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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투더코아의 詐欺 列傳]47.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게시물ID : history_179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투더코아
추천 : 2
조회수 : 7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9/01 03:43:35
투더코아의 詐欺 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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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daum.net/carilla
 
*장석지.풍당열전(張釋之.馮唐列傳)
 
세월이 태평하여 천하에 전란이 사라지고 억센 장수들은 말을 쉬게 하고 갑옷을 벗었으며
백성들은 칼자루를 놓고 생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평소에도 국방은 필요한것이지만 그래도 전란의 시기와는 사뭇 달랐으니
이제는 무장들의 시대라기 보다는 현명한 문신들의 시대가 왔다.
또한 고조시대의 명 재상들도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니
장강후랑추전랑 (長江後浪推前浪)이라 하였던가?
 
새 시대의 새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는데에는 법도와 온화한 품성이 더욱 중요했던가 보다.
법을 지켜 대의를 잃지 않고 군주의 총명을 북돋우던 명신들이 있었다.
 
이제부터 장석지와 풍당의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불편부당 왕도탕탕(不偏不党 王道蕩蕩)
 
정위 장석지(張釋之)는 도양 사람으로 자는 계 이다.
그는 형인 장중과 함께 살고 있었다.
집안이 부자였던 때문에 재물을 바치고 기랑의 벼슬을 얻어 효문제를 섬겼으나
10년이 넘도록 승진도 못하고 이름이 나지도 않았다.
낙심한 장석지가 투덜거렸다.
"오랬동안 벼슬했지만 형의 재산만 축내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구나."
그리고는 스스로 사직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평소에 장석지의 현명함을 알고있던 중랑장 원앙이 그를 아깝게 여겨 황제에게 추천했다.
그래서 장석지는 알자가 되었다.
 
장석지는 황제가 한가한 때를 만나 효문황제에게 나라에 유익한 일을 상주했다.
그러나 황제는 너무 장황한 이야기에 지루하여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너무 고상하고 요원한 이야기 말고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는것만 말하라."
그래서 장석지는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흥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제서야 황제는 장석지를 알자복야에 임명 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장석지가 황제를 모시고 동물원에 갔다.
황제는 상림원의 위 에게 여러 짐승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는데 그 위는 말을 하지 못하고
주위에 도움을 구하듯이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며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다.
곁에 있던 색부가 위를 대신하여 대답하는데 막히는것이 없이 물 흐르듯 명확하게 대답 하였다.
 
황제가 상림원의 위를 꾸짖었다.
"관리라면 자기의 일에대해 잘 알아야 하지 않는가?
능력도 없이 자리에 앉아 있다니.."
 
황제는 장석지에게 조칙을 내려 그 색부를 상림령으로 임명하게 하였다.
장석지가 조용히 황제에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강후 주발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덕이 높은 사람이다."
"그러면 동양후 장상여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역시 훌륭한 사람이지."
"폐하께서 유덕자라 말씀하신 그 두사람은 말주변이 없어서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하기로 유명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일을 논할 때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합니다.
 
옛 진나라때는 말주변이 좋고 법 구절을 잘 외는자를 등용하였고
그래서 시황제는 그의 과실을 들을 수 없어 결국은 나라는 쇠약해지고
이세에 이르자 천하는 흙더미가 무너지듯 붕궤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폐하께서 색부가 구변이 좋다는 이유로 파격적으로 지위를 올리시면
천하가 모두 출세를 위하여 변설에만 다투어 매달릴테니 실익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지저귀는 말 주변이 뛰어난 색부와 같은 사람을 배우라고 하십니까?"
 
효문제가 이 말을 듣고 그를 옳게 여겨 색부를 상림령으로 삼을 생각을 버렸다.
효문제는 장석지를 공거령에 임명했다.
 
얼마후 황태자와 양왕이 한 수레를 타고 입조하면서 사마문에서 내리지 않고 들어갔다.
장석지가 급히 쫓아가 그들을 제지 했다.
"공문에서 내리지 않으면 불경죄에 해당합니다."
장석지는 즉시 탄핵 했다.
효문제가 박태후를 찾아가 관을 벗고 사죄 하였다.
"이는 제가 자식교육을 잘 못한 책임입니다."
이에 박태후는 사자를 보내 조칙을 받아 태자와 양왕을 사면하도록 부탁 했다.
그런 뒤에야 그들은 궁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효문제가 장석지의 행동을 기특하게 여겨 중대부로 삼았다가 바로 중랑장에 임명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황제가 패릉에 올라 신부인에게 대금을 뜯게하고 노래를 불렀다.
마음이 처량해진 황제는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북산의 굳은 돌로 곽을 만들고 마와 면을 썰어 틈새를 메우고 옻을 칠해 그것을 고정시키면
아무도 그것을 열지 못하겠지?"
 
