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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뉴스-박광수 기자]
독일의 한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을 '
얼음처럼 차가운 독재자의 딸'이라고 표현해 파장이 예상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Frankfurter Rundschau)는 지난 22일 '한국 얼음처럼 차가운 독재자의 딸(SÜDKORE Unterkühlte Diktatoren-Tochter)'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맞아서도 전혀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을
조명했다.
인나 하아트비흐 기자가 쓴 이 기사는 "한국 연안에서의 여객선 참사 후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슬픔에 잠긴 가족들에 대해 거의 감정을 보이지 않고 '얼음공주'인 채로 있다"며 "그녀는 아픔을 공감한다고 말하지만 아주 냉정하게 말해서 그 사건과 그녀 자신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도 실내체육관 방문시 표정을 묘사했다.
이 기사는 이어 "서울의 고상한 청와대에서 살아온 얼음처럼 차가운 박근혜 대통령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하지도 못한다고들 말한다"고 전했다.
특히 이 기사는 대담하게도 '도살자의 딸(
Das Mädchen d
es Schlächters)'이라는 중간 제목으로 박근혜
아버지인 박정희를 도살자로 규정했다.
아울러 "박근혜가 자신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박정희의 잔혹한 행위들이 오늘날까지도 기억되고 있고 박근혜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도살자의 어린 딸"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 청와대 퍼스트 레이디 생활, 아버지 박정희의 죽음 등을 되짚은 이 기사는 "2013년 이후 그녀는 국가 수장직을 수행하고 있고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개선이라는 선거공약을 지키려는 시도에서 발을 헛딛고 있다"며 "여객선 참사로 인한 슬픔이 분노의 표출과 함께 시위로 전환될 수 있지만 박근혜는 그런 것쯤은 안중에 없다는 듯 여전히 얼음처럼 차갑다"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1945년에 설립된 독일언론사로 현재는 온라인으로만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번역문을 내보낸 뉴스프로는 "이제 대한민국의 첫번째 여성 대통령에 대한 호감어린 시선이 외신으로부터 서서히 거두어지고 있는 형국"이라며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의 마음을 박근혜로부터 거두어 가버린 것 뿐만 아니라 외신들로부터도 호감을 거두어가게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뉴스프로(번역 감수 : 임옥)의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기사
번역전문]
제목 : SÜDKOREA, Unterkühlte Diktatoren-Tochter(한국, 얼음처럼 차가운 독재자의 딸
)
Auch nach dem Fährunglück vor der Küste ihres Landes zeigt die südkoreanische
Präsidentin Park Geun Hye kaum Emotionen gegenüber den trauernden Angehörigen. Sie bleibt die “Eisprinzessin”.
(한국 연안에서의 여객선 참사후에도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슬픔에 잠긴 가족들에 대해 거의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얼음공주”인 채로 있다).
Selbst bei der Beileidsbekundung kommt keine Regung. Da steht sie, die Präsidentin, in der schnöden Sporthalle auf der südkoreanischen
Insel Jindo, wo die Angehörigen auf Neuigkeiten von der gesunkenen „Sewol“ warten, auf die Todesnachrichten ihrer Töchter und Söhne, gerade einmal 16 und 17 Jahre
alt.
(유감을 말하면서도 감정의 동요는 없다. 침몰한 “세월호”로부터의 소식, 겨우 16, 17세의 아들, 딸들의 죽음의 소식을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한국 진도의 참담한 실내체육관에 대통령은 그렇게 감정의 동요 없이 서 있다).
Sie bekundet ihre Anteilnahme und tut das so kühl, dass sie nicht am Geschehen teilzunehmen scheint. Keine spontane Empörung, kein tiefes
Mitleid, Park Geun Hye bleibt die „Eisprinzessin“. Immer wieder werfen die Südkoreaner ihr vor, keine Gefühle zu haben. Die Unterkühlte aus dem„Blauen Haus“, dem schicken Präsidentenpalast in Seoul, sei sie, eine, die keine Ahnung vom Leben des einfachen Volkes habe.
(그녀는 아픔을 공감한다고 말하지만 하도 냉정하게 말을 해서 그 사건과 그녀 자신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즉흥적인 분노나 깊은 연민을 보여줌이 없이 박근혜는 “얼음공주”의 모습으로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은 그녀가 감정이 없다고 반복적으로 비난한다. 서울의 고상한 “청와대”에서 살아온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하지도 못한다고들 말한다).
