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의 연재꾼(?)이 돌아왔습니다.^^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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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지진가토
1597년 12월 24일 깊은 밤 태화강 하류
여인의 흰 속살 같은 달빛이 사방을 잠재우는 축시 (밤 1시∼3시 사이)에 작은 배한척이 강위에 떠 있었다. 유유히 태화강 하류를 거슬러 올라오는 고바야 (30명 정도 탑승하는 군선으로 작고 속도가 빨라 전령이나 정찰선으로 사용되었다.)안에는 온통 검은 복장을 한 스무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전후좌우로 나누어 사방을 조밀히 경계했다. 그중에 고바야 중앙의 두 명만은 나란히 앉아 마치 참선을 하는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나 더 가면 되는가?”
두 사람 중 작은 키의 사내가 장고 끝에 입을 열었다. 작은 체격이지만 다부져 보이는 인상을 주는 청년이었다.
“한 식경 정도면 본성에 당도 할 겁니다. 주군.”
옆에 앉은 남자가 나직이 대답했다. 주군이라 불린 남성은 자신의 옆에 있는 꾸러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흥. 10리밖에 적이 없더라도 항상 입고 있던 갑옷인데 이렇게 벗을 줄은 몰랐군.”
“장군을 이렇게밖에 모시지 못한 점. 백배사죄 드립니다. 주군.”
큰 키의 사내는 소리 없이 납작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작은 키의 남자는 양손으로 그의 등을 토닥이다 일으켜 세웠다.
“너의 탓이 아니다. 가토 키요베에. 어제의 패전은 성을 비운 나. 가토 기요마사의 부재에 있는 것이다.”
“장군….”
주군을 부르는 부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토 기요마사는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가토 기요마사. 1562년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 대장장이였던 부친을 잃고 모친과 함께 살았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어머니와 먼 친척 간이었던 모친으로 인해 1573년 도요토미의 시동이 되었다. 이때부터 가토는 히데요시의 측근으로 그의 총애를 받았고, 가토 본인 또한 그에게 충성을 다했다.
시즈가타케 전투에 이르러서 적장을 참살하는 공을 세워 ‘시즈가타케의 칠본창’ (히데요시에게는 그의 시종이자 경호를 담당하던 근위 시동들이 있었는데, 이 전투에서 적진으로 출격하여 공을 세운 7인을 말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임진왜란 시 제5군 대장인 후쿠시마 마사노리, 수군장수로 출전한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가토 요시아키 등이 있다.) 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임진년의 조선침략 시에는 제2군 선봉장으로 함경도를 짓밟았고, 제2차 진주성 혈전에서 승리하는 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그는 ‘히데요시의 한쪽 팔’ 이였다.
“전초 진지들에서는 연통이 왔느냐?”
가토는 명상에서 벗어나 키오베에에게 물었다. 부장은 머뭇거리다 주군에게 보고했다.
“전일 울산성에서 급보가 날아든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아마도…. 적에게 당한 듯싶습니다.”
“흠….”
가토는 입술을 깨물며 현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어제 조·명연합군이 도산성을 기습할 때, 가토 기요마사는 서생포 왜성에 있었다. 울산 왜성의 수장이 된 그는 그동안 자신이 관리했던 서생포성을 구로다 나가마사에게 인도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비보를 접한 그는 울산성안의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고바야에 몸을 실었다.
“장군. 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주군의 질문에 대답만 하던 키요베에가 용기를 내서 기요마사에게 물었다.
“해보게나.”
“지금이라도 배를 돌려 서생포로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각지에 흩어져 있는 아군의 원군을 받아 적의 배후를 친다면 승산이 있습니다.”
부장의 조언에 가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될 말이다. 본인도 그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 성에는 타이코 전하의 조카인 아사노 요시나가 공이 있다. 구원군을 기다리는 동안 성이 함락되거나 아사노 공이 죽는다면 나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작년 7월. 교토에서 얻은 행운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전년 7월에 있었던 일을 상기시키며 키요베에를 조리 있게 설득했다.
교토에서의 있었던 일의 전말은 이랬다. 주화파(문치파)인 고니시 유키나가와 이시다 미쓰나리(행주산성에서 대패한 그 이시다 미쓰나리다.)는 주전파(무단파)인 가토 기요마사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관계였다. 특히 이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사이의 전간기에 이루어진 명과의 화의교섭에서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사이가 되었다. 먼저 칼을 빼 든 사람은 행정담당 부교(도요토미 정권하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상위 관직)였던 이시다였다. 그는 가토가 함경도를 점령할 때 명나라 사신 방준영과의 회담에서 무단으로 자신을 ‘도요토미 기요마사’라고 참칭했다고 하여 가토를 치죄할 것을 히데요시에게 주청한다. 이에 대노한 도요토미는 가토를 왜국으로 소환하여 가택연금에 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토는 외통수를 두는데, 자신을 유일하게 지지하던 토목담당 부교인 마시타 나카모리와 척을 진 것이다.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가토는 할복의 명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천운은 그에게 있었다. 1596년 7월 13일 밤에 교토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처인 후시미성도 큰 피해를 당한 상태였다. 정적이 이 기회를 틈타 히데요시를 암살할 수도 있는 상황이였다. 가토는 연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300명의 수하를 이끌고 성으로 향했다. 기요마사의 빠른 대처에 감동한 그는 가토에 대한 근신처분을 풀어주었다. 이 사건은 이후 「지진가토」라는 이름으로 왜인들에게 대대로 전해진다.
