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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명장론에 격노하신 역사연구가분의 사설
게시물ID : history_179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중주
추천 : 14
조회수 : 1884회
댓글수 : 48개
등록시간 : 2014/08/29 13:12:04

'원균 명장론' 망발 

 
글/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http://www.econotalking.kr/news/articleView.html?idxno=125336

임진왜란 뒤 공신을 선정하는데 1등공신은 이순신·권율(權慄)·원균 세 사람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처음에는 2등공신으로 올라갔다. 공신도감 도제조, 즉 공신선정위원회의 위원장 격인 이항복(李恒福)이 선무공신을 정할 때에 원균을 김시민(金時敏)·이억기(李億祺)와 함께 2등으로 올렸는데 선조(宣祖)가 1등으로 바꾸어주었다. 그때 선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찍부터 원균을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이제 원균을 2등으로 낮추어 책정했으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원균은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임금이 그렇게 생떼를 쓰자 이항복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며 발을 뺐다.

“원균은 왜란 초에 수군이(부하가) 없는 장수였으나 이순신 덕택으로 해전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3도 수군을 전멸시켰으므로 이순신·권율과 같은 1등공신으로 책정하기 어려워서 2등공신으로 내려 책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하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1등공신으로 책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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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원균을 1등으로 올려준 것은 이순신을 통제사에서 파면하고 원균을 그 자리에 앉힘으로써 칠천량전투에서 참패하여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자신의 궁극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간교한 술수였다. 칠천량패전 직후 비변사에서 ‘원균은 수군의 주장으로서 수군을 전멸시켰으므로 그 죄는 모두 원균에게 있다’ 면서 처벌을 건의하자 끝까지 원균을 감싸고돌면서 패전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러자 사관은 이렇게 통렬히 비판했다. 

“한산도에서 남김없이 패전한 원균은 시장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야 마땅하다. 또 죄가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원균은 성질이 포악한 일개 무뢰한이다. 이순신을 모함하여 몰아내고 통제사가 되었으며, 단번에 적을 섬멸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지혜가 부족하여 패전했다. 그러고는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가는 바람에 장병들을 모두 죽게 했다. 이런 원균의 죄를 누가 벌주어야 하는가. 

…이런 일을 보니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뼈가 녹아버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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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선조가 보낸 선전관에게 잡혀가고 그토록 원하던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차지한 원균은 이순신이 아끼던 역전의 장수들 대부분을 갈아 치우고 자신의 뜻에 맹종하는 자들을 그 자리에 앉히는가 하면, 군비는 허술히 하는 대신 운주당에 들어앉아 주색에만 빠졌다. 

유성룡의 ‘징비록’에 이렇게 나온다. 

“원균이 한산도에 부임해서는 순신이 시행하던 모든 군중 약속을 변경하고, 부하 장수와 군사들로서 순신에게 신임 받던 사람은 모두 쫓아버렸으며, 그 중에서도 이영남(李英男)은 전날 자신의 패전한 실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 더욱 미워하므로 군사들이 통분히 여겨마지 않았다. 또 순신이 밤낮으로 장수들과 함께 전략을 토론하던 운주당에서 원균은 애첩을 데리고 같이 기거하며 울타리를 치고 있기 때문에 장수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또 술을 좋아해서 늘 취해 있었고, 장수들도 그를 비웃고 군사에 관한 일은 전혀 말하지 않으므로 그의 호령이 시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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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조실록’ 순조 8년(1808년) 1월 10일 자에 이런 기록이 있다.

“상(上)이 ‘통영의 백성들이 지금도 이순신을 사모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니 이당이 말하기를 

“충무공의 상(喪) 때는 백성들이 모두 흰옷을 입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유전(流傳)되어 여자들도 모두 흰 치마를 입습니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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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설까지 나오는 이유.........

http://www.pt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496

평택에서 원릉군 원균 추모제가 열리는데

공재광 평택시장은 인사에서 

“선무일등공신 원균 장군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우리고장의 인물로 향후 제대로 된 재조명이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힘쓰겠다.”고 말했다. 

원균평전을 발간한 김인호 동의대 교수는 

“이번에 나온 원균 평전 발간을 통해 장군의 순국 희생정신이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라며 앞으로도 학문적 재조명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823139

원균의 후손들이 원균의 묘를 찾고 있음

원영재 회장은 "패장의 후손이라는 낙인 속에 수백년 동안 시신이 없는 할아버지의 묘를 보며 살았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는 이어 "할아버지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옥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며 

"진짜 무덤을 찾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그 업적은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균 명장론은 계속 나올듯 합니다........................

계속 시도하는 자들이 존재하고 그 규모가 작지 않음....

평택 시장에 대학교 교수 그리고 종친회까지 끼어든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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