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과장님 또래의 직딩이 보는 미생은 참 재미있습니다.
그래나 백기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고참들의 입장이 이해되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잘만든, 수준 높은 영화나 드라마의 특징은
전형적인 악역도, 선한역도 없다는거죠.
그저 등장인물들의 입장과 환경에 따라, 그 경계가 오묘히 오가고
그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과 탄성을 가져다주지만,
또 반대로 누군가에겐 피곤함을 줍니다.
그래서 드라마의 주 연령층(중년 아주머니들)에게는 선과 악의 대결이 분명하고,
다음 장면이 머리에 그려진대로 펼쳐지는
그런 전형적인 드라마가 인기가 있지요.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즐기면서 보는 헐리웃 액션 팝콘 무비 같은.
얘기가 샜네요.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백기가 일좀 달라고 떼쓰고 나서,
강대리가 엑셀테이블 만들라고 일을 주고,
백기가 마지못해 만들어서 제출하던 장면이었습니다.
고참이다 보니 아무래도 강대리의 입장에서 보게 되더군요.
참 한심했습니다.
말그대로 텍스트만 잔뜩 옮겨다 놓은 '드래프트'를 디밀고,
이게 뭐냐는 강대리의 말에,
'내용 확인해주시면 완성하겠다' 라고 하죠.
윗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작업 결과.
아직 업무를 받지 못한 신입사원인 백기는 회사 도서관에서 경영과 무역에 관한 책을 대출받아 읽고 있죠.
철강팀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어떠한 양식들로 업무가 진행 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체계가 잘 갖추어진 회사들은
그리고 각 하위 팀들은 각자의 일하는 방식과 양식이 있습니다.
저도 신입사원때는 그 '양식'이라는 것이 참 부질없다라고 생각했지만,
가장 기본중의 기본이 양식입니다.
왜냐,
윗사람이 될수록 시간이 부족합니다.
늘상 드라마에 나오는 팽팽 노는 전무와 부장들, 개구라입니다.
누구보다도 바쁩니다.
물론 양보다 질적으로 바쁩니다.
여러가지 중요한 정보들을 취합하여, 바른 방향으로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입니다.
그들이 쉽게, 빠르게, 정보들을 습득하려면,
양식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보고 문건마다 양식이 지 멋대로라면,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오해가 생기고,
적확한 판단을 내리는데 오류가 발생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양식'이 기본이 되는겁니다.
제가 신입사원때는 스태플을 박을때도, 각도 45도, 여백 위아래 5미리.
이것조차 칼같이 준수했고,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스태플러로 머리를 찍혔습니다.
글자 크기, 줄간격, 좌우여백, 표 양식 이런것들은 말할것도 없죠.
그때는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합니다.
그만큼 양식이 업무의 기본이며, 중요하다는거였죠.
누구보다 바쁘고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윗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는 것을.
신입사원 또래 여러분들 중에,
드라마를 보다가 고참들의 언행이 이해가 안가는 분이 있거든
미력하나마 느낀점을 풀이해드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