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연재꾼(?)이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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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난공불락
1597년 12월 24일 아침 학성산 진지
“쨍그랑”
양호가 머무는 처소에서 별안간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곳에는 접반사 이덕형과 도원수 권율이 아침나절부터 불려 와 있었다.
“도원수.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변명 좀 해보시오.”
양호는 마시던 찻잔을 권율과 이덕형이 있는 곳으로 던진 다음 가래 끓는 목소리로 힐난했다. 그가 던진 찻잔 안에 있던 뜨거운 물이 두 사람의 무릎 아래를 적셨으나, 둘 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양 경리. 그래서 어제 말씀드리려 하지 않았소이까? 태화강 수로의 방비를 맡은 경상좌도 수군이 오늘 아침에 당도한다는 것 말이오.”
도원수는 분노를 삭이며 차분하게 양호에게 반박했다.
“흥. 이미 늦었소이다. 저 왜성 위에 휘날리는 깃발이 보이시오? 항왜장 김충선에게 물어보니 저거 가등청정의 깃발이라고 합디다. 가등청정말이오. 도원수도 전일 보지 않았소? 사로잡은 왜장이 말하길 청정은 도산성에 없다고 하였으니 결국 청정이 놈이 도강하여 성에 들어간 거외다.”
흥분하여 길길이 날뛰는 경리에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덕형이 입을 열었다.
“양 경리 각하. 제가 보기에 왜군들의 저런 행동은 호가호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보시오. 접반사. 본진에 머무르는 항왜중에서 망루에 있는 청정의 모습을 본 자도 있소이다. 그들은 본래 가등청정의 정예군사였으니 그의 모습을 착각할 리 없지 않소?”
양호는 이덕형의 말을 반박하며 목소리를 더더욱 높였다. 접반사는 이쯤 해서 경리의 비위를 맞춰야 함에도 발언을 이어갔다.
“그 역시 적의 허장성세….”
“휙”
이덕형이 양 경리의 속을 뒤집어 놓자, 이번에는 보료 위에 있던 비단 베개가 두 사람에게 날아왔다.
“닥치시오. 내 더는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얘기 듣기 싫으니, 썩 꺼지시오. 아. 그리고 이제야 도착한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이운룡에게 휘하의 조총병 200명을 마 제독한테 보내도록 명하시오. 태화강 수로에 대한 방비는 천군이 맡을 터이니….”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는 경리 양호에게 2인은 마지못해 군례를 올리고 움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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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하라!”
“카이시 포지!”
날이 밝자, 조·명연합군의 도산성에 대한 공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날의 최우선 목표는 반구정에 있는 적의 출성이었다. 본성을 포위하기 위해서는 외성의 점령이 꼭 필요했다. 이에 좌협의 명군 부총병 이여매와 조선군 충청 병마절도사 이신언 이하 군사들이 공략에 나섰다. 이때 반구정 보루를 수비하던 총책임자는 21세의 왜장 아사노 요시나가였다.
“펑펑펑”
명나라와 조선의 대포에서 반구정을 향해 연신 화염이 일었다. 명군은 호준포와 멸로포 등으로, 조선군은 천자총통과 지자총통 등이 포격을 개시했다.
“꽝꽝꽝. 후두둑”
포구들에서 불꽃이 피자마자 왜군의 목책들이 박살 났다. 특히 박격포처럼 고각으로 쏠 수 있는 호준포는 두 돈짜리(약 7.5g) 납 탄환 70여 개를 발사할 수 있어 적의 인명을 살상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보군 돌격!”
왜군의 출성에서 반응이 없자 부총병 이여매는 포격을 멈추고 마상에서 칼을 뽑아 군졸들에게 진격의 명을 내렸다. 휘하 보군 즉, 남병이 그의 명령에 따라 외성으로 호기롭게 출격했다.
“와아아아”
“탕탕탕”
외성과 50보 정도의 거리가 되자 왜군진영에서 갑자기 조총탄이 날아왔다. 왜적들은 연합군이 출성에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가 조총의 사거리에 들어오자 사격을 개시한 것이었다.
“으악”
전방에서 날아온 총탄에 의해 몇몇 아군들이 쓰러졌다. 이 장면을 목격한 이여매는 군사들을 잠시 뒤로 물리게 하여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때를 틈타 왜군들은 예비로 가지고 있던 목책을 옮겨 진지를 보강했다.