좌우 신하들이 모두 그러하다고 대답했는데 장석지가 나서서 말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탐낼것이 있으면 남산 전체를 외곽으로 삼고 쇳물을 부어 고정시킨다 해도
 반드시 노릴 틈새는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사람들이 탐낼만한것이 없으면 석곽이 아니라 해도 걱정할것이 없을것입니다."
효문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석지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였다.
효문제는 장석지를 정위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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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후 황제가 궁을 나와 중위교를 지날때였다.
그때 갑자기 다리밑에서 사람이 하나 튀어 나와 승여를 끌던 말을 놀라게 하였다.
그사람은 곧 기병대에게 체포 되었다.
황제가 그를 정위에게 내려 취조하게 하였다.
장석지가 취조를 해 보니 그의 말은 이러했다.
"저는 이 주변에 사는 사람인데 이곳이 통행 금지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다리밑에 숨었다가
시간이 한참 되어 이제 폐하의 행차가 다 지나갔는가 하고 무심코 나온것인데
마침 그때 폐하의 행차와 만나게 되어 놀라 달아나려 한것뿐입니다."
 
장석지가 조사를 마치고 황제에게 보고했다.
"한 개인이 통행금지를 위반 했으니 벌금형에 해당합니다."
황제가 노하여 말했다.
"그자가 나의 말을 놀라게 하였소.
다행히 내 말이 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짐이 크게 다쳤을수도 있소,
그런데도 정위는 그에게 겨우 벌금형으로 처벌한단 말이오?"
 
장석지가 대답 하였다.
"법이란 천자나 백성이나 똑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법으로 이것이상 처벌할수 없는데 폐하의 말이 놀랐다 하여 더욱 가중하여 처벌한다면
백성들은 법을 신뢰하지 못할것입니다.
만일 당시에 폐하께서 주저없이 그를 주살 하셨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었지만
폐하께서는 그를 정위인 저에게 넘기셨습니다.
정위란 천하의 법을 공평하게 집행하는것이 주된 책무인데
이 공평이 한번 무너지면 만백성이 법을 믿고 살아갈수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이점을 양찰 하여 주십시오."
 
한참후에 효문제가 말했다.
"정위의 판결이 옳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후 어느날 고조의 묘당에 놓인 옥가락지를 훔친자가 체포 되었다.
효문제가 크게 노하여 그를 정위에게 넘겼다.
장석지가 법률조문을 확인한후 상주하였다.
"기시의 죄에 해당 합니다."
그러자 효문제가 더욱 노하여 말했다.
"저자가 무도하게 종묘의 어용품을 훔쳤는데 겨우 기시에 그친단 말이오?
내가 정위에게 그를 맡긴것은 그의 일족을 멸할것을 기대한것인데
겨우 기시에 처하면서 법대로 처리했다하니
이래가지고 내가 어떻게 종묘를 공경하여 받든다고 할수 있겠소?"
 
장석지가 관을 벗고 사죄하며 말했다.
"법대로 하면 이것으로 충분 합니다.
죄명이 같다해도 그 정도에 따라 반드시 차등을 두어야 합니다.
만일 종묘의 기물을 훔쳤다 하여 일족을 멸한다면
장릉을 도굴한 자가 생겼을때 폐하께서는 어떤 형벌로 다스리시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효문제가 황태후와 오랜 상의를 한 끝에 정위의 판결이 옳았다고 동의 했다.
 
이러한 일로 장석지의 명성이 높아지고 조후 주아부.산도후 왕염개.등과 친교를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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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문제가 붕어하고 효경제가 즉위했다.
 
장석지는 효경제가 황태자였을때 그를 탄핵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죄를 받을것이 두려워
병이라 칭하고 근신했다.
장석지의 입장에서는 사직을 해도 주벌 될것 같고 사죄하려 해도 용서를 받을지 알수 없어서 전전긍긍 했다.
 
당시에 왕생이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황.로의 학문에 통달한 저명한 현사였다.
한나라 조정에서는 황.로 의 학문이 매우 존중되었으므로
삼공 구경이 모두 기립해 있을때에도 그만이 착석을 허락 받았다.
왕생이 장석지에게 계략을 하나 일러 주었다.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시오."
 
드디어 어전에서 회의가 벌어졌다.
왕생이 큰소리로 말했다.
"내 신발끈이 풀어졌네."
조정의 황제와 공경대신의 주의가 모두 왕생에게 쏠렸을때 왕생이 장석지를 지목하여 말했다.
"자네가 내 신발끈좀 매주게."
 
