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t님. 역시 오유는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을 잘 알려줘서 좋네요.
충무공이 부산으로 진격한 사실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검색해서 자세히는 아니지만 약간은 찾아 봤습니다.
(참고한 내용
http://history21.egloos.com/viewer/2386227, 수군을 맡은 후 원균이 올린 내용을 보니 치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읽어보니 충무공이 출진 전에 이미 파직이 결정되었다고 쓴 사람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정의 조사 시점은 부산포출진 전이고 그 조사에서 원균은 자신이 수군을 맡았으면 부산으로 진격했을 것이라고 보고했고,
원균의 보고와 조사 결과가 함께 올라간 후 이순신의 파직이 결정된 된 시점에서 조정의 명이 내려오기 전에 부산포로 출격했다고 보는게 좋겠군요.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있었을 테니까요. 조금더 정확하게 알게 된 것 같아 Zert님께 감사드립니다.
Zert님 답변도 저로서는 대부분 수긍합니다.
1. 해전에서 충무공 관할 구역 작전에 패배는 없었다(이 부분은 후술)
-> 저는 이 점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좋을실 때 자세한 부분도 후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도성을 버리고 피난을 가는 임금과 달리 충무공은 백전백승하며 백성들에게 명망이 높았던 점(여러번 반란 경험한 선조는 부담을 느꼈을 것)
-> 이 부분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굳이 연전연승하는 장군을 조사시켰겠지요.
3. 원균처럼 조정에 딱히 정치적인 연줄인 없다는 점
(류성룡은 정치적 연줄로 보기에 애매하다. 충무공이 조정에 올린 글은 딱 2개, 승전보와 부족물자요청서다)
->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1) 류성룡은 왜 정치적 연줄로 보기 애매한지: 류성룡의 정치적 지원이 미미했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요?
2) 원균은 어느 정도의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원균의 정치적 배경은 이순신의 정치적 배경보다 좋았나요?
3) 권율이 장인인데 이것이 든든한 정치적 배경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즉 권율도 충무공의 든든한 배경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4) 마지막은 제 지식이 짧아 드리는 질문일 것 같습니다.
충무공은 승전보와 부족물자요청 조정에 2가지만 올렸다고 하셨고, 이것이 정치적 배경이 없다는 근거로 말씀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왜 근거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치적 배경이 있는 다른 장수들은 다른 내용도 올리고 했는지요?
이에 대해 조금더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답변을 해 주실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