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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일본 체류기3 노가다
게시물ID : emigration_1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술취한멍멍이
추천 : 9
조회수 : 840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08 12:22:38


추웠던게 생각난다.


아직 아침이면 입김이 나오는 계절, 일이 너무 고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가슴속에 품고 이름도 생소한 지역까지


전철을 타고 이동했다.


노가다 첫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얼른 105엔짜리 싸구려 비닐 우산을 편의점에서 사서 노가다 현장까지 종종걸음으로 갔다.


거의 헤매지도 않고 현장에 도착해보니 반쯤 해체된 집과 공사현장에서 쓰는 차량 몇대뿐..


하이얀 입김을 뿜어내며 차가운 비를 맞다가 전화를 걸어보니


"트럭안에 들어가 있어~" 라고 한다.


처음으로 일본산 큰 덤프트럭에 들어가니 의외로 아늑했다.


'한번도 못본 사람의 트럭인데 괜찮으려나..'


하면서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걸 보고 있으니 방학기간임에도 부활동같은걸 하러가는 일본 학생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게 생긴 세라복이나 유치원생 애기들의 귀여운 옷 혹은 일본초등학생들의 란도셀을 진 모습을 보다보니


비가 그쳐버렸고 해가 나오더니 금새 바닥이 말랐고


직원들과 만나 일이 시작되었다.


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젊은 알바생이 두명 있었는데 18살 19살 정도임에도 삽질이 능숙해보였다.


회사 정직원인 포크레인 운전기사 아저씨는 딱 봐도 야쿠자같은 얼굴이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실제로 신주쿠 뒷골목에서 일한적이 있다고 하는듯 했다.


일이 너무 힘드면 어쩌나... 하고 한국에서 한달동안 했던 노가다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아파트 건설현장에 들어가서 2주일 정도 노가다를 한적이 있었는데


벽돌을 메고 5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거나


모래를 등에 지고 오르거나 하는일이 대부분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땀이 눈앞을 가리고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졌지만,


어쨌든 경험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했었다.


"에~ 이름이 뭐라고 했지?"


야쿠자같이 생긴 직원이 와서 물었다.


이름을 말하니 그뒤부터는 크레용 신짱의 신짱 같다며 나를 신짱으로 불렀었다.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할것을 배웠는데 의외로 별로 할게 없었다.


포크레인이 작업하면 먼지가 일어나는데, 그 먼지가 주택가로 불지 않도록 물을 뿌리고


대형 트럭이 오고갈때 차량들이 안전하게 지나가도록 유도하거나 막아주고


남은 쓰레기들을 플라스틱은 플라스틱, 나무는 나무대로 분리수거하고


뭐 그런 일이었다.


'짓는게 아니라 해체하는 일이라 수월한건가?'


하루종일 열심히 왔다갔다하며 물을 뿌리고, 대형차량이 도로로 나갈때 유도도 하고


대형차량 바퀴에 딸려 나간 흙들을 빗자루질 하고 심부름도 하다보니 하루가 지나갔다.


'쉬운데?'


호텔일과 식당일을 비교해보면 일이라고도 하기 힘든 수준의 난이도였다.


아침까지 어려우면 어쩌나 하고 잔뜩 쫄아 붙었던게 한심할 정도의...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신짱. 고생했어."


일급제라는 부분이었다.


나는 당시 10500엔을 일급으로 받았는데 약 14만원 수준의 돈이었다.


일이 너무 쉬워 황송해 하며 돈을 받고 생각해보니 하루 일하고 바로 컴퓨터 ssd를 하나 살 수 있는 돈을 받는거라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


'와..하루 일하고 14만원이면.. 시급 2600원 받고 하던 편의점의 14일분 월급이네'


"신짱~ 일끝나고 한잔하러 갈건데 같이 갈래?"


야쿠자 같이 생긴 정직원의 말에 돈이 없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괜찮아~괜찮아~ 돈내라고 안하니까"


라며 차에 태워져 신주쿠로 향했다.


