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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게시물ID : humordata_17937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뽀식쓰
추천 : 25
조회수 : 2044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9/01/17 00: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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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처지에 놓인 누군가에게는

내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봄



.
.
.


1.
어느날 젊은 30대 남자가 날 찾아왔다

여동생이 자기 품 안에서 죽은 뒤 10년간 자기자신을 놓고 살았다고..

다 큰 성인이 내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 위로에 서툰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몸둘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실패한 자살 시도 이후로 다른 여동생이 같이 살자고 했고

2년째 여동생 집에 같이 살고 있댄다

그 여동생에겐 자식 두명이 있는데

그 조카들 덕분에 살고 싶어졌다고 했다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하는데

프로 보모의 냄새가 났다

조카들 우유먹인 이야기

기저귀 갈아주고 놀아준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니

조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수있었다

조카들에게 멋진 삼촌이 되고 싶어서 그동안 놓친 세월을 따라잡으려고 노력중이라고..

10년이나 늦었지만 그래도 노력하다보면 따라잡을 수 있지 않겠냐며 미소짓는 그 사람을 보니

사람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다시 끌어올리는 것도

결국은 다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2.

어느 날은 한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2005년부터 시작한 이혼 소송이 작년에야 마무리 됐다한다

남편의 가정폭력과 외도로 고통받던 그 아주머니는

ptsd를 앓고 계셨다

남편은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했고

아주머니는 잘 다니던 은행일을 그만둬야 했다

남편은 은행에 찾아가서 해코지를 하겠다며

험한 말을 늘어놓았다 

은행에 전남편이 찾아올 것만 같았고

일반 고객도 전남편이 심은 사람인 것만 같아서

너무 무서워서 일을 계속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전남편에게 위자료나 아이 양육비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아저씨와의 짧은 결혼생활로 남은건

정신적 고통뿐...

장애수당으로 겨우 먹고 살았다고..

이혼소송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양육비와 재산분할로 약간의 목돈이 생겼는데

그 돈은 딸아이와 둘이 같이 살 거처를 구하고 나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딸아이는 친구들과 커피한잔 밥한끼 먹는것조차 본인이 알바를 하지 않으면 할수가 없었다

한화로 5천원쯤 되는 돈이 없어서

친구들 만나러 가는 딸이 빌려달라고 했지만 

고작 그 돈도 쥐어주지 못했댄다

딸이 친구들 만나러 나가고나서 본인의 무력함에 눈물이 났다고..

공부를 곧잘 하던 딸 아이는

돈 버는 맛을 알고나선 돈을 더 벌고 싶어서

학교 공부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본인이 어떤 짐을

아이에게 지웠는지 깨닫고

일을 찾아보려 했지만 10년 넘게 공백기를 가진 사람이

선뜻 일을 구하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연말에만 일하는 임시 알바를 하고 있다며

그 임시 기간이 끝나면 뭘 해야 할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딸 아이는 곧 대학에 가는데

학비가 없어서 포기하게 하고 싶진 않다고..

그런 와중에도 본인과 같은 처지에 놓인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이혼소송을 돕고 계셨다

자기와 같은 실수를 해서 이혼소송이 쓸데없이 길어지지 않도록 돕고 싶다 하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 뿐이었는데

마침 아는 분 회사에서 일자리가 하나 났던게 생각나 아주머니께 소개시켜드리고

대학교 장학금 터는 법을 간략하게나마 알려드렸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자립하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떤 길이든 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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