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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8장 막간극 下)
게시물ID : history_1784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2
조회수 : 8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23 11:57:50
드디어 공성1일차가 끝났습니다. 헥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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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의 분위기가 싸늘해졌을 무렵. 학성산 진지의 외진 군막에도 서늘한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흔들거리며 타오르는 호롱불을 사이로 두 사람의 젊은 군인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먼저 침묵의 흐름을 깬 것은 조금 더 젊은 무장이었다.
 
우병사 영감.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첨지 영감 말씀 낮추시지요. 그리고 나는 이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아닙니다. 일개 별장일 뿐이오.”
 
청년 장군 김충선을 향해 별장 김응서가 공손히 대답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김 첨지의 눈빛이 서글퍼 보였다.
 
김응서. 1564년에 태어난 그는 별 볼 일 없는 가문 출신으로 무관 관직을 지낸 부친을 따라 1583년 무과에 장원급제한다. 그러나 힘이 없던 김응서의 가문은 그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미관말직을 전전해야 했다. (심지어 그가 관청을 감찰하는 일을 맡고 있을 때에는 감찰 김응서는 가문이 한미하여 남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으니 교체해야 한다.”라는 사간원의 탄핵에 따라 직위 해제되는 비운을 겪는다. 그것도 같은 사유로 2번씩이나 그랬다.)
그런 그에게도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오니, 바로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이었다. 널리고 널린 중급장교에 불과했던 김응서는 평양성 방어전탈환전에서 활약하여 젊은 나이에 종2품 가선대부를 가자 받고 경상우도 방어사가 되었다. 이후 약간의 부침은 있었지만, 승급을 거듭하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별장 영감, 어찌하여 그동안 기별 하나 없으셨습니까? 저를 비롯한 항왜들이 얼마나 심려했는지 아십니까?”
 
. 영감소리 좀 그만하시구려. 소인이 없어도 주상전하와 조정을 그대들을 후히 환대할 터인데 번거롭게 무엇을 말하리오. 다 내 탓인 것을.”
 
김 별장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김 첨지는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영감.”
 
선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15971.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독 사과를 보냈다. 고니시를 통해 적정을 탐색하던 김응서는 고니시의 수하이자 통사인 요시라에게 귀가 솔깃한 제안을 듣는다. 요지만 말하자면 자신의 맞수인 가토 기요마사가 곧 조선에 상륙할 터이니 이를 막아라.” 는 것이었다. 고니시의 표적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었다.
김응서는 화급히 조정에 장계를 올린다. 왕은 자신의 두 아들을 생포했던 가토에게 복수할 요량으로 통제사에게 부산포 앞바다에서 가토를 요격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통상은 이것이 적의 유인책임을 간파하고는 신중히 접근할 것을 주청한다. 결국, 이순신은 조정과 임금을 능멸한 죄로 한양으로 압송되고 그전에 가토 기요마사는 유유히 울산 서생포로 상륙했다. 정유재란의 시작이었다.
통제사를 대신하여 원균이라는 작자가 한산도 통제영의 주인이 되었으나, 군선을 침몰시키는 특기를 지닌 그는 칠천량에서 통상이 이룩한 모든 것을 모조리 바다에 수장시켰고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결과적으로 군왕과 조정은 무군지죄의 대죄를 범한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후 통제사가 도망자 배설이 버리고 간 12척의 배로 울돌목에서 기적을 만들어 내자 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던 일단의 중신들 입장이 난감해진 것은 자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요시라의 반간계(적의 첩자로 적을 속이는 계책. 이때 요시라는 조선군과 고니시 군 사이에서 이중간첩 노릇을 하고 있었다.)에 넘어간 김응서 또한 무사하지 못했다.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경상우병사의 관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의 길로 들어선다. 명군이 도산성을 공략하던 이때에는 제독 마귀 휘하의 객장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별장이 멉니까. 별장이.”
 
애처롭게 김응서를 바라보던 김충선이 큰소리를 냈다. 별장이란 종 9품의 말단 무관직으로서 지방의 산성이나 나루터를 관리하는 직급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생긴 오군영 체제에서 별장은 정3-훈련도감어영청-과 정2-용호영 금군 별장-의 고위직급을 이르기도 했다.)
 
허허. 목숨을 부지할 것이 어디요. 와신상담하기엔 이보다 좋은 품계가 없소이다.”
 
김응서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관직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던 그에게 지금의 시련은 견딜만한 것이었다. 게다가 변명할 수 없는 자업자득이 아닌가.
 
장군. 그러지 마시고 제가 도원수와 접반사 대감에게 잘 말씀 드릴 터이니 제가 데리고 온 150인의 항왜들을 이끌어 주시오.”
 
