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120년 전 청일전쟁(중국명 갑오전쟁) 당시 북양해군이 전멸했던 웨이하이(威海) 해역에서 전사자를 위한 추모제를 거행하며 ‘해양강국’의 의지를 다지기로 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강군건설’ 주요 발언 등을 담은 책은 전 인민해방군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싱광메이(邢廣梅ㆍ사진) 중국 해군 대변인은 “27~28일 산둥(山東)성 웨이하이 부두에 정박중인 해군 88선(船)에서 청일전쟁 120주년 연구토론회를 열 것”이라며 “또 웨이하이 부근 해역에서 해상 제례 의식도 거행하겠다”고 밝혔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싱 대변인은 “지금은 (중국의) 해양 지위가 날로 높아지고 해상 안보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중국이) 해양강국을 건설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북양해군 장병들을 위한 제례 의식으로 국가적 군사적 치욕을 뼈에 새기면서 처참한 역사의 교훈도 되새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토론회엔 청일전쟁 전문가와 학자들이 참석, 청일전쟁의 배경과 과정, 실패 원인과 교훈 등을 집중 논의한다. 싱 대변인은 인민해방군에서 유일한 여성 대변인이다.
웨이하이 해역은 1895년1~2월 청일 양국간 치열한 전투 끝에 청나라의 북양해군이 전멸한 곳이다. 1894년7월25일 우리나라 서해 아산 앞의 풍도에서 청나라 군함을 공격, 청일전쟁 일으킨 일본은 평양전투와 황해전투, 뤼순(旅順)전투에서 잇따라 승리한 뒤 1895년1월20일 당시 북양해군 사령부가 있던 웨이하이의 류궁다오(劉公島)까지 공격했다. 양측에서 각각 2만~3만명씩 참전한 이 전투에서 청나라군은 무려 4,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5,000여명이 포로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다. 10척의 군함도 일본군의 전리품이 됐다. 당시 북양해군 제독이던 정여창(丁汝昌)은 자결했다. 중국으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다.
중국 해군뿐 아니라 육군과 공군도 강군건설의 의지를 다지고 나섰다. 인민해방군 총정치부는 26일 시주석 국방 군대 건설 중요 강연 독본을 출판하고 전군과 무장부대가 모두 이 책을 학습하도록 지시했다. 이 책은 시 주석이 그 동안 강군과 흥군, 국방력 증대와 군대 개혁 등에 대해 내린 지시와 언급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총정치부는 “강군의 목표를 깊이 새기면서 강군의 실천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상으로 통일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26일 “중국의 현재 해양 장악력은 대국의 지위에 맞지 않는다”며 “해상을 잘 지켜야 역사의 전철을 피할 수 있는 만큼 해양 강국의 길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