차에 타서보니 정직원들은 차에 옷을 잔뜩 실어놓고 일이끝나면 더러워진 옷을 바로 갈아입는 모양이었다.


옷에서는 남자특유의 냄새와 엔진오일, 매연냄새와 독한 담배냄새가 풍겨져나왔다.


"신짱. 신주쿠 가본적 있어?"


"네. 몇번 정도.."


신주쿠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구경하러 몇번 가본적은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게 안을 들어가본적은 없었다.


자리값만 몇천엔씩 뜯기는 술집에 들어가기에 나는 너무 가난했다.


"오~ 그러면 내가 잘아는 가게로 갈테니까 기대해!"


일본 사람들은 정이 없다거나 아시아인의 탈을 쓴 유럽인이라거나 더이페이가 철저하다는 말을 듣곤 했지만


야쿠자 얼굴의 정직원은 그렇지도 않았다.


혹시나 풍속점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제법 훌륭한 술집으로 날 데려다 주었고


나는 노가다 하던 지저분한 복장으로 죄송해하면서 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다.


일본 특유의 처음보는 술도 많았고 일본의 주도는 또 한국이랑 달라서


실수를 많이 했는데 정직원들은 그게 또 외국인이란 느낌이 들어서 좋았는지


즐거워해주었다.


그 뒤부터 야쿠자 얼굴의 정직원은 나에게 잘해주었다.


원래 점심식사는 각자 돈을 내었는데 내가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꼬박꼬박 점심을 사주었다.


사장님도 좋은분이라 일하고 있으면 빵이나 케잌을 사서


"다들! 이거 먹고해!" 라며 부르곤 했다.


'일본은 정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이 넘치는 모습에 역시 인터넷으로 듣는거랑 실제는 전혀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다.


일쪽은 점점더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빗자루질하고 물뿌리고 심부름하고 정도였지만


하루하루 일의 난이도가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포크레인의 삽 교체작업이나


간단한 운전 [일본면허가 있었다] 심지어는 포크레인을 간단히 조작하여 덩어리진 콘크리트 덩어리를 깨기도 했다. [원래는 하면 안된다]


포크레인이 큰거 하나 작은거 하나가 있었는데 해체일이 많아 기사가 다른곳으로 가서


한대가 항상 놀고 있으니 나를 시킨것이다.


처음 포크레인을 운전해보는 것이었던지라 각기춤 추듯 덜걱거리는게 우스웠다.


물론 혼도 많이 났다.


콘크리트 덩어리를 부순다고 굴린게 데굴데굴 구르더니 도로까지 나가버린일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눈물이 쏙 날정도로 혼이 났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할뻔했어!"


일본어로 그렇게 크게 혼이난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일본사람이 그렇게 큰 목소리로 소리치는걸 들은것도 처음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였지만.


하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눈을 보니 그 야쿠자 얼굴의 정직원이 싫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걱정이되서 그러는거란걸 왠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섭섭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 뒤로도 계속 포크레인을 움직이다보니 점점 포크레인의 팔도 부드럽게 움직이게 되었고 나중에는


노가다 알바가 아니라 포크레인 기사라도 된것마냥 종일 포크레인에 타고 있기도 했다.


알바는 자주 바뀌었는데, 오는 사람마다 얼굴만으로는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전혀 구분을 못하는것 같았다.


당시 일하면 땀이 눈에 자꾸 들어가서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일을 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정말 한국인?"


이라고 물어볼때마다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면 그때서야


"아..발음을 들어보니"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이라고 대답할때 캉코쿠진 이라고 하는데 이 진 발음이 일본발음이랑 많이 다른 모양이엇다.


일본어의 쯔와  한국어의 쯔도 발음이 미묘하게 다른데 어쩌다보니 이건 고쳐졌다.


그런데 자지즈제조 이 발음들은 끝내 교정되지 않았었다.