김 첨지는 맞은편의 김 별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별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허허. 아니 될 말이오. 나라에 죄를 지은 몸으로 병사들을 지휘할 수 없소이다. 나는 일개 무장으로서 저 왜성으로 달려가 왜적들과 맞서 싸울 것이오. 항왜들은 김 첨지 영감께서 항왜장으로서 잘 이끌어 주시오.”
 
하오나. 영감.”
 
또 또. 영감 소리인 게요. 나는 씻을 수 없는 불충을 지은 몸이요. 그리고 만에 하나 내가 그대들을 다시 통솔하게 되면 성상과 도당의 오해를 살 수도 있소.”
 
김응서는 그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김충선도 벌떡 일어섰다. 별장은 첨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사야가. 용맹하게 싸워라. 하지만 죽지 마라. 내가 해줄말은 이것 뿐이다.”
 
장군!”
 
김응서는 그 말만 남긴 채 움막을 빠져나와 홀연히 사라졌다. 김충선은 군막 안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병사 영감. 그래도 당신은 항왜의 아버지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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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1223일 밤 학성산 명군 지휘부진지
 
이건 분명 칠칠치 못한 마군 잘못이외다.”
 
뭐라. 애초에 보군이 기마군의 지휘·통제를 잘 따랐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요.”
 
북병과 남병은 그 지위가 같거늘 어찌 망발을 늘어놓는 게요?”
 
. 망발?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군의가 열리는 회의장은 열띤 토론 아니 상호비방의 장으로 변했다. 기병과 보병, 북병과 남병으로 갈린 지휘관들은 유격 파새와 참장 양등산의 태화강 상류 보루 기습작전의 공과에 대해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다. 이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자들은 경리 양호와 제독 마귀 그리고 접반사 이덕형과 도원수 권율 이하 조선의 장수들이었다.
 
그만. 그만하시오.”
 
군막의 맨 상단에 앉아있던 양 경리가 손을 들어 설전을 그치게 하고는 마귀를 바라보며 발언했다.
 
마 제독. 이날 이 시간 이후로 이 문제 더는 재론하지 않겠소. 다만 한가지. 앞으로 작전을 펼칠 때는 좀 더 신중을 기하기 바라오. 이건 총사령관으로 하는 말이니, 새겨들으시오. 아시겠소?”
 
“...”
 
마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꽉 쥐며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었다. 양호는 그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양 경리. 소장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소이까?”
 
소리가 난 곳은 조선군 지휘부가 모여있는 자리였다. 그 발언자는 다름 아닌 도원수 권율이었다.
 
험험. 도원수는 말씀해 보시오.”
 
양호는 시선을 권율에게 돌렸다. 도원수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발언을 시작했다.
 
경리. 그리고 예하 명군 장수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이다. 오늘 서전에서 왜적들은 우왕좌왕하며 졸전에 졸전을 더했소이다. 물론 천장과 천군이 천하를 호령하는 힘으로 그들을 제압한 것이오만, 풍신수길의 최측근 중의 하나인 가등청정의 군사라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소이까?”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실 명군도 낮 동안의 전투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얻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본격적인 전투가 있을 때까지의 적정의 탐색이 목적이었던 싸움이었다. 경리 양호가 호기심이 발동한 표정으로 권율에게 되물었다.
 
도원수께서 생각하신 바가 있소이까? 고견을 청하고자 하오.”
 
저의 어리석은 사견을 말씀드리자면, 왜군이 저리도 동요하는 것은 군을 제대로 통솔할 장수의 부재라고밖에 볼 수 없소이다. 마 제독과 함께 보았소만 수성하는 군대가 사방이 포위된 상태에서 기병을 낸다는 것은 병법의 기본조차 모르는 경솔한 짓이었소.”
 
다시 한 번 주위가 소란해졌다. 소음이 잦아들자 이번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제독 마귀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 성에 가등청정이 없단 말이오?”
 
장담은 할 수 없소이다. 다만 기민하고 일사불란한 전술을 펼치는 청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허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오.”
 
도원수는 그렇게 답하고는 접반사 이덕형을 바라보았다. 이덕형은 그 눈빛을 읽고는 양 경리에게 말했다.
 
경리 각하. 금일 적의 외각 진지를 공격할 때 구출된 조선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청정은 서생포에 있다 합니다. 좀 더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오늘 생포한 왜장을 신문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경리 양호는 자신 앞의 탁자를 손바닥으로 치며 좌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묘안이요. 여봐라. 전투 중에 사로잡은 왜장을 속히 대령하라.”
 
잠시 후.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왜인 하나가 포승에 묶인 채 병졸들에게 끌려왔다. 하얗고 굵은 포승줄에는 그의 몸에서 배어 나온 피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포로의 몰골을 유심히 살펴보던 양호는 부관에게 손짓했다.
 
