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만해도 커튼처럼 드리운 검은 하늘이 비를 쏟아냈는데 누가 커튼을 걷어낸것마냥 아무 방해없이 햇빛이 내리쬐는 며칠이다. 한번쯤 시원하게 비가 내려줬으면 하는데 도통 소식이 없네. 덥다고 에어컨 앞에서만 사는건 아니지? 넌 에어컨 바람 쐬면 금방 아프곤하니까 더워도 너무 에어컨 앞에만 있지마. 종종 창문 열고 환기도 시키고 가능하면 선풍기쓰고.
더워서 그런지 입맛도 없다. 입이 짧은 것도 아닌데 요새는 하루에 한끼 먹는것도 버겁네. 세상에 얼마전에는 큰맘먹고 몸보신하겠다고 보쌈시켜놓고는 다섯점 먹고 다시 포장해서 냉장고에 넣어버렸어. 동생들이 미쳤다고 하더라. 그 맛있는걸 어떻게 다섯점만 먹고 남기냐고... 가뜩이나 더위에 약한데 입맛도 없어져서는 공부할 기운조차 나지가 않아. 오늘은 하루종일 멍해져있었네.
나 있잖아. 이제야 조금씩 널 이해해가고 있어. 네가 나에게 그랬잖아. 너와 나의 나이차이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네가 가고나서 사실 나는 전혀 납득 못하고 있었거든. 입으로는 알았다 이해한다고 말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전혀 이해하지못했었는데 요즘 조금씩 네 말이 이해가 가.
너와 내 나이차이가 6살이면 내가 올해 임용이 된다고 해도 27이고 바로 군대에 다녀와도 29에서야 제대를 하겠지. 아무리 짧게 잡아서 1년만 돈을 모은다고 해도 나는 서른이고 너는 36이 되고. 그 시간이 너에게 무척이나 긴 시간이고 불안한 미래로밖에 보이지않는다는걸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어.
나는 비록 너에게 확신을 가지고있지만 그 확신이 너에게는 불안해보였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되게 원망하고 되게 미워했어. 혼잣말로 투덜투덜거리고 그저 내가 싫었는데 괜한 핑계대는거라고. 뭐 그러면서도 네 전화 한번, 문자 한통에 금세 실실 웃기는 했지만.
아주 조금씩 납득하고 현실을 이해해. 뭐 물론 아직도 제대로 철들려면 멀고 먼 길을 가야할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씩 이해하고 있어. 네 마음, 네 행동, 네가 했던 말들.
갑자기 또 보고 싶다. 핸드폰이 고장나서 네가 보내줬던 사진, 문자 모두 지워졌어. 이런 날에는 항상 네 사진 꺼내서 보곤했는데 이젠 그럴수조차 없네. 정말 보고 싶다.
내일은 비가 왔으면 좋겠다. 빗길을 스치듯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도 듣고 싶고 유리창에 부딛치는 빗소리도 듣고 싶어. 거리에 가득했던 먼지들이 잠잠해지고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듯 먼지들을 가지고 밑으로 흐르는 빗물이 보고 싶어. 그리고 차갑게 식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그럼 탁해진 나도 조금은 맑아지지않을까?
더운데 건강 조심해. 아프지말고 밥 꼬박꼬박 잘챙겨먹고. 네가 행복한 하루들을 보냈으면 좋겠어. 그럼 언젠가 다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