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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름이 같아 저승에 끌려간 사람들
게시물ID : humordata_17977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대양거황
추천 : 10
조회수 : 4684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9/02/07 11: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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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소 잊혀졌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는 납량특집이라고 하여 여름철마다 무서운 공포 이야기들을 TV 방송사들이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공포 드라마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작품이 바로 KBS에서 방송했던 ‘전설의 고향’이었죠.


전설의 고향은 글자 그대로 한국의 무서운 전설들에서 소재를 가져와서 드라마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는 “이름이 똑같아서 자신이 죽을 때가 아닌데 다른 사람으로 오해를 받아서, 저승사자에 의해 실수로 저승에 끌려갔다가 착오임이 밝혀져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는 줄거리도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코미디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인데, 그런 이야기는 현대에 들어서 TV 드라마 작가들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이미 지금으로부터 500년도 더 전인 1477년, 조선 초기의 학자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년)이 쓴 책인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실려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태평한화골계전에 언급된 웃지 못할 사후 세계 체험담 2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계유년(癸酉年 1453년?)에 치러진 과거 시험인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사람들 중에서 김려(金礪)라는 이름을 쓰는 두 명이 나왔습니다. 이름이 똑같다 보니, 그들을 다른 사람들이 구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근무하게 될 성균관에서는 둘에게 별명을 붙여서 구분했는데, 한 명은 황봉(黃蜂)이라 불렀고 다른 한 명은 창승(蒼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황봉은 오늘날의 검찰에 해당하는 벼슬인 사헌부(司憲府)의 감찰(監察)에 올랐습니다. 반면 창승은 자신의 원래 이름인 김려가 황봉의 원래 이름과 같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원래 이름을 김려에서 김렴으로 바꾼 뒤에 현재의 법무부 직원인 형조좌랑(刑曹佐郞 정 6품 관리)에 올랐습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김렴(창승)은 형조좌랑이 된 이후에,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아무런 병도 걸리지 않던 건강한 사람이었기에, 주위에서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이유를 놓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한편 김렴이 죽은 지 며칠 후, 황봉(김려)은 친구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술과 음식을 대접했는데, 그들 사이에 끼어있던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은 김려한테 이런 농담을 걸었습니다.


“자네는 얼마 전 이름을 김려에서 김렴으로 바꾼 그 창승이 왜 죽었는지 아나? 내가 말해주겠네. 사실 창승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어. 그런데 저승에서 자네와 창승의 원래 이름이 같았다는 점 때문에 착오를 해서, 원래 저승으로 데려갈 사람인 자네를 놓아두고 엉뚱하게 창승을 데려간 걸세. 그래서 저승의 염라대왕이 저승사자한테 황봉 자네를 저승으로 잡아오라고 지시를 내린 지가 며칠이 지났다고 하더군. 아무쪼록 자네는 몸조심을 해야 할 걸세. 저승사자한테 잡혀가지 않으려면 말이야.”


그 말을 들은 황봉은 허튼 농담 하지 말라는 듯이 얼굴에 지긋이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믿겨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술을 마시던 황봉이 갑자기 심장이 아프다며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곧바로 죽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웅성거렸고, 최씨는 “내가 한 말이 씨가 되어 정말로 친구가 죽었구나.”하고 후회를 하며 부끄러워서 재빨리 떠나버렸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신라 시대에 붓글씨를 잘 썼던 김생(金生)이라는 승려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오늘날 경상북도 경주 황룡사(皇龍寺)에 살았는데, 당시 황룡사에는 김생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종이 한 명 살았습니다.


헌데 저승의 사자가 실수로 종인 김생을 잡아가자, 염라대왕은 화를 내며 “종인 김생 대신에 승려인 김생을 데려오라.”고 지시를 내려서 승려 김생은 죽었고, 대신 종의 영혼은 이승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종은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났기에 몸이 썩어 문들어 진 후였습니다. 반면 승려 김생은 겨우 하루 전에 죽었기 때문에 아직 몸이 멀쩡했고, 그래서 종의 영혼은 승려의 몸에 들어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이후 종은 승려의 몸을 한 상태에서도 마치 종처럼 말하고 행동했다고 합니다.


태평한화골계전을 쓴 서거정은 신라 시대 김생의 이야기는 허황되어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도 놀라운 견해를 덧붙였는데, 바로 황봉(김려)이 죽었던 일은 자신이 눈 앞에서 직접 보았다고 밝혔습니다. 즉, 서거정은 황봉의 친구였고 그와 함께 술을 마시던 도중에 최씨의 농담을 듣던 황봉(김려)이 갑자기 죽었던 일을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과연 황봉(김려)은 이름이 똑같아 실수로 저승에 끌려간 사람이었을까요? 

출처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361~363쪽/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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