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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한국-일본 이중제국을 꿈꾸던 자의 최후
게시물ID : history_179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군Fish
추천 : 14
조회수 : 3171회
댓글수 : 22개
등록시간 : 2014/08/30 01:38:31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e2RiY

1868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이용구'는 1890년대 동학당에 입교하여 당시 동학교주였던 최시형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전봉준이 이끄는 우금치전투에서 부상을 입을정도로 매우 열성적인 동학교도였죠.


하지만, 동학교도들이 조선정부와 일본군 연합에 진압당하면서 이용구는 잠시동안 일본으로 가서 망명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망명기간동안, 그는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급속도로 발전해나가는 일본을 보며 감탄함과 동시에, 이에 비해 발전이 거의없는듯한 조선정부를 비교하면서 절망하게 됩니다. 

동학당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완화되자, 이용구는 다시 조선(대한제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동시에 흩어졌던 동학교주인 손병희와 함께 동학세력들을 규합하여 10만여명의 교인들을 모을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용구는 자신을 따르는 개화파 동학세력을 '진보회'라 불리며 거대한 세력을 이루었는데, 을사조약이후 망해가는 대한제국을 더욱더 팔아먹을려는 악질 친일파 손병준이 이용구를 찾아와서 제안을합니다. 

손병준 자신이 창설한 친일단체인 '일진회'와 이용구의 '진보회'를 통합하자는 말이었습니다.

이용구는 손병준의 제시에 흔쾌히 수락하며, 그가 추천해주는 다양한 일본인 인사들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이 일본인 인사중에선 '우치다 료헤이'라는 자도 있었는데, 이자는 '자신의 조국인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로 성장했으니, 일본의 주도하에 동아시아의 질서를 되바꿔야된다'고 믿었던 '흑룡회'의 수장이었죠.


이용구는 이런 우치다료헤이의 주장에 어느정도 수긍하면서, 갑자기 새로운 생각을 해내었습니다. 

그는 '대한제국이 아무리 잘해봤자 혼자서 근대화는 절대 불가능'이라는 생각을 지녔던지라, 차라리 일본과 한국이 영토는 합치되, 정치와 국민은 따로 분리하는 이중제국 체제를 이루는게 어떻나는 거였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에 있던 국가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헝가리인들은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열렬한 독립투쟁과 오스트리아 내외부에서의 혼란으로, 결국엔 정치는 하나지만, 국민과 국가가 나누어진 '한 영토에서의 두개의 국가가 존재하는' 소위 이중제국 체제를 이루고있었습니다.


그 역시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처럼, 한국황실과 일본황실이 결혼및 한일 내각이 공동으로 정치를 이루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화를 도와주는 대신, 한국과 일본 국민은 서로의 평등을 유지하자는 생각을 하고있었습니다. 

이용구의 일본인 조력자 우치다 료헤이도 그의 주장에 적극적인 찬성을 하여, 조선주재 통감부에 빨리 간청해보라고 독촉을 하였죠.


이용구와 일진회 회원들은 통감부로 가서 이러한 한-일 이중제국 체제에서의 한-일 합방을 청원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를 먼저 눈치챈 자가 있었으니, 바로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이었죠. 

이완용은 을사조약과 정미조약으로 인해 역대급 매국노의 케이스를 출중히 밟아가고 있었는데, 이용구라는 듭보잡이 나타나 '자신보다 더 큰 매국인 합방'을 주장하는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이때까지 쌓은 공로가 이용구에게 뺏길것은 당연한생각이었습니다.


이에 이완용은 이용구보다 더 큰 제안을 통감부에 요청합니다

이용구의 일본의 주도하의 동등한 한-일 이중제국 체제의 합방보다 더한 제안인 바로 '대한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승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토히로부미가 저격당해 죽은이후로,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야된다는 분위기가 강해지는 일본으로썬 대한제국의 대신이 스스로 나라를 팔아먹고 식민국가로 되길 청원했다는 것에 기쁘지 않을수가 없었겠죠.


결국 이러한 이완용의 빠른 상황판단에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로 인해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 

한편, 자신의 생각으로 조국이 일본에게 병탄된것을 깨닫은 이용구는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무식한 생각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결국엔 조국의 백성을 타국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울화병이 도져 죽고 말았으며, 이를 안 일본인 조언가 우치다 료헤이는 너무나도 미안하다는 마음에 '한국의 독립을 요청하고 사과하는 단체'까지 만들었으나 이미 병주고 약준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이용구나 이완용이나 똑같이 쳐죽일 친일파인것은 같습니다.



출처 :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etc/327/read?articleId=22293702&objCate1=&bbsId=G005&searchKey=subjectNcontent&itemGroupId=&itemId=145&sortKey=depth&searchValue=%EC%9D%B4%EC%99%84%EC%9A%A9&platformId=&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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