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달았다가 포풍 반대먹은 사람입니다 약간의 참고자료로 생각해주세요//선조 107 31/12/23(갑술) / 병조 판서 홍여순이 중국군 철수 뒤 국내의 변란을 우려하여 아뢰다
병조 판서 홍여순(洪汝諄)이 비밀히 아뢰기를, “해상의 왜적은 이미 물러갔으나 중국군이 철수하여 돌아간 뒤에 국내의 변란이 일어날까 극히 우려되니, 환란을 미연에 방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배설(裵楔)이 지난 가을에 나주에서 도망하여 지금은 충청도에 와 있는데, 현몽(玄夢)과 합세하여 무뢰배들을 많이 모으고 있다. 그의 행적이 이미 드러났지만 사람들이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감히 지적하여 말하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떠도는 말이라 믿을 것은 못 되지만 뜻밖의 사변이 발생할 지도 모르는 일이니 본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은밀히 하유하여 비밀리에 추격해 기필코 체포하도록 하고, 다른 도에도 아울러 유시하여 특별히 기미를 살피게 함으로써 그들이 용납될 것이 없게 하소서. 다만 나라의 기강이 이미 해이해 졌으니 유시를 내리는 일에 있어서도 역시 심상하게 여길까 몹시 염려될 뿐입니다. 옛사람은 이러한 일에 있어서 반드시 거액의 현상금을 걸어 잡게 하였으니 지금도 역시 높은 벼슬과 후한 상을 내린다고 한다면 필시 마음을 다해 고발하거나 체포하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모두 적이 물러갔다고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데, 신만 구구하게 지나친 우려를 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선조 110 32/03/06(을유) / 전 수사 배설이 법에 의해 청형되다
전 수사(水使) 배설(裴楔)이 복주(伏誅)되었는데, 그 아비 배덕룡(裴德龍)과 아들 배상충(裴尙忠) 등은 모두 방송하였다. 배설은 지난 정유년 7월 한산(閑山)의 전투에서 패전한 수범(首犯)이었으나 외지에 망명해 있었으므로 조정이 찾아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도원수 권율이 선산(善山)에서 잡아 차꼬를 채워 서울로 보냈으므로 참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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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이 있는데... 견내량에서 왜군들에 의해 빈배털이 당하고도 꿋꿋이 살아남아 자기 고향까지 왜군들을 물리치고 들어갔던 배설이... 과연 모반 가능성이 정말 있었을까요?
배설이 임금을 욕하고 다니고, 나주에서 탈영하고 그랬다던데... 배설까지 이렇게 욕하고 다닐 정도였으면 선조 ㅅㅂㄹ ㅁ 는 정말 조선에 있어선 안되는 왕이었군요.
암튼....배설이 용감했다는 것은 임진왜란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정말 반란을 일으키려 했을까요? 료로 생각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