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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8장 막간극 上)
게시물ID : history_1782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2
조회수 : 32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21 10:26:48
언제나 부족한 제 습작을 보아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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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막간극
 
15971223일 저녁 학성산 명군 지휘부진지
 
양 경리 각하. 서전의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장대인도 원로에 고생하셨습니다.”
 
화려한 갑옷을 차려입은 경리 양호와 유건에 비단도포로 멋을 낸 사내가 서로 포권의 예를 행하고 있었다. 이곳은 도산성에서 500m 떨어진 학성산 정상이다. 학성산은 표고 60m의 언덕으로 울산 왜성의 여러 전장이 한눈에 보이는 요지였다.
 
물자가 충분치 못하여 장군께서 마음에 드실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이렇게 저와 천군을 위해 애써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장 씨 상단의 수장이자 명나라 내각수보의 친척인 장 대인이 겸양의 겉치레를 했다. 양호는 그의 겸양을 받아넘기며 진지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낮에 경리가 보낸 이들. 정확히는 장 대인의 수하들이 반나절 만에 완성한 막사였다. 각 천막은 안쪽은 두꺼운 가죽으로 되어 있고 겉은 모두 유악 (비가 새지 않게 기름을 칠한 천막) 을 덧씌워 방한과 방풍이 철저히 유지된 상태였다. 내부 또한 호화롭기 그지없었는데 경리 양호와 명군 수뇌부의 거처는 침상에 보료처럼 양털을 깔았으며 두꺼운 비단 솜이불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군략을 논의하는 막사의 바닥에는 표범 가죽이 깔렸었으며 긴 탁자는 비단으로 멋을 내었다. 양호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경리를 수행하던 인사들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단 한 사람만 빼놓고는.
 
양 경리 각하. 곧 군의를 열 시각입니다.”
 
웃지 않던 그가 입을 열었다. 옆에 있던 통사가 말을 부드럽게 풀어서 번역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굳은 그의 표정이 심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할 말은 하는 남자인 접반사 이덕형은 학성산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 경리에게 저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걸 보면 장 대인 저 작자에게 꿍꿍이속이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접반사는 그를 째려보았다. 장 대인은 그의 뜨거운 눈빛을 읽었는지 양 경리에게 읍을 했다.
 
하하. 일개 장사치가 군막에 오래 머물렀군요. 그럼 저는 상단을 이끌고 경주로 가서 군량을 수급하는데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이런. 차라도 한잔 하시고 가셔야 제 마음이 편할 터인데.”
 
아닙니다. 공사가 다망하니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승전 축하연에서 뵙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장군 무운을 빕니다.”
 
눈치껏 장 대인이 자리를 피하자 양호는 새로 지은 군막으로 휘하 장수들을 소집했다.
 
같은 시각. 분주히 오가는 학성산 진지에 특이한 무리 하나가 진중에 도착했다. 조선의 갑옷을 입었으나, 손에는 조총을 들고 자기들끼리는 왜어를 쓰는 자들이었다. 이때 아동포살수대 대장인 여여문과 초관 최산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여대장님 저희 왔습니다.”
 
. 왔소이까? 원행에 고생이 많았소.”
 
이 이상한 무리를 통솔해 온 자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중추부 첨지부사인 김 총선이었다. 당상관의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 첨지는 연배가 높은 여여문에게 하대하지 않았다.
 
야에몬 아니키
 
야에몬 상
 
요여무니 횽님
 
김충선을 따르는 주위의 군졸들이 여여문에게 아는 체를 하며 반가워했다. 그들 또한 여여문김충선과 더불어 귀순한 항왜들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 사야카 포술대에 속해있던 텟보 아시가루들이었다.
 
전국에서 이놈들을 모은다고 고생깨나 했습니다. 이놈들 동원해보니 예전만큼 실력이 떨어져 훈련도 겸하면서 내려왔더니 개전 후에나 와버렸습니다.”
 
김 첨지는 그리 말하면서 주위의 병졸들을 흘겨 보았다. 그들은 그런 김충선의 눈빛을 아랑곳하지 않고 상관의 질책을 넉살 좋게 받아쳤다.
 
