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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10장 난공불락 下)
게시물ID : history_179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1
조회수 : 37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02 16:00:49
 
1597년 12월 25일 아침 도산성 삼지환 부근
 
“펑펑평”
 
아침나절부터 조․명연합군의 대포소리가 하늘을 덮었다. 전날의 전투로 부총병 이여매의 좌협군은 도산성 동쪽에서, 부총병 이방춘의 우협군은 서쪽에서, 중협군을 지휘하는 부총병 해생은 북쪽에서 포위망을 짠 상태였다. 엊그제 선봉장이었던 유격장 파새는 부산에서 올라오는 왜군의 길목을 막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그는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스승님. 곧 접전이네요. 헤헤.”
 
왜성에서 약 1리(400~500m) 떨어진 연합군 진영에서 말고삐를 부여잡고 있던 아동포살수대 초관인 최산이 그의 스승이자 살수대 대장인 여여문에게 말을 꺼냈다.
 
“이 녀석아. 공적인 자리에선 직함을 불러야지. 그리고 명색이 지휘관이라는 작자가 헤헤가 무엇이냐? 헤헤가. 경박스러운 놈 같으니…. 내 너에게 평소 뭐라고 일렀더냐? 남자는 자고로….”
 
“에…. 입이 무겁고 진중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근데 대장님도 저한테 이 녀석 저 녀석 요 녀석 그러시잖아요. 언제 ‘최 초관’이라 불러주신 적이 있어야 말이죠.”
 
“음…. 그래. 최 초과아안…. 말을 몰아 이리 가까이 오라. 어서 오래도. 썩 오지 못할까?”
 
오늘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가벼운 실랑이가 계속되는 화기애애한 아동포살수대였다. 옆에 있던 살수대원들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지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이토록 활기가 넘치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겁니다. 그려.”
 
말을 타고 그들 곁으로 온 항왜장 김충선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대장님. 제자와 다툼은 나중에 하시고 저 좀 봅시다.”
 
김충선과 여여문은 말에서 내려 진영의 구석진 곳으로 몸을 옮겼다.
 
“무슨 일이요? 첨지 영감.”
 
“그게…. 오늘 공성에서 있어 펼칠 작전이 양 경리의 귀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래요?”
 
김 첨지는 난처한 표정으로 여 대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여문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경리가 우리의 작전을 반대하오이까?”
 
항왜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독려하더이다. 계책의 성공을 바란다면서요. 금일 공성의 총지휘가 마군을 이끄는 제독 마귀에게 넘어갔으니 양 경리의 심사를 알만하지요.”
 
“그럼. 되었소이다. 도원수와 접반사에게 계획대로 될 것이니 마음 푹 놓으시라고 전해주시오. 곧 공성이 개시되니 실례하겠소이다.”
 
“하지만…. 여여문형님...”
 
김충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여여문은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김 첨지는 못 했던 말을 마음속으로 말했다.
 
‘총대장이 이 일을 알고 지지한 이상. 성공하지 못하면 패장에게는 죽음뿐이오. 형님.’
 
---
 
“첨지영감이랑 무슨 일 있었습니까? 스승…. 아니 대장님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일은 무슨 일…. 공세가 임박했으니 긴장을 놓치지 마라.”
 
종전과는 다른 진중한 스승과 제자 사이의 대화였다. 잠시 후 이전과 다른 대포 소리가 도산성을 향해 울리기 시작했다. 이때 여여문이 왜성을 향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포탄을 보며 말했다.
 
“시작은 조선의 대완구부터 인가?”
 
완구란 박격포의 일종으로서 조선 시대에 공성전과 함포로 사용되던 곡사포를 말한다. 이 중 크기가 가장 큰 것을 대완구라 하는데, 조선 후기에는 이를 댕구라고도 불렸다. 이 대완구는 무게가 74근(44.4kg)에 달하는 돌로 만든 포탄인 단석을 400m까지 날릴 수가 있었다. 하나 이 무기의 활용은 다른 곳에 있었다.
 
“왜적 놈들…. 비격진천뢰의 뜨거운 맛을 보게 되겠군요. 고거 쌤통이다.”
 
산이가 스승의 혼잣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윽고 대완구에서 날아간 포탄 중 일부는 삼환지와 이환지 곳곳에 떨어졌다.
 
“쾅쾅쾅”
 
“우와와아”
 
조선군 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펴졌다. 착탄 된 비진천뢰가 폭발한 것이다.
 
