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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도산성의 겨울(제11장 호랑이 사냥 上)
게시물ID : history_1797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1
조회수 : 5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04 15:58:37
제11장 호랑이 사냥
 
1592년 모월 모일 한낮 강원도 춘천 호명산 근처
 
“사냥하기 딱 좋은 날이구먼. 하하하.”
 
모처럼 기분이 좋은 가토 기요마사가 도열에 있는 부하들에게 호방한 웃음을 지었다. 조선의 도읍인 한양을 무혈입성하는 것은 좋았으나, 여우 같은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선수를 빼앗긴 후 파죽지세로 강원도를 점령할 때까지도 그의 기분은 항상 저기압이었다. 허나 단출한 인원으로 잠시 진중을 벗어난 오늘만은 달랐다.
 
“조선인 몰이꾼들은 데려왔는가?”
 
“물론입니다. 주군. 허나 산골벽지라 그런지 충분치는 않사옵니다.”
 
가토의 질문에 대답한 사내는 그의 부장인 가토 키요베에였다. 그의 옆에는 그가 세심히 가려 뽑은 서른여 명의 조총병과 남루한 옷차림을 한 조선 백성 십수 명이 왜병의 창검에 겁박당한 채 서 있었다.
 
“저 정도면 충분하다. 기껏 이름없는 야산의 산짐승 하나 잡는데 요란 떨 필요가 있는가. 하하”
 
주군은 금일 함께 사냥할 인원들을 보고선 흰 도포 자락을 입고 짧은 갓을 쓴 통사를 불렀다.
 
“너는 지금부터 내 말을 똑똑히 전해라.”
 
“예. 나리.”
 
가토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큰소리로 훈시를 시작했다.
 
“오늘은 경사스러운 날이다. 충용스러운 나의 군사들과 더불어 이 산에 은거하고 있는 대호를 산 채로 잡을 것이다. 이후 본국의 타이코 전하의 은혜에 미력이나마 보답하고자 이 제물을 받칠 것이다. 이 거사에 참여한 제군들에게는 후한 상급이 내려질 것이니라.”
 
“와아아아”
 
왜군 조총수들 사이에서 함성이 울렸다. 하지만 통사가 전해준 가토의 얘기를 들은 조선인들은 크게 웅성거리며 불안해했다. 무리 사이에서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을 지닌 사내 하나가 가토 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무엄하다. 조선인 주제에 어디 주군에게 다가오느냐?”
 
키요베에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왜검에 손을 뻗어 다가오는 그를 제지했다. 사내는 통사에게 조선말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정을 다 듣고선 주저하던 통역관이 가토의 부관에게 왔다.
 
“저어…. 부장님…. 이자가 말하기를 이 산의 대호는 영물 중의 영물이라 산신령과 같은 신성한 짐승이랍니다. 이 인근 동리에서는 산 중턱에 산신각을 세워 해마다 제를 올릴 정도라고 합니다요. 차라리 칡범(표범)이나 잡으라고….”
 
“뭐라? 이런 고약한 조센징을 보았나? 이놈을 본보기로 배어야 저놈들이 제대로 복종하겠구나….”
 
부관은 왜검의 손잡이를 힘껏 부여잡았다. 그때였다.
 
“무슨 일인가?”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가 부장에게 하문했다.
 
“별일 아닙니다. 장군. 조센징 하나가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몰이를 못 하겠다고 해서….”
 
“호오. 저자를 가까이 데려오라.”
 
“알겠습니다….”
 
가토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키요베에는 입맛을 다시며 통사에게 손짓을 했다. 조선인 사내는 자신을 흘겨보는 왜군들 앞을 당당히 지나쳐 왜장의 앞에 섰다.
 
“흠. 골격과 기세는 대장부이구나. 어디 사는 누구냐?”
 
“밤나무골에 사는 최 아무개요. 이 근방에서 사냥하여 먹고 사오.”
 
가토는 이 당돌한 장부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사냥꾼이라 말이지. 그런데 어찌하여 해수 구제에 반대하느냐? 내가 듣기론 조선조정에서도 ‘착호군’을 두어 호환에 대비한다 들었다.”
 
“그건 기운 빠진 늙은 호랑이가 인가에 내려와 사람을 해쳐서 그런 것이오. 허나 이곳의 산군은 다르오. 내 산을 탄 지 스무 해가 넘었지만, 한 번도 산주인이 마을주민을 해코지했다는 걸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소.”
 
사내는 왜의 제2군 선봉장 앞에서 전혀 주욱들지 않고 할 말을 다했다. 가토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내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타이코 전하의 충복이며 시즈가타게의 칠본창인 나. 가토 기요마사가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러니 내 너에게 제안을 하마. 몰이에 참가하는 부락민들에게 각 쌀 한 섬씩을 미리 주겠다. 또한, 맹수를 포획한 후에는 일 인당 두 섬씩을 상으로 내리겠다. 어떠냐?”
 
왜장의 달콤한 유혹에 사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큰소리로 외쳤다.
 
“가당치도 않소. 내 비록 난리 통에 삼순 구식 하는 처지이나, 함부로 산영감을 해치는 짓은 할 수 없소.”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꼬박꼬박 말대꾸이냐?”
 
