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용(羅大用, 1556년 ~ 1612년)
자는 시망(時望), 호는 체암(遞菴). 그 시망이 아니다.
전라도 나주 출신으로 본관은 금성(錦城)이시라는군요
1583년(선조 16) 2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한동안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지냈습니다.
이분은 충무공을 소재로 나오는 모든 미디어에서 공통적으로
전대의 공돌이를 책임지는 분으로 나옵니다.
거북선의 개발자로 소개되거든요
그런데 공식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야사에서 그렇게 나온다고 합니다.
사실 거북선 개발 계획에 관련된 사람은 20명을 넘어간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 안에 나대용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참여했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어느 드라마나 공돌이가 그렇지만 전형적인 괴짜로 나왔습니다........개그캐........
실제 기록에서는
1594년 강진 현감을 지내다가 윤형으로부터 사람됨이 간교하고 주제넘게 일을 처리하면서 술, 떡을 만들어 백성에게 명성을 구한다고 까이고
또한 남의 말을 약탈해 뇌물로 쓰고 사신이 바다를 건널 때 수호용 선박을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탄핵당합니다.
1599년 44세 능성 현령을 지내다가 술만 마시고 일은 제대로 안한다는 이유로 임수정에게 밉보여 탄핵당했습니다..
그러니깐 사람이 좀 게을렀던 듯 합니다...................-,,-;;;;;;
공돌이+귀차니스트+괴짜+놀자판인생 캐릭터속성종합선물세트인데!!!! 완벽한 캐릭터다!!
허나 임진왜란때는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선조 24) 35세
전라좌수영 수사(全羅左水營水使)로 있는 이순신장군을 찾아가
거북선 개발에 관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갔다는군요
충무공께서는 당연히 크게 기뻐하시며 거북선 개발부에 그를 꼽아 넣습니다.
나대용은 공돌 기질을 뽐내며 개발과 연구에 심취했고
왜란이 시작되자 충무공을 따라다니며
옥포(玉浦) ·당포(唐浦) ·사천(泗川) 등 15여 회의 해전에 왜적과 왜선을 도륙하는 큰 공을 세웁니다. 개그캐가 간지폭풍으로..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遊軍將)을 맡아 적의 대선(大船) 2척을 격파하고
사천해전에서는 분전 끝에 총탄을 맞아 전상을 입고
한산도해전에서도 재차 부상을 당합니다.
부상이 잦으셨던듯..그리고 이런 잦은 부상으로 말년에 고생을 하게 되셨죠..
정유재란 때의 명량해전과 1598년의 노량해전에도 참가하여 전공을 세우셨습니다.
그와 같은 전공으로
1594년 38세 강진현감으로 임명되고 연달아 금구(金溝)·능성(綾城)·고성(固城)의 현감을 역임합니다.
이 시기에 새 전함인 창선(鎗船)을 창안 건조합니다. 창선은 창과 칼을 빽빽하게 꽂은 배였다고 실록에 나온 답니다.
1610년(광해군 2년) 54세 남해현령에 제수됩니다.
이 시기에 해추선을 만드는데 해추선은 빠른 속도가 강점인 쾌속정였다고 합니다.
허나 위에 이야기 했듯이...나대용 이분.......관직생활은 놀자판...........
하지만 신작개발은 계속되었던 것을 보아
관직보다 개발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1611년 55세 경기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喬桐水使)에 제수되었으나 전상이 도져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1월 29일 56세 아직 가시기에는 빨랐던 50대 후반에 돌아가십니다.
젊은시절부터 많은 부상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네요.
나대용님의 생가가 있는 장소는 전남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에 있다고 합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26호로 생가 건물의 구성은 본채만 남아 있는데
본채는 남남서향을 하고 전후좌우퇴를 가진 정면 4칸, 측면 1칸의 一자집이라고 합니다.
사당도 같은 곳에 있다고 하는데 소충사라 합니다.
불꽃같은 공돌혼을 가지셨던 충무공님의 개발자셨던 나대용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