비격진천뢰 또는 비진천뢰는 1592년 화포장이었던 이장손이 개발한 무기로서 일종의 도화선 방식의 지연신관 폭탄이다. 즉, 16세기에 개발된 시한폭탄이라 볼 수 있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에 손으로 굴리거나 완구에 넣어 비격진천뢰가 발사되어 도화선이 뇌관에 닿으면 포탄이 폭발하여 안에 있던 작은 쇳조각들이 흩날리는 구조로 만들어진 무기였다.
조선은 이 비진천뢰를 여러 전투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전투가 권율 장군이 지휘한 행주대첩이었다.
 
“펑펑펑”
 
이번엔 명군진영에서 삼환지로 향해 포탄이 발사되었다. 탄환은 조선군에서 발사된 포탄과 같이 높은 궤적을 그리며 왜성에 떨어졌다.
 
“벽력포탄이 제대로 떨어졌다. 전군 돌격!”
 
여여문이 주위의 아동포살수대원에게 명했다. 산이와 대원들을 태운 말이 지축을 박차고 왜성으로 향해 돌진했다.
 
“으아아악... 다스케테...”
 
“와따시노 메가…. 메가 미에나이….”
 
여여문이 이끄는 아동포살수대와 제독 마귀직속의 마군 선봉대가 주마가편하자 이윽고 삼환지 성벽 밑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왜군의 섬뜩한 비명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는 하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벽력포탄속에 있던 석회가 폭발하여 적의 눈을 멀게 만들어 성벽을 수비하는 왜군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한 다경이 지나고 왜적의 비명이 잦아들고 연기가 사그라질 때쯤 이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최단시간에 삼환지에 오른다. 실시!”
 
초관인 최산의 지휘 아래 살수대 대원들은 말 위에 묶어 두었던 사슬을 연결하여 성벽으로 던졌다. 20 간(약 37m)의 높이와 60도의 경사각을 자랑하는 삼환지의 석벽을 그들은 성큼성큼 올라갔다.
 
“히야. 이거 언제 봐도 끔찍하구먼….”
 
처음으로 삼환지의 성벽을 오른 산이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하얀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곳곳에 눈을 부여잡고 뒹굴며 신음하는 왜군 병졸이 널브러져 있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바라본 조․명연합군 포위망에서 마 제독의 본대가 큰 사다리 등을 들고는 뛰어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올라왔나?”
 
“네. 초관님.”
 
서른 명 정도 되는 아동포살수대가 그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나와 미리 약조된 다섯은 왜성의 중요시설에 방화를 시행한다. 나머지 대원들은 삼환지의 잔존병력과 이환지에서 몰려오는 적들에게서 아군을 엄호하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들은 두 패로 나누어 행동하기 시작했다. 한편 함께 온 십 수명의 명군 선발대들은 힘겹게 성을 기어오른 보답을 받기 위함인지 앞이 보이지 않는 왜군 부상자들의 목을 무차별적으로 베기 시작했다. 손쉬운 먹잇감이 사라지자 이들은 무질서하게 흩어져 사방을 배회했다.
 
---
 
“이쯤에서 창고가 있을 터인데….”
 
산이는 수하 하나와 함께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삼환지의 다몬야구라를 찾아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구조가 복잡한 왜성의 특징 때문에 그는 자신이 올린 건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관님. 저거 아닙니까?”
 
눈썰미가 좋은 수하가 그보다 먼저 창고를 발견했다. 기다란 가옥형태의 창고. 다몬야구라가 확실했다.
 
“오. 그래. 이거야. 이거. 자네는 지금 당장 우리가 올라왔던 성곽으로 달려가 밑에 있는 대장님께 물건을 발견했노라 고하고 여대장님한테 기름을 받아 이리로 와라. 알겠지?”
 
“초관님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적습이라도 받으면….”
 
주저하는 부하에게 산이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주었다.
 
“하하. 괜찮아. 내 목숨 따위는 얼마든지 지킬 수 있으니까. 설마 조선 최연소 초관인 나 최산의 실력을 못믿는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그럼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가 어유를 가져오겠습니다.”
 
수하가 떠나자 그는 허리춤에 멘 작은 왜검을 뽑아들고는 창고의 문을 살짝 열었다. 조금 전의 소란으로 인해 창고는 무주공산인 상태였다. 그러나 산이는 입구에서도 혹시 모를 적을 대비하여 경계를 멈추지 않았다. 안에는 곡식 가마니로 가득 찬 상태였다.
 
“호오. 대단하네. 이 큰 창고를 다 채우다니. 이전의 싸움으로 선입지 부근에 쌓아두었던 치중은 다 불탔을 테니 분명 성안의 다른 곳에서 갹출을 한 것이렷다. 왜놈들 어디 배 좀 곯아보라지. 흐흐….”
 
