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군사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 이들의 유족들이 '당시 재판이 잘못됐으니, 재판을 다시 받게 해달라'며 낸 재심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재판 없이 사형을 당한 보도연맹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긴 적은 더러 있었으나, 재판을 거쳐 사형을 당한 이들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은 처음이다.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이흥구)는 28일 강아무개(1950년 사망)씨 등 재판을 거쳐 사형을 당한 보도연맹원 10명의 유족이 낸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숨진 피고인들은 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감금되었고,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민간인임에도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됐다. 이런 내용은 2009년 2월2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부산·경남지역 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에 관한 진실규명 결정으로 증명되었다"고 재심 개시 결정 이유를 밝혔다.
강씨 등 경남 마산지역 보도연맹원 400여명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중순부터 8월 초순까지 헌병과 경찰의 통보를 받고 마산시내 한 극장에 모였다가, 모두 영장 없이 체포돼 마산형무소에 수감됐다.
이들은 국방경비법의 이적죄가 적용돼 마산형무소에 구금된 상태에서 마산지구계엄고등군법회의의 재판을 받았다. 이들의 혐의 내용은 '남노당 및 산하단체에 가입해 6월25일 괴뢰군과 호응하여 대한민국 정부기관의 파괴, 요인 암살을 담당하여 적극 괴뢰군에 협력할 것을 음모함으로써 이적행위를 감행하였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 가운데 141명은 1950년 8월18일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달 말께 마산육군헌병대에 의해 사형이 집행됐다.
이흥구 판사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문에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살해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한국전쟁이라는 전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고심을 했으나,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현시점에서 제대로 된 재판을 받도록 해보자는 뜻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10명의 유족과 함께, 역시 같은 이유로 사형을 당한 보도연맹원의 유족 2명도 재심을 청구했으나, 증거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이들의 청구는 기각됐다.
1949년 6월5일 이승만 정권은 좌익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좌익 계열 전향자를 중심으로 반공단체인 보도연맹을 만들었다. 보도연맹은 반공을 강령으로 삼은 관제단체로, 공무원들에 의해 사상과 관계없이 수십만명의 민간인들이 반강제로 가입됐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이들이 남한을 배신하고 북한과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해 무차별적으로 검거하고 즉결처분했다. 이 과정에서 10만~20만명의 민간인이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11월 4934명의 보도연맹원이 정부에 의해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보도연맹 사건을 '과거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양민학살 행위'로 인정해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창원/최상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