모든 대신이 바라보는 가운데 장석지가 왕생에게로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왕생의 신발끈을 매어 주었다.
물론 효경제도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런일이 있은후 효경제는 장석지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나중에 어떤 대신이 왕생에게 물었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하필 장석지를 지목하여 그에게 창피를 주셨습니까?"
"나는 늙고 보잘것 없는 사람이오.
그러니 아무리 해도 장정위에게 도움을 줄 일이 없었소.
장정위는 당대의 명신인데 폐하의 미움을 사고 있지 않소?
그래서 나같은 사람이 그를 욕보임으로서 천하 사람들이 그를 존중하게 한것이오.
이쯤이면 폐하께서도 그를 벌할수 없을것이오."
공경대신들이 그 말을 듣고 왕생을 현명한 사람이라 칭송하고 더욱 존경했다.
 
장정위는 그후 일년쯤 효경제를 섬기다가 회남왕의 재상으로 전출 되었다.
역시 지난날의 탄핵사건 때문이었다.
장석지는 회남의 재상으로 있다가 죽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풍당(馮唐)은 그의 할아버지가 조나라 사람 이었지만 아버지때에 대나라로 이주 했다.
한나라가 일어나자 다시 안릉으로 이주 했다.
풍당은 효자로 이름이 높았다.
중랑서장이 되어 효문제를 섬겼다.
 
효문제가 수레를 타고 중랑서를 지나다가 풍당을 만났다.
"노인은 어찌하여 낭관이 되었소?
그대의 고향은 어디요?"
풍당이 자신의 과거를 자세히 아뢰었다.
그러자 효문제가 다시 물었다.
"내가 대국에 있을때 나의 상식감이 조나라장수 이제의 현명함과
거록에서의 전투 얘기를 자세히 들려주었소.
지금도 나는 식사때마다 마음이 거록땅으로 달려감을 누를 길이 없소.
노인도 이제 를 아시오?"
"그러나 이제는 염파장군이나 이목장군만은 못합니다.
저의 조부가 조나라에 있을때 장수였기때문에 이목과 친분이 있었고
저의 부친이 대나라의 재상이었던 까닭으로 이제와 친근하였기때문에 그를 잘 압니다.
그러한 관계로 두 사람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황제가 염파와 이목의 이야기를 청해 듣고 매우 기뻐하며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깝다.
내게는 왜 염파와 이목같은 장수가 없단 말인가?
그들이 있다면 나는 흉노에 대한 걱정이 없을텐데.."
 
그러자 풍당이 말했다.
"황공하오나 폐하께서는 염파나 이목을 얻는다 해도 그들을 쓰지 못할것입니다."
 
황제는 그말에 성이나서 자리를 떠버렸다.
그후 황제가 풍당을 불러 꾸짖으며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욕보였는가?
그런것은 아무도 없는곳에서도 충분히 말할수 있지 않았는가?"
 
풍당이 엎드려 사죄 하였다.
"저는 시골출신이라 예의를 몰라 그랬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당시에 흉노가 침범해서 북지군 도위 손앙을 죽였다.
황제는 흉노가 신경쓰여서 고민 하다가 풍당을 불러 물어 보았다.
"다시 묻겠소 그대는 어찌하여 내가 염파나 이목을 쓸수 없다고 한것이오?"
"신이 듣기에 옛날 왕들은 장수를 출전시킬 때 수레바퀴를 밀어주며며
'나라 안의 일은 과인이 알아서 할테니 나라 밖의 일은 장군이 알아서 하시오'
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군공과 상작은 모두 장군이 결정한 후에 돌아와 왕에게 고하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신의 조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목이 조나라 장군이 되어 변경에 머무르며
군중에 설치한 시장에서 걷어 들이는 조세는 모두 휘하의 군사를 위해 사용하고
상금을 줄 때도 스스로 결정하고 조정에서는 일체 간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목은 그의 지혜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차1300대.궁수와 기병13000기.용사10만 명을 선발하여 선우를 북쪽으로 쫓아내고
동호를 무찔렀으며 담림을 멸하며
서쪽의 강포한 진나라와 남쪽의 한과 위나라를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정세로는 조나라는 거의 패업을 이룰 수 있는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 후에 조왕 천이 섰습니다만 그의 모친은 거리에서 노래 부르고 받은 돈으로 살았던 창녀 출신이었습니다. 조왕 천은 간신 곽개의 아첨하는 말에 빠져 이목을 주살하고 안취를 대신 내보냈습니다.
이로써 군대는 무너지고 병사들은 모두 달아나 결국은 조왕은 진나라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신이 듣건대 운중군수 위상 은 군중에 설치한 시장에서 징수한 조세를
사졸들을 위해 모두 사용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돈을 써서 5일마다 소 한 마리씩을 잡아
변경고을의 빈객과 군리와 사인들을 접대했음으로 흉노가 멀리 달아나
몸을 피해 운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딱 한번 흉노가 쳐들어 왔으나 위상이 거기를 이끌고 출전하여 흉노의 많은 무리들을 격살했다고 했습니다.
 