“장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포격을 다시 할까요?”
재포격을 묻는 부관에게 부총병은 손을 저었다.
“아니다. 궁수들을 대기시켜라. 그리고 조선군에게 대장군전을 준비하도록 하라.”
잠시 후. 조·명연합군 궁병들이 쇠 촉 뒤에 기름을 먹인 솜이 있는 화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불을 붙여 적 진지로 날려보냈다. 외성의 목책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왜군들은 물을 묻힌 거적때기로 발화한 곳을 덮으며 연신 불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때였다.
“쾅”
연합군 진영에서 거대한 나무기둥이 외성으로 날아왔다. 대장군전이었다.
“오오키! 야메떼! 다메!”
목책에 타오르는 화마를 끄려 애쓰던 왜의 병사들을 대장군전이 덮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대장군전 또한 쇠촉뒤에 솜을 둘른 불화살이였다. 더는 목책을 유지하기 위해서 손쓸 방도가 없었다.
“제길. 본성으로 퇴각하라!”
왜장 아사노 요시나가는 더 이상의 수성은 무의미하다고 여겼는지 잔여 병력을 이끌고 도산성 이지환과 이어진 통로를 따라 군사들을 철군시켰다.
“와아아아!”
왜군이 떠난 자리를 조·명연합군의 함성이 차지했다. 외성을 점령한 것이다.
한편, 마군을 이끌고 어제 마무리 짓지 못한 태화강 상류의 보루를 치러간 제독 마귀는 손쉽게 진지를 점령했다. 왜장 시시도 모토츠쿠가 격전 끝에 본성으로 들어간 바람에 보루의 왜군들은 항전 의지가 없었다. 물론 경상좌수사 이운룡이 보내준 조선 조총병들이 큰 보탬이 된 결과였다. 이와 더불어 태화강의 지류 중의 하나인 서강 등에 흩어져 있는 왜의 진지에 머물고 있는 잔당들을 격멸하러 간 중협의 부총병 고책의 군졸들도 왜군을 제압하여 승리하였다. 이날 왜군은 800여 명의 병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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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12월 24일 낮 학성산 조·명연합군 수뇌부 진지 경리 양호의 거처
“하오. 하오. 이것이 천군과 천장의 위력이지. 하하하.”
각 협에서 왜군을 섬멸한 보고를 받자 양호는 기뻐하며 연신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전령을 불러 다음 작전을 명령했다.
“마 제독 이하 지휘관들에게 일러라. 지금부터 군영을 8영으로 나누어 아군이 점령한 적의 진지들과 왜군의 구원병들이 올라올 수 있는 길목을 막도록 한다. 그리고 전열을 가다듬어 적의 본성을 칠 준비를 하라고.”
이때 주위에 있던 접반사 이덕형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양 경리 앞에 섰다.
“천군과 천장의 용맹이 대지를 덮고 경리 각하의 위명이 하늘에 떨치니 소맹의 배신은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허허. 이건 작은 승리일 뿐이요. 우리가 서생포와 부산의 왜적을 모조리 섬멸시키고 나서야 그 기쁨을 말할 수 있을 것이외다. 그래도 접반사가 이리 고마워하니 내 심히 기분이 좋소이다. 하하. 아. 아침에 내가 한 말은 마음속에 담지 마시오. 소식을 듣자하니 마 제독에게 배속되었던 경상좌수군의 조총병들이 크게 활약을 했다 하던데, 이걸로 더는 오전의 일을 문책하지 않겠소이다.”
이덕형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아침나절의 일로 경리와 사이가 틀어질까 저어하고 있었다. 할 말은 뱉고 마는 자신의 성격은 외교관이란 탈을 쓰고는 감춰야 할 것이었다.
‘좌충우돌하는 명군을 몰아 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먹잇감 앞의 호랑이는 오히려 발톱을 숨기는 법이지.’
“조반을 먹은 지도 꽤 되었으니, 어떻소이까? 접반사. 혹시 모를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간단한 식사라도 같이 합시다.”
양호는 명군의 연승과 까칠한 접반사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이덕형에게 점심을 함께 들자고 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경리의 군막 속으로 병사하나가 그의 부관에게 달려왔다. 그 군졸은 부관에게 귓속말을 하고 나선 헐레벌떡 자리를 떠났다. 부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양호에게 말했다.
“저어…. 경리 각하. 잠시 바깥으로 나와 보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