가토 키요베에는 최 아무개의 말대답에 더는 참지 못하고 두 사람에 대화에 끼어들었다.
 
“장군. 이런 무지렁이한테 더 은혜를 베풀어선 안 됩니다. 제가 처단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화난 부관의 모습을 보며 기요마사는 키요베에를 가까이 불러세웠다.
 
“부장. 난 저놈이 마음에 든다. 여기 산세를 잘 아는 사냥꾼이 우릴 돕는다면 일이 더 수월해질 것이다. 저자가 고분고분해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보라.”
 
주군의 지시에 부관은 화를 삼키며 통사를 거칠게 끌고선 조선인 몰이꾼 무리로 갔다. 호통치는 왜말과 개미 소리를 내는 조선어가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더니 키요베에는 다시 통사를 데리고선 가토에게로 왔다.
 
“부락민들에게 물어보니 이 오만방자한 녀석이 삼십 줄에 본 귀히 여기는 외동아들 놈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부인은 노산으로 사내아이를 출산하다가 죽었답니다. 그래서 더욱더 애지중지한다는데…. 주군. 이놈의 아들놈을 인질로 하면 일이 풀릴 듯합니다.”
 
부장은 최 씨를 가리키며 왜어로 말했다. 왜말을 듣지 못하는 사내는 눈만 껌벅이며 내용을 짐작해 볼 뿐이었다.
 
“음…. 일각이 여삼추이니 좋아. 내키지는 않지만 그리하도록 하지.”
 
가토가 키요베에의 제안을 수락했다.
 
---
 
“아부지... 엉엉…. 살려주세요….”
 
가토 일행이 산 아래 초입 길로 조선인들을 위협하여 도착하자, 그곳에는 가토 키요베에의 수하들이 마을을 샅샅이 뒤져 잡아온 어린아이 하나가 울고 있었다.
 
“산이야…. 네가 어떡해….”
 
좀 전까지 강경하게 호랑이 사냥을 반대하던 최 아무개가 아이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키요베에가 단도를 꺼내 들고는 아이의 목에 들이댔다. 최 씨는 그런 그의 행동에 당혹감과 분노를 느꼈다.
 
“이 불한당들아. 대명천지에 이 무슨 짓이오!”
 
“그러길래. 처음부터 말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하하.”
 
부장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아비를 놀렸다. 이때 뒤에서 가토 기요마사가 다가왔다.
 
“키요베에. 칼을 거두어라. 최가는 들어라. 오늘 거사에 협조만 한다면 아들은 무탈할 것이다. 조선원정군 제2군 선봉장인 나. 가토 기요마사가 무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
 
“으으윽…. 알겠소이다. 더는 벗어날 방책이 없으니 그리하리다. 단, 사냥방식은 내 뜻을 따라주시오.”
 
“알겠다. 그리하도록 노력해 보마. 자. 그럼 출발해 보자.”
 
두 식경이 지난 후 산 중턱에 다다른 가토의 호랑이 사냥대는 최 씨의 신호에 모두 멈추었다. 가토와 부장이 통사를 데리고 그의 곁으로 다가와서 무리를 정지시킨 연유를 물었다.
 
“이것 보시오. 호랑이 변이올시다. 우리는 산신령의 영역에 발을 디딘 것이오.”
 
그는 가토에게 거무튀튀한 용변을 보여주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키요베에가 고개를 돌렸다.
 
“흠. 아직 마르지 않은 걸 보니, 이곳이 놈의 서식지가 분명하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산중이 이리도 조용한 것이냐?”
 
가토의 질문에 최 씨는 호랑이 똥을 내밀었다. 가토는 피하지 않았다.
 
“이놈 때문이요. 산짐승들은 모두 산군의 변 냄새를 꺼리오. 자신이 먹잇감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곳에 어느 동물이 오겠소?”
 
기요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가는 그런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인명피해 없이 호랑이를 잡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소. 하나는 호군의 굴을 발견해서 덫을 놓는 것이요. 호망이라 하는데 피나무껍질로 만든 끈이나 삼나무 끈과 같이 질긴 끈을 이용하여 그물을 짠 다음 그것을 나무로 만든 뼈대 위에 씌운다오. 그리고 굴 주위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 화가 난 호랑이가 굴밖에 뛰쳐나오면 갇히게 되는 원리요.”
 
“두 번째는 무엇인가?”
 
“몰이꾼이 산군을 벼락틀로 몰아서 끝내는 것이오. 이 산에 곳곳에 마을 사람들과 내가 비상시를 대비하여 만든 벼락틀들이 있소. 하지만 전자보다 위험해서 권하고 싶지 않소.”
 
“흠….”
 
가토는 잠시 잠깐 고민에 빠지더니 이내 결론을 내고선 최에게 말했다.
 
“제2의 방법으로 한다. 나는 금일 내로 사냥을 마치고 싶다. 언제 놈의 굴을 찾겠느냐? 게다가 나에겐 일당백의 조총부대가 있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하”
 
“허나...”
 
기요마사는 주저하는 그를 놔두고선 키요베에에게 명했다.
 
“부장. 드디어 사냥을 시작한다. 몰이꾼들에게 신호를 보내라.”
 
“예. 시작 하랍신다. 모두 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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