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군은 모든 국력으로 조선을 침공하지 않았다?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일본군은 임진왜란에 16만명, 그리고 정유재란에 총 12만명을 동원합니다, 예비대까지 포함해서요
그러나 이 숫자는 조선과 가까운 서일본의 영주들만 동원을 한것이고
실제 동일본의 영주들은 거의 오지 않거나, 소수만 데리고 조선땅에서 싸우는척하다가 일본으로 귀환합니다
왜 그런걸까요?
일본은 도요토미가 일본내의 모든 소국들을 정복하고 나서 왕정정치의 흉내를 내보려는 척했지만
막부도 아니고 천황도 아닌 도요토미의 직위는 관백이였습니다
관백은 사실 일본조정에서 꽤 높은 관직이긴 하지만 따지고보면 명예직에 불과했고
고작 오다 노부나가 밑을 섬기던 신하중 도요토미가 운이 좋아서 일본을 먹었다는 풍문과 더불어
도요토미가 일본의 최고 수장이긴 하지만 여전히 지역별로는 영주들이 자치적으로 잘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도요토미의 명령이니 거스르기야 하겠습니까만은 실제 일본의 모든 국력을 동원하면 나올수 있는 병력은
45만명 정도, 도요토미가 마지막으로 정복한 호죠 정벌때는 22만명으로 임진왜란때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홈그라운드와 원정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일본은 봉건국가체제로 여전히 지역별로는 도요토미에게 복속하는 척하는 힘쌘 영주들이 많이 있고
농민들도 애국심이란게 없기때문에 지도자의 실권이 약해지면 반란이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전군을 동원해서 조선에 건너가게되면 일본 내부에서는 조금이라도 힘있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면
일본은 그냥 재패되버리고 맙니다, 그렇기때문에 상당수의 병력은 예비대 차원으로 일본내부에 남겨둬야 했다는 것입니다
2. 조선의 선조는 성을 버리고 떠났지만 일본의 영주들은 그러지 않았다?
흔히 일본과 조선을 비교할때 많이 쓰는 이야기지만 선조가 한양을 버릴때 일본군이 당황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적에게 성이 함락당하면 성주는 부하들을 살리기위해 책임지고 할복한다는 이런 개념을 일본이 굉장히 의리있는 나라로 비춰지지만
실제로 일본 성주들이 도망을 가지 않고 자살한 이유는, 도망갈곳이 없기때문입니다,
일본이라는 땅에는 여러 영주들이 각각의 영토와 국가를 가지고 빽빽히 들어차있기 때문에
서로가 적이고, 본성이 함락되면 적에게 죽을지 아니면 다른 적의 땅에 기어들어갈지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습니다,
둘다 자살행위기 때문에 그냥 속편하게 자살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일본 영주들이 도망가지 않았느냐?
다케다 신겐의 아들 다케다 카츠요리부터가 도망다녔고 그외에 작고 큰 영주들도 살기위해
이곳 저곳 많이 도망다닙니다, 조선만 그런게 아닙니다
3. 일본은 열도이기때문에 수군이 강력하다?
이것은 어느 정도 오해가 있습니다, 사실 일본은 그 무렵까지 제대로된 정예수군이 나온적이 없습니다
왜나하면 각각의 섬들에 여러 국가와 영주들의 자치령이 난립하다보니 서로 섬에 틀어박혀서 통일하려고 싸우기 바빴고
그나마 바다에서 싸움좀한다는 해적들은 약탈보다는 그냥 해협길목에서 떡하니 무역선에 행패를 부리면서 통행세를 뜯기 바빳고
실제 일본이 통일되기까지 결정적인 해전은 없었고, 그냥 강한쪽이 군대를 와르르 끌고와서 정복해버리니 해전이랄껏도 없었습니다
더욱 치명적인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정복하고 나서 '해적금지령'을 내리는데,
이는 힘있는 수상 해적영주들 규모가 대대적으로 축소되게 됩니다
실제로 임진왜란에서 수군에 배속받은 영주들은 '선봉행(船奉行)'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선박을 관리하는 신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즉 육군좀 조선에 실어나르게 배나 관리하고 있어라, 뭐 이정도 취급을 받았으니 수군 소속 영주들 수준이 참 야박하기도 했습니다
그에 반해 조선 수군은 고려시대부터 대규모 침탈을 자행하는 왜구에게 대비를 하기위해 함선의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판옥선이나 거북선같은 물건이 나오기 시작하게 되는데,
거기에 이순신이라는 존재까지 나타나서 남해안에 있는 일본군의 항구를 모조리 격파하면서 일본군의 최대 요충지인 부산포까지 공격당하자
선봉행들은 해전을 포기하고 내륙으로 도망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그 후 해안선에 성벽을 쌓고 조선수군이 오면 포를 쏘는 방식으로
대응방식을 바꾸지만 여전히 일본수군이 오합지졸인것은 사실이였죠, 그러나 정유재란시기에 가면 일본군의 배가 점점 대형화되어가는등
조치가 취해지는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조선수군에게는 안되었던것이 사실입니다
4. 명나라군은 임진왜란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명나라가 조선출병을 하느라 지출한 돈은 약 780만냥입니다, 장거정의 개혁이후
명나라 1년 예산이 500만냥이라는 것을 보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은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명나라가 파병한 병력은 북병과 남병으로 나뉘는데
북병은 이여송이 이끄는 요동기병, 즉 몽골과 여진족을 상대하는 기병이고
남병은 절강성에서온 보병과 화약무기를 중심으로한 중화기병들,
특히 남병들은 척계광이라는 명장이 왜구를 토벌하는 데 공을 세운 역사가 있는 만큼 왜구토벌에 있어서
굉장한 역활을 발휘했고, 화력또한 무지막지합니다, 당시 명나라가 실전배치한 화포의 종류만 여러가지
네덜란드에서 온 홍이포나 척계광이 왜구들 박살낼때 쓰던 호준포, 이슬람에서 쓰던 불랑기포
그러나 실제 명나라가 조선내에서 약탈을 자행한것은 맞지만 실제로 대다수가 북병들의 소행이였습니다
당시 북병들은 기병이 주축이고 벌판에서 유목민들과 상대하다가 밀집보병 위주의 일본군은 상대해왔던 적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병들은 패전이 많았고 성질이 더러워 조선내에서 약탈을 많이하지만,
남병들은 조선군과 어울려서 열심히 왜구들을 소탕합니다, 조정에서는 북방기병이 아닌 남병들을 더 보내달라고 명나라에 호소하기도 하죠
분명한것은 명나라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의한 초강대국으로
일본의 도요토미나 중국먹고 인도까지 가겠다고 큰 소리 뻥뻥치지만,
실상 전장에 와본 일본군들은 조선군과 명나라군은 전혀 다른 위압감을 가진 상대였습니다
실제 연간 10만명을 동원하고도 전장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소리죠
물론 막판에 가서는 빨리 끝낼수 있는 싸움을 한도 끝도 없이 늘리긴 했지만
다만 여기서 명나라군들이 호소하는 '왜 내가 애꿎은 외국에 와서 별 이유도 없이 적과 싸우다 죽어야하나!'이런식의 하소연도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