Das Mädchen des Schlächters(도살자의 딸)
Die „Tochter des Generals“ hat stets Misstrauen geerntet. Die 62-Jährige, seit 14 Monaten als erste Frau auf dem Präsidentenstuhl in Südkorea, wird die Schatten ihrer Familie nicht los. Die Untaten ihres Vaters Park Chung Hee, der das Land nach einem Militärputsch von 1961 an diktatorisch regierte, greifen bis in die heutige Zeit hinein.
(“장군의 딸”은 항상 불신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국의 첫번 째 여성 대통령이 된지 14개월이 된 이 62세의 대통령은 자신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61년 군사 쿠테타 이후 독재로 국가를 통치했던 아버지 박정희의 잔혹한 행위들이 오늘날까지도 기억된다).
Park bleibt das Mädchen des Schlächters, auch im Alter, das Kind eines Mannes, den manche in Südkorea, vor allem die Älteren, in guter Erinnerung behalten haben, weil er ihr armes Land um jeden Preis durch eine beeindruckende wirtschaftliche Entwicklung gejagt hatte. Sie bleibt aber auch das Schreckgespenst für all die, die ihre Entschuldigungen für die Machenschaften ihres Vaters schon immer für reine Wahlkampftaktik hielten.
(박근혜는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도살자의 어린 딸이며, 가난한
나라를 온갖 수단을 동원해 대단한 경제 발전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대부분 노년층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의 어린 아이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버지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사과한 것을 단지
순수한 선거캠페인의 전략으로만 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녀는 그저 악몽이다).
Als ihr Vater sich an die Macht putschte, war Park elf Jahre alt. Sie genoss von da an eine unbeschwerte, wenn auch eine abgeschottete Kindheit – bis ihre Mutter Yuk Yong Soo 1974 bei einem Attentat, das ihrem selbstherrlich regierenden Vater galt, umkam. Mit 22 Jahren übernahm sie, die Elektrotechnik in Grenoble studierte, die Rolle der First Lady. Fünf Jahre später
stand sie wieder am Grab. Der eigene Geheimdienstchef hatte ihren Vater erschossen. Park Geun Hye zog sich daraufhin aus der Öffentlichkeit zurück.
(아버지가 권력을 잡기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박근혜는 11살이었다. 그 때로부터 그녀는 독재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암살 시도에 어머니 육영수가 사망한 1974년까지 격리되긴 했지만 아무런 근심 없는 유년시절을 즐겼다. 그레노블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22살의 나이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맡게 됐다. 오년 후 그녀는 다시
무덤 앞에 서게 됐다. 증앙정보부 수장이 아버지를 총으로 쏘았다. 그 이후로 박근혜는 공인의 생활을 떠났다).
Sie wollte nie in die Politik(그녀는 정치에 영영 발딛고 싶지 않았다)
In die Politik gehen wollte sie nie – und tat es doch. Seit 1998 sitzt sie in der südkoreanischen Nationalversammlung, 2004 wurde sie Vorsitzende der konservativen Grand National Party, die mittlerweile Saenuri heißt. Auf einer Wahlkampfveranstaltung zwei Jahre später hatte sie ein Mann mit einem Teppichmesser im Gesicht verletzt, Menschenansammlungen meidet die ledige und kinderlose Frau. Zwei Mal wagte sie den Weg zurück ins „Blaue Haus“, nicht als Tochter, sondern als Politikerin.
(그녀는 정치에 영영 발을 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정계로 나갔다. 1998년 이래로 그녀는 한국의 국회의원이고 2004년에는 지금은 새누리로 불리우는 보수 한나라당의 대표가 됐다. 이년 후 선거캠페인중 그녀는 한 남자에게 얼굴을 칼로 찔려 다쳤고, 미혼이고 아이도 없는 그녀는 군중을 피한다. 딸로서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그녀는 두 번 “청와대”로 돌아갈려는 엄두를 냈다).
Seit 2013 ist sie im höchsten
Amt und stolpert seitdem bei den Versuchen, ihre Wahlkampfversprechen von demokratischer Wirtschaft und besseren Sozialdiensten einzuhalten. Die Trauerbekundungen für die mehr als 100 Toten der Fährkatastrophe könnten sich in Proteste umwandeln. In Wutausbrüche auch gegen Park. Die Präsidentin aber bleibt unterkühlt, als ginge sie das nichts an.
(2013년 이후 그녀는 국가 수장의 직을 수행하고 있고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 개선이라는 선거공약을 지키려는 시도에서 발을 헛디디고 있다. 여객선 참사에서 있었던 백여명의 사망에 대한 슬픔은 시위로 전환될 수 있다. 박근혜에 대한 분노의 표출과 함께. 대통령은 그런 것쯤은 안중에 없다는 듯 여전히 얼음처럼 차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