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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의 진실
게시물ID : humordata_179315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언니거긴안돼
추천 : 14
조회수 : 2695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9/01/14 01: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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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개소리고

 

공식 암행어사 사망사례는  총 암행 663건중 단 3명.

 

수정)의문사 한 사례가 3건임. 그건 내가 잘못 안듯

 

그 3명도 한명은 그 지역 수령이 대접한 술을 너무많이 먹어서 급사한것.

 

급사하자 마자 수령은 말타고 한양 까지 달려서 파직요청을 할 정도임.

 

상식적으로 왕의 직접 명령을 받고 파견나온 관리가 객사 한다는 것 부터가.

 

그 인근지역 모든 수령은 기본적으로 반역죄로 여겨짐.

 

암행어사가 말타고 가다 자빠져서 실종되서 그 지역을 금부도사군으로 쓸어버릴려고 준비하던중에 다시 복귀해서 살아남은 사또도 있고.

 

의문사 사례는

경상 감사(慶尙監司) 남일우(南一祐)가, ‘우도 어사(右道御史) 조병로(趙秉老)가 죽었습니다.’라고 아뢰니, 전교하기를,

"지금 경상도 관찰사의 장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람은 평소에 쓸 만한 인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복명한 뒤에 크게 등용하려고 했는데, 이런 소식이 올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이다. 귀와 눈 같은 중요한 직책에서 3년 동안 애써 수고했으며 국가에 봉직하다가 죽었으니 조정(朝廷)에서 우휼지전(優恤之典)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고 영남우도 암행어사(故嶺南右道暗行御史) 조병로에게 특별히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추증하는 동시에 원래의 치부(致賻) 외에 후하게 더 지급하라. 반구(返柩)와 귀장(歸葬) 등의 절차는 특별히 해도에 신칙하여 규례를 벗어나서 각별히 비호하며 그의 아들은 나이에 구애받지 말고 상을 마친 뒤에 즉시 조용(調用)하도록 하라."했다.

고종 실록 23권, 고종 23년 5월 17일 기유 1번째 기사 1886년 조선 개국(開國) 495년

 

평안 감사 김이교(金履喬)가 청북 암행 어사 임준상(任俊常)이 강계부(江界府)에 이르러 갑자기 구토와 설사를 하다가 죽었다고 아뢰니, 하교하기를, 
“지금 평안 감사의 장계를 보니, 놀라움과 슬픔을 금하지 못하겠다. 평소 그 사람이 쓸 만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복명하기를 기다려 발탁해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 지경에 이를 줄이야 어떻게 생각이나 했겠는가? 참혹하고도 참혹하다. 소중하기로 말하면 이목(耳目)의 구실을 맡겼고 공로로 말하면 사신이 들판과 늪 지대를 알리는 것보다 더했는데, 그 죽음 또한 국사 때문이었다. 별도로 돌보아주는 일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고 청북 어사 임준상을 특별히 동부승지로 증직하고 널을 싣고 돌아오는 것과 장사를 치르는 절차에 대하여 각도로 하여금 특별히 돌보아 주게 하라. 그리고 그에게 아들이 있으면 나이가 성년(成年)이 되지 않았더라도 복을 벗기를 기다려 채용하라고 해조(該曹)에 분부하라.” 했다.
순조 실록 25권, 순조 22년 6월 26일 무진 1번째 기사 1822년 청 도광(道光) 2년

 

전라도 암행 어사 홍양한(洪亮漢)이 태인현(泰仁縣)에 이르러 갑자기 죽었는데, 사람들이 그가 중독(中毒)된 것이라고 의심했다.
영조 실록 101권, 영조 39년 4월 9일 뿅뿅 4번째 기사 1763년 청 건륭(乾隆) 28년


출처 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0703487?view_best=1&pag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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