산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창고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소코니와 다레!”
 
“조선사람 데스. 조선사람….”
 
“조선인이요? 이리 나오쇼. 나는 조선군이요.”
 
창고의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왜군 병졸 복장을 한 조선인 포로 하나가 쭈빗쭈빗 거리며 산이 앞으로 나왔다.
 
“칠복이... 셩?”
 
초관은 그의 몰골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 자신과 노역하던 칠복이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 저를 아십니까? 응? 혹시…. 만복이?”
 
“맞소. 셩. 어찌 된 거요? 진가사에 도오마루라니... 참. 그땐 미안했수다.”
 
머리를 긁으며 사과하는 그에게 칠복이는 호방한 웃음을 지었다.
 
“말 마라. 네가 그렇게 맞바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진 후에 어찌나 닦달하고 물고를 내던지 원…. 그래도 이놈들 내 실력은 버리기 아까운지 다시 일을 시키더구먼….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 군사가 여기로 쳐들어왔지. 곳곳에서 뻥뻥 소리가 나고 왜군들이 족족 죽어 나가니 통쾌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더라. 난리 나고 조선인 포로들은 외각에 갇혀놓더니만, 엊그제인가 녹색 갑옷 입은 왜놈 장수가 오더니만 왜군 갑옷을 떡하니 입히더라. 그 뒤론 창고경비나 서고 있었지. 아침에 흰 연기가 나고 왜적들이 비명을 질러 대니 겁이나 창고 속으로 숨어 버렸지.”
 
산이는 칠복이의 전후 사정을 듣고 나서는 파안대소 하며 그와 함께 어깨동무했다.
 
“셩도 참…. 하여간. 나랑 이성을 빠져나갑시다. 곧 성안의 왜군들이 들이닥칠 것이오. 내 돌아가면 탁배기 한 사발 아니 한 동이 째 사드리리다. 하하하.”
 
“그려. 쓰읍. 아. 군침이 동하네. 얼른 가자고.”
 
“슝”
 
그들이 입구로 향하는 순간 화살을 하나가 그들에게 날아왔다.
 
“큭”
 
산이보다 조금 앞서 가던 칠복이가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뻗어 막으려 했다. 화살은 그의 안쪽에 박혔다.
 
“누구냐?”
 
최산은 피가 뿜어져 나오며 서서히 쓰러지는 칠복이를 막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명군의 복장을 한 남자가 활을 잰 체 그들에게 나타났다.
 
“초이시엔 준? 그놈…. 너의 것?”
 
“이 멍청한 때놈아! 이 사람은 조선인이다. 조선 백성이란 말이다.”
 
산이는 가지고 있던 칼을 불상 명군병사의 목에 대었다.
 
“당장 꺼져라. 내 칼에 죽기 전에….”
 
“간다. 가….”
 
명군은 더는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를 쓰러 뒷걸음으로 물러났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려지자 명나라 병졸을 땅에 침을 뱉고는 한어로 욕을 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칠복이 셩. 정신 차려보오. 응? 칠복이 셩”
 
“하…. 만복아…. 힘이 없다. 손목 아래……. 동맥이 나간 거 같다……. 피가 계속….”
 
“힘들면 말하지 마. 셩. 곧 부하 녀석이 돌아올 거니까 그때까지만 참아. 응?”
 
산이는 피가 새는 칠복의 손목에 자신의 속 저고리 끈을 끊어 묶었다. 흰색 무명천이 금방 붉게 물들어 갔다.
 
“만복아……. 내가…. 왜…. 부왜짓을 하면서…. 여태껏 버텼는지 아느냐? 읔…. 내가…. 유복자라서…. 자라면서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가진 욕은 다 먹고 자랐거든. 하하. 자식놈들에게는 그런 소리….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 말하오. 그리고 나는 만복이가 아니라 산이라 하오. 최산. 아동포살수대 초관 최신이오.”
 
칠복은 힘겹게 왼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하하. 나리네 나리. 나랏일 하는…. 이보시오. 군관 나으리 청이 있소…. 죽기 전에…. 이 왜놈…. 갑옷을…. 벗겨주오…. 동…. 생…. 읔….”
 
“정신 차리시오. 셩. 만복이 셩. 정신을….”
 
산이의 얼굴을 감싸주던 그의 손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말하지 않았다.
 
“으아아아... 또…. 또…. 이렇게….”
 
초관은 절규하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리고 분노했다.
 
“가등청정. 이 개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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