사실 뭐가 다르다는건지 조차도 이해 못햇었으니..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나면 30분정도 시간이 남아서 트럭이나 포크레인에 들어가 잠을 청하곤 했는데


나는 그래도 일본에 언제까지고 있을 몸이 아닌지라


기름때 뭍은 옷을 입은채 여기저기를 구경다녔었다.


벚꽃이 가득핀 일본특유의 좁은 길이나


초속5센티미터에 나올법한 언덕위의 학교


회사원들이 고양이에게 참치를 주며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은 공원


목조로된 일본 특유의 오래된 가정집 등등..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들이었다.


해체공사를 하는 바로 옆집에는 굉장히 나이드신 노부인이 한분 살았는데


말년을 함께하는 강아지도 나이가 12살인가? 그렇게 먹어 백내장등이 와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외견으로 보기엔 언제죽어도 이상할게 없는 강아지였다.


"이야~ 안녕! 강아지야. 오늘도 산보 나왔냐?"


야쿠자 얼굴의 정직원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그 할머니와 강아지가 인사해오면 반겨주곤 했다.


태우던 담배도 얼른 톡 하고 버리면서 어른 특유의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학생 언제나 열심히 하네요.."


할머니는 창문으로 내가 일하는걸 보고 있었다며 항상  나를 치켜세워주셨다.


집에 가는 시간이 되면 어떻게 알고 나왔는지 대문에 서서 손으로 오라고 부르는 것이다.


"타지에서 고생이 많아요.."


라며 과자나 사탕같은 군것질 거리를 한봉지씩 주곤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런걸 받아도 될지..."


"어른이 주는건 받는거에요.."


할머니는 웃으며 그렇게 말해주시곤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이걸 어떡게 갚아야 하나..하고 고민하곤 했다.


한번은, 해체작업도중에 상하수도권 작은걸 터뜨렸다.


일이 다 끝나가는 와중에 수도권이 터져서 야쿠자 얼굴의 정직원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모두를 집으로 보내야 하는데 자기탓에 수도관이 터지자 분노한것이다.


주변 사람에게는 관대하게 자기에게는 엄격한 성격이었다.


암튼 급하게 차로 물건을 사와서 고치고 물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 경찰관 두명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더니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한명은 앞에, 한명은 뒤에 서서


"바쁘신 와중,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신분증좀 볼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는데 좀 무서웠다.


"네.."


라며 신분증을 보여주니


"아, 한국에서 오셨군요" 라며 얼굴에 미안한 기색을 띄웠다.


옷이 지저분해서 가출한 청소년인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 일 후로는 힘들어도 크로스백에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다니게 되었다.


아무튼..


이 일도 결국은 해체가 끝나자 종료되었다.


"나카노에 해체현장이 하나 더있는데 계속할래?"


라고 묻는말에 나는 생각해본다며 답변을 미루었다.


일이 한달쯤 되자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싶은 생각에 다른일로 알바를 바꾸자고 생각하고 있었던것 같다.


하루 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기에 야쿠자 얼굴의 정직원 아저씨는 알았다고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신짱 없으면 외롭겠는걸~"


그렇게 말하며 차에 오르는 아저씨에게 잠깐만 있어달라고 이야기 하고 나는 얼른


할머니 집으로 갔다.


뭘살까 고민하다가 결국 감사의 편지와 나름대로 엄선한 한국과자들을 담은 봉투를 현관에 걸어두고


돌아왔다. 일본어로 말하는건 어케든 되는데 쓰는건 한자를 몰라서


지금 생각해보면 편지도 엉망진창일 터였지만, 그래도 성의없이 돈을 넣어두고 오는편이 실례일것 같은 생각에 그렇게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 내일부터 안나가도 된다~~~" 라며 침대에 누우니 마음이 가벼운게 쭉 이러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한달이었다.


약 18일 정도 일했고


하루 10200엔? 정도벌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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