아이고. 옛날에는 젊었으니 비호처럼 날랬습죠. 지금은 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 같은 마누라가 있는데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며 몸을 사려야지요. 하하.”
 
이놈들이. 조선군에 들어가서 텟보 교관 노릇을 하다 보니 조선사람처럼 농도 늘었구만. 예끼.”
 
흥미롭게 김충선과 그의 동료들의 만담을 지켜보던 여여문의 표정이 순간 흐려졌다. 그걸 눈치챈 첨지는 부랴부랴 누군가를 불렀다.
 
울이야. 울이 이리 나오너라.”
 
. 스승님
 
군졸속에서 키가 큰 더벅머리 총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골이 장대하지는 않았으나, 얼굴만은 미형이었다.
 
대장님. 이제 복귀하였습니다.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오냐. 너도 별일 없었느냐?”
 
.”
 
울이는 공손히 자신의 상관에게 복귀신고를 했다. 옆에 있던 산이가 호돌갑을 떨며 울이에게 말을 걸었다.
 
. 이제 직속상관인 나에게도 신고해야지. 에험.”
 
“...”
 
장난스럽게 거들먹거리는 산이를 보며 울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결심한 듯 초관의 귀에 대고 큰소리로 또박또박 외쳤다.
 
...... 포수. . . 왔다아.”
 
으아악... 귀청 떨어지겠다.”
 
.”
 
산이가 귓불을 잡고 흔드는 순간 우악스러운 손이 그의 등을 강타했다. 울이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오. 대장님 아파요.”
 
언제까지 내가 널 훈육해야 하느냐? 이제 미관말직이나마 벼슬도 했으니 좀 의젓해지거라. 동기 좀 그만 놀리고.”
 
여여문을 그를 향해 잔소리를 시작했다. 때마침 명나라 군사 하나와 통사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첨지중추부사 김충선 영감과 아동포살수대 대장 여여문 나리 되십니까?”
 
그렇소만. 무슨 일이요?”
 
김 첨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지금 당장 군의에 참석하라는 양 경리 각하의 명이요.”
 
군의라... 무슨 일이요?”
 
여여문이 잔소리를 그만두고는 통사와 군졸에게 질문했다. 통사는 군졸과 말을 주고받더니 잠시 후 대답했다.
 
그건 소인도 모릅니다. 두 분을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을 뿐. 그리고 첨지 영감이 통솔해온 항왜들은 여기 학성산 진지에 여장을 풀라는 지시를 받았소이다. 이 병사를 따라가면 될 것이오.”
 
여여문과 김충선은 통사를 따라 지휘부가 있는 막사로 향하고 항왜들은 명나라 병졸을 따라 배정된 군막으로 이동했다. 울이 또한 봇짐을 잡고선 산이에게 말했다.
 
난 어디로 가면 되니? 초관나리?”
 
비아냥거리는 울이에게 산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대장님이 이곳에 따로 거처를 마련해 두셨다. 날 따라오도록. ? 혼자 지내려니깐 외로워서 그래? 내가 자주자주 와줄게. 동기 좋다는 게 뭐냐. 그리고.”
 
 
산이가 말을 이으려 하자, 울이가 그곳을 차버렸다. 초관의 체면에도 불구하고 산이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 너 여길 차면 어떡하냐. 깨진다 말이야.”
 
. . 초관나리 앞장서시지요.”
 
울이는 쌤통이라는 듯 혀를 빼꼼 내밀고는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켰다. 그들은 투닥거리며 황혼의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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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군요. 그래도 명군의 기세가 대단하네요.”
 
과유불급이라고 했으니 좀 더 지켜봐야겠지.”
 
군의가 열리는 막사로 가면서 여여문은 김충선에게 오늘까지의 전황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자신들이 속한 조선군 입장에서는 별 소득 없는 하루였으나, 명연합군에게는 쾌조의 서전이었다.
 