“주군. 선입지에 당도했습니다.”
방향타를 맡은 군사가 가토에게 보고했다. 여기서 선입지란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선착장을 말한다. 이전에 아동포살수대 초관인 산이가 지도에 표시한 凹가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강가에 위치한 선입지는 바다의 항구처럼 수심이 깊지 않았다. 즉, 왜군의 주력함선인 세키부네나 가장 큰 지휘선인 아타케부네가 정박할 수는 없고 소선인 고바야가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이곳의 존재로 인해 서생포왜성과 연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도산성 선입지의 큰 이점이었다.
“장군. 내리시지요.”
가토 키요베에가 사방을 경계하며 기요마사에게 하선을 권했다. 나루에는 미리 보내놓았던 병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들이 많군.”
가토는 마중 나온 부하들을 격려하며 배에서 내려 본성으로 향했다. 그가 성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저곳에 화마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가토는 비로소 자신의 성이 침탈당했음을 몸소 느끼게 된 것이다.
선입지에서 왜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의 동남쪽에 위치한 가파른 계단을 타야 했다. 이 층계의 끝에 이지환으로 들어가는 성문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가토 장군님.”
수하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자 이지환의 성문 밖에 갑옷을 차려입은 무장이 군사들과 함께 가토의 무리를 반겨주었다. 기요마사는 달빛에 비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자네는 시시도 모토츠쿠가 아닌가. 어찌하여 본성에 있는가? 설마….”
“장군. 그게…. 적에게 진지를 내주고 말았습니다. 상세한 보고는 본성 안에서 드리겠습니다.”
어찌할 줄 모르는 시시도의 모습을 보면서 가토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끼이익”
소리 없이 군례를 올리는 수비군을 뒤로 한 채 성주는 조용히 입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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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12월 24일 새벽 도산성 본환
인시 (밤 3∼5시) 가 되어도 어둠은 아직 거치지 않았다. 겨울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길고 길었다. 본환의 망루에는 새벽 칼바람이 불었다. 이곳에 총대장인 가토 기요마사가 특유의 녹색의 갑주를 갖춰 입고 고깔모자 같은 긴 투구를 쓴 채 사방을 둘러보며 적진을 탐색하고 있었다. 장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조․명연합군의 숙영지에서 새어나온 불빛들이었다.
“가토 공. 적의 군세를 살펴보니 어떻습니까?”
망루 밑에서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토가 몸을 돌려 밑을 보니 화려한 갑옷을 입은 청년이 망루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어제 낮에 격전을 치른 아사노 요시나가였다. 그의 갑옷 사이로 미처 제거하지 못한 먼지와 얼룩이 무장의 고단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적의 수는 많지 않소. 그나저나 아사노 공. 전투 중에 상한 곳은 없소이까?”
“이 정도로는 문제없습니다. 다만 첫 전투치고 인명손실이 만만치 않습니다.”
가토는 목소리가 잦아드는 청년 무장에게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주장으로서 지난 전투의 공과를 지금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입니다.”
“마음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가토 공. 당면과제는 역시….”
아사노는 거기까지 말하고선 말꼬리를 감추었다. 가토 역시 전방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식량과 화약이었다. 본환의 다몬야구라 (장옥형 창고)는 모두 4개로 명군이 기습하기 전에 전부 채워놓았지만, 이지환과 삼지환의 창고는 습격한 당일 완공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텅텅 빈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완성된 창고로 옮기기 위해 서생포에서 싣고 온 식량을 선입지 옆 외각부에 적재해 놓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적의 화공으로 인해 귀중한 식량이 모조리 불타버린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소이다.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지요. 우선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원정군에게 원군을 요청하였소.”
아사노는 구원군이라는 말이 가토에게서 나오자 화색이 돌았다. 그리곤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저…. 장군…. 혹 고니시 공에게도 서찰을 보냈습니까?”
기요마사는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과연 그 뱀 같은 작자가 원군을 보낼는지는 미지수이오만…. 지금같은 위기 상황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 아니지 않소이까? 하하.”
잠시 후. 두 무장은 망루에서 내려왔다. 그들이 머물렀던 그곳에는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가토의 ‘묘법의 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적들이 기다리는 아침은 아직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