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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의 남하정책 이후, 우울함이 백제를 덥치다.
게시물ID : history_177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간만축내네
추천 : 3
조회수 : 203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4/08/15 23:33:03
  소수림왕의 율령반포나 불교도입같은 국내 정비와, 광개토 대왕의 정복 활동으로 고구려는 강력한 국가로 거듭 납니다.
 
 장수왕은 선왕들의 업적을 물려 받아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일전을 준비합니다.
 
 당시 한강은 중국과의 교역이나, 한강하류의 넓은 평야,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핫 플레이스 였죠.
 
 장수왕은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호시탐탐 한강을 노리다 결국 백제를 급습합니다. 백제의 개로왕은 아차산성에서 결사항전하나,
 
 결국 고구려의 강력한 힘 앞에 참수를 당하게 됩니다. 일전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참수한 것을 복수하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개로왕을 죽인 장수왕은 한강을 독차지하게 되고, 한반도의 중원 충주까지 진출하게 되죠.
 
 근초고왕때 꽃을 핀 백제는 개로왕의 전사 이후 골골되기 시작합니다. 백제 전체에 패배주의가 싹 틔우게 됩니다.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이 웅진에 임시 도읍을 세우지만 웅진은 예전 한강만 못하죠.
 
 이런 백제의 암울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자, 백제에 또 다른 위인이 나타납니다. 바로 성왕.
 
 백제의 성왕은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압학하기 시작하고, 한강 복원 PLAN을 계획합니다. 나제 동맹군이 한강을 차지하면 한강 하류는 백제가 상류는 신라가 차지하는 계획을 세우죠.
 
 
 
 그런데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일까요? 고구려는 예전만 못하지만 문제는 신라의 강대함이었습니다. 진흥왕은 신라의 전성기를 꽃 피운 왕으로 보통인물내기가 아니였습니다. 그는 신라가 발전할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경상도 내륙지방에 갇혀 있어 중국과의 교류가 부족해 항상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늦었던 신라였습니다.
 
 신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한강 하류를 차지하여 중국과의 교역이 필수였습니다.
 
 진흥왕은 야금야금 정복전쟁을 펼칩니다. 경상도 경주일대에서 벗어나, 충청도 단양까지 진출합니다. 그리고 나제 동맹을 통해 한강을 차지하기로 하죠.
 
 
 
여튼 나제 동맹군은 멋지게 한강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진흥왕은 욕심을 부려 백제의 뒤통수를 멋지게 후드려 갈깁니다. 마치 스타 2:2에서 다 이겨가다가 동맹에게 뒤통수 맞는 격이랄까요? 백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한강 하류는 다시 신라의 차지가 되게 됩니다.
 
 백제의 성왕 입장에서는 다된 밥에 재 뿌리는 것도 모자라 상까지 뒤 엎는 상황이니 그 분노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분노한 성왕은 나제 동맹 뒷통수를 쳐 맞은 553년 다음 해 급하게 신라를 치러다 신라의 매복군에 걸려 결국  관산성에서 전사하게 됩니다.
 
 백제로서는 개로왕 전사 이후 또 다시 왕이 전쟁에 죽는 참담한 결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전라도 곡창 지대를 바탕으로 막대한 생산력을 자랑하던 백제였지만, 일련의 왕들의 전사, 한강에서 쫒겨나고 다시 한강에서 뒤통수를 맞는 과정들을 통해 매우 쇄약해지게 됩니다.
 
 한때 중국 산둥반도를 점령하고 요서를 점령하고 일본 규수까지 진출했던 해상강국 백제는 이렇게 파멸의 늪에 허우적 거리게 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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