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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착한 남자가 아니였다면 더 좋았을까?
게시물ID : gomin_17922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GRqa
추천 : 2/16
조회수 : 1191회
댓글수 : 24개
등록시간 : 2021/11/29 22:23:38

나는 얼빠였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도록 얼빠였으니, 굉장히 철이 덜 들었었던거 같다.

 

철도 덜 들었고, 딱히 좋은 여자라곤 할 순 없었겠지만, 그동안 외모가 준수한 남자들을 만나왔었던거 같다.

 

외모만 보다보니, 제대로된 남자를 못 만났었던거 같다.

 

나는 나쁜 여자였고, 나쁜 남자들을 만나왔던거 같다.

 

나같은 여자가 뭐가 좋다는건지 10여년 넘게 좋다고 따라다니던 녀석이 있었다.

그녀석의 마음은 알지만 받아줄순 없었다. 같이 있으면 즐겁고 대화도 잘 통했고, 어디까지나 선을 지킬줄 아는 녀석이었고

자주 연락을 하다가도 내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연락을 끊고 간간히 안부인사만 하는 녀석이었다.

내가 남자친구랑 싸우고 술한잔 하자고 연락을 해도 니 남자친구가 싫어할거다 하면서 거절하던 정말 착한녀석이었다.

그 녀석의 여러번의 고백에도 받아주지 않았었다. 내 기준에선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사귀던 남자친구와 사고를 쳤다. 남자친구란 놈이 차단하고 도망갔더랬다.

 

낙태하러 병원에 가니, 보호자가 있어야 한단다.

 

병원 복도로 나가 그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석은 분명히 올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었다.

당연히 와줄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감동은 없었다. 그녀석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녀석은 날 보자마자 안고는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그냥 낳자고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낙태수술하면 여자한테도 굉장히 안 좋다고..

그 말에 울음이 터졌고 그녀석을 안고 나도 같이 울었다.

항상 옆에 있었기에 당연한줄 알았다. 그녀석에게 처음으로 미안했고, 미안해서 울었다.

 

나는 정말 나쁜여자다.

 

결국 낙태수술을 했고, 나는 그렇게 그녀석과 연애를 시작했다.

 

한 1년간은 너무나 좋았다. 그녀석은 심장이라도 내어줄 기세였고, 그 마음도 변치 않아보였다.

다 받아주었고, 다 해주었다.

 

1년쯤 지나니 그녀석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소한것들 하나하나 지적하기 시작했다.

다른 남자들에겐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녀석에게만 그랬던거 같다. 나도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종종 남사친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고, 종종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 관계를 하고 있다는 헛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녀석은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 얘기하고 싶어했던거 같다.

그 녀석이 처음으로 나에게 화를 냈다.

널 못 믿는게 아니고 그 남자들을 못 믿는거라며 화를 냈다.

 

알게 모르게 내 스스로 갑이라 생각했고 그녀석을 을이라 생각했던거 같다.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말

'만나주는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어느 순간 그녀석은 내가 누굴 만나든지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니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게 싫지만, 어짜피 말해봤자 계속 싸우게 될걸. 받아 들여야지.

 

평소와 다름없이 잘해주었고, 변함이 없었다. 미묘하게 다른 점 알수 없었지만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게 날 너무나 짜증나게 했고 화를 내게 했었다.

그녀석에게 투정하고, 사소한 것에 화를 내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변한건 그녀석이 아니고 나였다는걸

 

기분전환겸 혼자 부산으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녀석은 내내 그게 걱정되는 눈치였다.

'너 여행하는거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도착했는지 어디에 갔는지 행선지정도만 간단하게 톡 달라고 말했다.

걱정되니깐 그정도만 해줬으면 좋겠다.'

 

갑자기 전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생각났고 그 녀석에게 말하고 말았다.

 

'나 혼자 부산 여행 갈때 전에 만나던 사람이 연락 한번 안해줘서 삐졌었는데, 연락 후 왜 연락 안했냐고 물어보니까 너무 너무 연락하고 싶었는데 너 여행하는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연락을 안했다.' 추억속에 빠져 신나게 얘기 했던거 같았다.

 

씨익 웃으며 그녀석이 말했다. '그럼 연락 하지말까? 여행에 방해 되니까?'

 

그때 상처받은 너의 표정을 조금더 신경썼어야했는데..

 

'응 연락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응'

 

부산 여행을 시작했고, 그녀석은 연락 안한다고 했으면서 내가 이내 걱정이 되었는지 잘 도착했냐고 톡을 보내왔다.

여행에 집중하고 싶어서 무시했다.

그 녀석의 마음을 좀더 신경써줬어야 했는데

 

하루가 지나니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부산에 산다던 남사친을 불러 같이 놀았다. 부산 구경 확실하게 시켜준다는 남사친이 이것저것 많이 사줬다.

부산에서 정말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다. 

 

이제서야 남자친구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음식 사진들을 찍어 남자친구에게 보내줬고

 

'oo랑 만나서 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오 자갸'

 

그 이후로 남자친구는 톡을 보내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어야 했는데.. 나는 너무나 멍청한 여자였던거 같다.

 

부산에서 버스를 타며 남자친구에게 도착 예정시간을 문자로 보냈다.

 

남자친구가 조금 늦었다. 짜증이 났다.

 

어색하게 웃으며 '잘 다녀왔어?' 말하는 그녀석의 표정이 너무나 짜증이 났다.

 

'무거워 이거나 좀 들어줘'

 

그녀석은 말 없이 내 짐을 받아 차에 싣고, 말없이 운전을 했다.

 

그녀석이 운전하는 내내 짜증만 냈었던거 같다.

 

그리고 그녀석이 내게 말했다.

 

'우리 그만 만나자'

 

너 따위가 감히? 나는 정말 정신머리없는 여자였던거 같았다. 당연히 그 녀석이 미안하다고 빌줄 알았고, 당연히 돌아와줄줄 알았다.

 

그녀석은 이미 마음을 정리한 뒤였다.

 

이제서야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못된 여자였는지 이제 알게 되었고,

그 녀석이 얼마나 좋은 남자였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주변에 괜찮은 남자들이 많았다고 생각했건만, 할일 없고 능력없는 놈팽이들밖에 없더라..

 

이제서야 너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너.. 알게 모르게 여자들한테 인기가 참 많더라..

그걸 왜 몰랐을까

 

니가 너무나 보고싶다. 다시 날 봐줬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자고 매달렸지만. 차분히 너의 생각을 전하는 그 말이.. 참 마음을 아리게 했다.

 

'너는 버림 받은게 아니야, 우리가 헤어진건 너와 내가 맞지 않았을 뿐이야. 나는 너에게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했지만, 너는 언제나 그게 부족했던거 같아.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너는 언제나 부족할거야... 나는 쭈욱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나는 나쁜 여자니까, 여전히 니 탓만 한다.

 

니가 나에게 조금만 덜 해줬으면, 니가 나에게 좀더 자주 화를 내줬으면 내가 이러지 않았을텐데

 

너무 잘해주지 말지, 너무 퍼주지 말지..

 

나는 여전히 니 탓만 한다.

 

그래서 니가 너무나 보고싶다.

 

10여년 넘게 내 옆에 있어 주었던 사람이었고, 언제나 내 편이었고, 언제나 나만 생각해주던 그런 녀석이었는데

앞으로도 쭈욱 내 옆에 있을줄 알았는데..

 

그냥 니가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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