저놈을 꿇려라.”
 
왜장을 무릎 꿇게 하자. 그는 갑자기 일어서 서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고로스! 와타시오 고로스! 히쿄오나 요와무쉬도노!”
 
.”
 
그를 데려온 병사가 짧은 나무 단봉을 꺼내 포로의 어깨를 내려쳤다. 그 충격으로 왜인은 앞으로 쓰러졌다.
 
. 거친 놈이구먼. 항왜장 김충선 있는가?”
 
자신들을 향해 발악하는 모습을 지켜본 양호는 그에 대한 첫 감상을 짧게 말하고는 김충선을 불렀다. 조선군들 사이에서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 배석해 있던 여여문이 접반사에게 다가가 몇 번의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이덕형이 양호를 향해 말했다.
 
경리 각하. 중추부 첨지부사인 항왜 김충선은 방금 진지에 도착하였으나, 원행으로 인해 곽란이 나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 그렇다면 이 일을 어쩐다. 적의 사정을 훤히 아는 자가 필요한데.’
 
양호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접반사가 말을 이었다.
 
장군. 이곳에 김충선은 없지만, 같은 항왜출신으로 현재 아동포살수대 대장을 맡고 있는 여여문이 있습니다. 그로 하여금 신문하게 함이 어떨는지요?”
 
좋소. 그리하오.”
 
양 경리의 허락이 떨어지자, 여여문이 앞으로 나와 양호에게 읍을 하고는 포로에게 다가갔다.
 
이름. 소속. 직책을 말하시오.”
 
왜인은 입에 피가 고였는지 빨간 침을 바닥에 뱉고는 여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 . 일본말을 하는 것을 보니 십중팔구는 더러운 배신자구나! 저리 꺼지지 못할까!”
 
문자를 쓰는 것을 보아하니 교육깨나 받은 고위무장이 확실하구먼. 이렇게 서로 말로 할 때 토해놓는 것이 어때? 험한 꼴 보기 전에.”
 
여여문은 무릎을 굽혀 포로와 눈을 맞추었다. 그때였다.
 
.”
 
왜장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실성한 듯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 꼴좋다. 이놈! 되놈이랑 조센징한테 붙어먹는 쥐새끼야! 가토 기요마사 장군이 도산성에 당도하면 너와 저놈들의 파리 목숨도 끝이다. !”
 
여대장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얼굴에 묻은 침을 손으로 닦아냈다. 그리고 포로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토설해줘서 고맙다. 저 왜성에는 가토가 없단 말이지.”
 
순간 왜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좀전의 득의만만했던 그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다. 아니야. 가토 장군은 성안에 계신다. 오타 카즈요시의 부장인 나. 무라카와 쓰시마가 본인의 이름을 걸고 보증한다.”
 
포로의 실토를 들은 여여문은 부동자세를 취하더니 허리를 숙여 그에게 예를 표했다.
 
오타의 부장이신 무라카와 상.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 끌고 가라.”
 
히이익…….”
 
무라카와는 병졸들로 인해 질질 끌려가면서도 자신의 계속된 실수를 감추려 발악을 했다. 그가 군막에서 없어지자, 여대장은 통사를 불러 양 경리에게 말했다.
 
가등청정은 저 성에 없다고 오타 카즈요시 아. 아니 태전일길의 수하인 촌천대마가 친절히 알려주었습니다.”
 
하오. 하오. 그렇단 말이지. 제장들은 들으시오. 더 이상의 군략은 무의미하오. 내일 저녁은 우리 모두 왜성 꼭대기에서 먹게 될 것이오. 그럼. 자리를 파하겠소이다.”
 
양호는 적정을 듣고 기뻐하며 군의를 마치게 했다. 명군장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안대소를 하며 경리에게 군례를 올리고는 자리를 빠져나갔다. 침소로 들기 위해 양호가 일어서자 도원수 권율이 막아섰다.
 
경리. 드릴 말씀이 있소이다. 전에 경리께서 하명하신 경상좌도수군에 관한 일이오.”
 
좌수군? 지금은 심사가 고단하니 내일 얘기하십시다. 도원수도 오늘 하루 고생하셨소. 그럼.”
 
양호는 이 말을 남기곤 자리를 떠났다. 권율은 더는 경리를 잡지 못했다.
 
호사다마라 하였거늘. 별일이 없어야 할 터인데.’
 
도원수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갖고 군막을 나섰다. 그가 주위를 살펴보니 학성산과 주변의 주둔지에선 왜군에게 보란 듯이 환한 불빛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길고 길었던 공성전 첫날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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