은 돌무더기 안에서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가토 기요마사와 그의 부관인 가토 키요베에는 무너져내린 벼락틀을 유심히 살펴보며 말을 주고받았다.
“아부지. 엉엉”
벼락틀의 위치를 알고 있었는지 산이가 울면서 달려와 아비에게 안겼다. 최가는 아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놈아. 왜 이런 험한 곳에 오고 그러는 게야. 아비가 널 찾아갈 것인데….”
“그래두….”
부자의 눈물겨운 상봉이 있던 그 순간. 쌓인 돌무더기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대호였다.
“헉….”
호랑이는 앞발을 뻗어 근접해 있던 부자를 덮쳤다. 최가는 무의식적으로 아들을 감싸 안았다. 산왕의 무지막지한 힘에 두 사람은 힘없이 떠밀려 굴렀다.
“크와아앙”
호랑이는 무시무시한 안광을 뿜어내며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맹수 또한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벼락틀을 탈출하려 했으나, 하반신은 틀 속에 갇힌 상태였다.
“탕”
가토 기요마사가 대호의 안면 정중앙을 겨냥해 조총을 발사했다. 총알은 이마에 새겨진 왕자의 한가운데에 명중했다. 호랑이의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맹수는 숨을 거칠게 쉬더니 어느 순간에 고개가 떨어졌다.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저놈을 잡으셨군요. 장군.”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부장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가토는 대답하지 않고 죽은 호랑이를 묵묵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부지. 정신 차려. 응? 호랭이 죽었어….”
충격에서 먼저 깨어난 산이가 아비를 애타게 불렀다.
“으…. 으…. 산이야…. 괜찮으냐? 으읔….”
가까스로 눈을 뜬 최 씨는 왼손을 뻗어 아들의 볼을 감쌌다.
“애비 걱정은 말고…. 몸 건강히 장성해서…. 맘씨 고운 처녀 만나서…. 억….”
최가는 고통스러운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등허리에서는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부지!”
“장가…. 가서…. 떡두꺼비…. 손자….”
산이의 볼을 감싸던 아비의 큰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아이는 내려진 손을 부여잡고 통곡했다.
“아부지!”
“헉헉. 아가…. 그렇게 달음박질을 치면 내가…. 헉.”
곡소리가 사방을 매울 무렵 도착한 통사는 참극을 목격하고는 말을 잃었다. 그때 그에게 가토가 다가왔다.
“장군. 이제 다 끝났으니 내려가시지요. 악.”
기요마사는 차고 있던 짧은 왜검을 뽑아 통사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생을 접어야 했다.
“주군. 어찌하여?”
키요베에가 방금 벌어진 상황을 경악하며 가토에게 물었다.
“오늘 일은 누구도 알아선 안 된다. 이 가토가 한낱 이런 미물에게 이런 치욕을 당했다는 것을….”
기요마사는 냉정한 어조로 부관에게 일렀다. 키요베에는 묵례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옆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던 아이에게 다가가 칼을 뽑았다.
“아비의 저승길이 외롭지 않게 해주마. 이앗”
“그만!”
부장이 칼을 휘두르려 하던 찰나 가토가 그를 제지 했다.
“이 꼬맹이도 살려두어선 안 됩니다. 장군.”
가토는 부관의 검을 밀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 된다. 이자의 아비와 약조하지 않았느냐? 이 아이만은 살려주기로.”
“하오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무사의 명예는 지켜져야 할 것이다. 이 꼬마의 운명은 네가 아니라 이 산에 맡기도록 하자.”
아이를 스쳐 지나가는 가토 기요마사를 따라 부장이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산이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아비의 시신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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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일어난 지 이틀 후. 호랑이의 무덤이 된 벼락틀 옆에 돌무덤이 여럿 들어섰다.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하는 호식장 이었다. 최 아무개의 돌무더기에서 울고 있던 아이가 품속에서 장도를 꺼내어 호식총에 덮여있는 시루의 가운데 구멍에 칼을 꼽았다. 돌무덤 주위에 배회하는 창귀(호랑이에게 먹힌 사람이 사후에 호랑이의 명을 따르는 귀신이 됨)를 막기 위한 풍습이었다.
“녹색 갑옷. 고깔 투구. 작은 키. 가등청정….”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더는 돌아올 수 없는 아비의 무덤과 고향을 등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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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12월 25일 오후 삼환지 창고
“으아아아.”
최산은 만복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마치 그날의 아비를 잃은 것처럼.
“무슨 일이냐? 품에 앉은 그 왜군은 뭐고.”
산이의 스승이자 아동포살수대 대장인 여여문이 수하를 대동하고는 통곡하는 초관에게 다가왔다.
“내 불안해서 이렇게 올라와 봤더니…. 왜구 놈을 붙잡고 울고 있다니….”
여대장의 힐난에 산이는 눈물을 훔치고는 만복이의 갑옷을 벗겨주었다, 그리고 지금껏 볼 수 없었던 한이 서린 말투로 스승에게 쏘아붙였다.
“이 사람은 왜적이 아니오. 조선인이오!”
언제나 쾌활하던 제자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으니 여여문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 그를 놔두고서 산이는 왜검을 들었다.
“대체 왜 이러느냐?”
스승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여여문은 그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산이는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놓으시오. 내 본환으로 올라가 가등청정의 목을 베겠소.”
“전장에서 미친것이냐? 왜군이 우글우글한 이성에서 그게 가당키나 하냐? 개죽음일 뿐이다.”
여대장은 흥분한 초관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탕탕탕”
왜의 조총병들이 이환지의 대형 망루에서 공성중인 마귀의 본대에 사격을 개시했다. 무질서하게 성을 오르던 명군들이 하나둘씩 사다리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이환지의 문이 열리고 조․명연합군의 포격에 주춤했던 왜군들이 삼환지로 쏟아 내려왔다. 때를 맞춰 연합군의 진지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뎅 뎅 뎅”
“산이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너도 저 소리가 뭔지는 알 것이다. 어서 퇴각해야 한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 헛되게 죽음을 택한다면... 울이가 얼마나 슬퍼하겠느냐? 다음을 기약하자꾸나. 응?”
산이는 창고 앞에 누워 있는 시신을 한번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보며 여대장은 어유를 든 부하에게 신호를 보냈다.
잠시 후. 도산성 삼환지의 다몬야구라에 불길이 치솟았다. 이날의 전투로 제독 마귀가 이끄는 명군은 200여 명이 전사하고 1,000명이 부상했다. 왜성의 겉모습은 변하지 않은 채 하루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