무릇 사졸들은 밭을 일구다가 몸을 일으켜 종군하게 된 남의 집 아들들 입니다.
척적이 무엇인지 어찌 알며 오부 등의 군법과 군령을 어찌 알수 있겠습니까?
하루 종일 있는 힘을 다해 싸우고 적군의 목을 참수하고 포로를 잡으나
상부에 공로를 고할 때 한마디 말이라도 서로 같지 않으면 문리들이 법의 올가미로 얽어 넣습니다.
상은 이행되지 않지만 문리들이 법을 밝혀 죄를 주는 행위는 필히 행합니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폐하께서는 법을 너무 크게 밝혀 상은 가볍게 행하고
벌을 주는 일은 지나치게 중하게 합니다.
하물며 운중군수 위상은 공적을 상부에 올릴 때 수급과 포로가 단지 6개의 차이가 났지만
폐하께서는 문리에게 하명하여 위상의 작위를 깎고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 일을 볼 때 폐하께서는 염파나 이목을 얻는다 할지라도 능히 쓰실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신은 진실로 어리석어 황상의 심기를 건들었으니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진실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효문제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풍당의 충언을 몹시 기뻐 했다.
황제는 그날로 즉시 풍당을 사자로 하여 황제의 부절을 주어보내 위상을 사면하고
다시 운중태수로 복귀 시켰다.
또한 풍당을 거기도위로 임명하여 전차부대를 지휘 하도록 하였다.
 
나중에 효경제가 즉위하여 풍당을 재상으로 삼았으나
풍당은 연로하여 곧 사직했다.
 
효무제가 즉위하여 현명한 인사를 구할때 다시 풍당이 천거 되었지만
이미 나이가 90이 넘어 출사할수 없었다.
 
그래서 풍당의 아들 풍수를 낭 으로 삼았다.
풍수는 나(사마천)와 친분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글의 말미에 사마천은 이렇게 평하였다.
 
장석지의 유덕자 에 대한 진언은 황제에게 아부한것이 아니며 법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고.
풍당의 장수론에 대한 견해는 참으로 의미심장한데가 있다.
 
옛말에 ㅡ그 사람을 모르면 그 친구를 보라 ㅡ
는 말이 있는데 장석지와 풍당을 보면 그 두사람을 칭찬한 두 임금의 인품을 알수 있다.
 
서경의 모범편에 이러한 말이 있다.
 
ㅡ불편부당하니 왕도는 넓고 크며 부당불편하니 왕도는 공평한 것이다.ㅡ
장석지와 풍당이 이 말에 가깝게 살다간 사람들이라 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상으로 장석지.풍당 열전을 모두 알아 보았다.
 
장석지는 젊어서부터 공명정대했고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고 법을 집행했다.
상대가 설사 황태자라 해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었었다.
자신에게 화가 닥칠것을 알면서도 법대로 처결 했으며 황제의 마음을 살피기 보다는
법의 공평무사함을 지키기 위해 노력 했다.
정위라는 벼슬이 현세의 법관이나 검사 정도의 수장격이니 지금 이시대를 살고있는 판.검사들은
장정위의 행적을 잘 살펴 본받아야 할것이다.
 
풍당은 늦은 나이에  우연히 황제의 눈에 띄어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그 시작이 매우 기묘하다.
황제를 모욕 주었으니 그 죄는 죽음에 해당할수도 있었지만
풍당의 빼어난 군사관에 반한 황제는 그를 벌주지 아니하고 오히려 풍당을 승진 시켜
결국 나중에 재상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물론 풍당의 인품과 지식이 뛰어난 탓도 있겠지만
그러한 인물들을 알아보고 등용한 황제들의 인품 또한 음미해 볼만 하다 하겠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천 여년 전의 황제들 또한 이처럼 사람을 쓸때 불편 부당한 기준으로 등용 했는데
지금의 시대에는 어찌 사람 쓰는 법도가 이처럼 무도한지 알수가 없다.
그동안의 수많은 인사참사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
이제 더이상 기대도 할수 없을만큼의 처참한 상태에 도달했으니
이 정부에 대한 분노가 그 도를 넘어 서글프고 처량한 마음이 드는것을 주체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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