그들이 진지를 이동하는 사이에도 양국의 병사들은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었다. 목책을 세우고 경계를 서며 식사를 준비하는 일 모두가 병사들의 몫이었다. 그때 낡은 갑옷을 입은 군졸하나가 둘 사이를 지나쳐 갔다. 김 첨지는 무심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대장님. 잠시만. 어이. 거기 지나가는 조선군 군병은 멈추어서 이쪽으로 오라.”
 
첨지는 그에게 소리치며 명했지만, 군졸은 그들을 홀깃 쳐다보더니 가던 길을 가버렸다.
 
무슨 일인가?”
 
여여문이 별안간 돌출행동을 하는 김충선에게 물었다.
 
잠시. 확인할 일이 있소. 여대장 먼저 군의에 참석하시구려. 누가 날 찾거든 곽란(배탈)이 나서 볼일 보러 갔다고 전해주시오.”
 
김 첨지는 그에게 말하며 허겁지겁 병졸이 사라진 곳을 향해 달음질을 쳤다. 여대장은 고개를 가로 졌고는 통사를 따라 회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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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은 황제 폐하 성덕과 천장과 천군의 은혜로써…….”
 
군의가 열리는 막사 안에서 경리 양호가 일장연설을 하고 있었다. 제독 마귀를 비롯한 명군 제장들과 도원수 권율을 필두로 한 조선군 수뇌부 그리고 접반사 이덕형과 항왜 여여문이 자리했다.
 
“... 그럼 부총병 이여매 장군이 전과보고를 해보오.”
 
길고 긴 연설이 끝나고 전투결과를 보고 하는 시간이 왔다. 좌협 부총병 이여매는 자리에서 일어나 품속에서 쪽지를 꺼내 들었다.
 
소장이 전과를 발표하겠소이다. 양 경리 각하의 놀라운 지략의 힘으로 먼저 본인의 좌협은 조선군의 경상좌병영터에서 왜군을 유인 적을 격멸하였소이다. 게다가 울산성의 외성 주위의 3중 목책을 격파하였소.”
 
오오…….”
 
좌협의 전투결과를 듣자 좌중이 술렁거렸다. 이 부총병은 흐뭇해하며 말을 이었다.
 
또한, 부총병 고책와 吳惟忠이 이끄는 중협이 언양 방면에 주둔하고 있던 적의 진지를 급습하여 왜적 200여 명을 참살하였소이다.”
 
전날 부총병 吳惟忠의 부대는 양산 쪽에서 올라오는 왜군을 막기로 하였으나, 작전이 개시되고 나서 중협과 함께 행동하게 하였다.
 
그리고. . 그러니깐…….”
 
부총병은 어찌하여 뜸을 들이는가? 속 시원하게 말해보라.”
 
머묻거리는 이여매를 향해 양호가 힐난하며 꾸짖었다.
 
험험. 마지막으로. 오늘 선봉으로 출전한 참장 양등산과 유격장 파새의 기병과 보병은 유인과 매복을 통해 태화강 상류의 적을 괴멸시킬 수 있었으나, 적의 원군이 당도하여 치열한 접전을 벌여 아군은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고 왜적의 수급은 260여 개를 획득하였소이다. 또한, 전투 중에 왜장 1명을 생포하는 성과를 내었소이다. 이후 본성으로 도주하는 적을 제독 마귀 각하와 소장이 추격하였으나 아쉽게도 왜군의 잔당들이 왜성으로 들어가 버렸소.”
 
다 잡은 월척을 놓친 조사처럼 좌중에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때 보고를 듣고 있던 양호가 입을 열었다.
 
. 초전에서 적을 460여 명이나 베어 넘겼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요. 오늘의 전공은 마땅히 황상 폐하와 도당에 알려 상찬받아야 마땅하오. 허나...”
 
양 경리는 말을 끊고 마 제독을 노려보며 입술을 떼었다.
 
이 부총병이 보고한 마지막 전투에 대해서 마 제독께서 여기 모인 제장들에게 할 말이 있을 듯하오.”
 
 
마귀는 경리에게 지목을 당하자 탁자를 주먹으로 힘껏 내려쳤다. 그 순간 군막 안 분위기가 단번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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