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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보는 어느 예술가 이야기
게시물ID : history_176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rca
추천 : 1
조회수 : 11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13 19:08:55

궁궐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사람의 춤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죽은 자의 연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조용히 손을 모은 채 바라보았고, 그 사람이 우는 연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도 울어서 통곡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람은 광대나 기인도 아닌 바로 왕이었습니다. 그것도 조선시대 Top급 폭군인 연산군이었습니다. 연산군은 예술적인 기질이 대단했는지 시도 곧잘 지었으며[1], 춤에도 재능이 있어서 처용의를 입고 처용무를 직접 추기도 하였고[2], 풍두무라는 춤을 직접 출 때는 주변의 흥청들이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았고 죽은 자의 연기를 하며 눈물 연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통곡까지 하였다고 합니다[3] (물론 운 사람들 대부분이 흥청-운평들 중 예능이 밝고 색기가 뛰어난 기생-이었다는 것은 함정입니다만).

 

 

만약 연산군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엄청난 예술가로 대성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술가적 능력을 뽐내기 이전에 왕이었고, 왕은 예술가적 능력을 뽐내기보다는 현명한 정치로써 나라를 이끌 책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로마제국 5대 황제인 네로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뭐 말로도 둘 다 비슷하고 말입니다(네로는 죽었고 연산군은 죽진 않고 유배당했으니 연산군이 더 나앗으려나요?).

 

 

 

[1] 연산군이 직접지은 시 (일부)

 

노조지활최난순 (路謠地滑最難巡) : 길은 멀고 땅은 미끄러워 다니기 몹시 어려운데

불각성충예자신 (不却誠忠詣姿晨) : 충성심 버리지 못해 일찍부터 나왔구려

여익현공현걸보 (予翼賢公見闕補) : 나의 날개 같은 어진이 들 내 잘못 살펴주고

환기연치사령춘 (還期年齒似笭春) : (비노니) 복령과 대춘처럼 오래오래 사시오

 

자맥춘풍삼월삼 (紫陌春風三月三) : 3월 3일 봄바람 부는 서울 거리에

조비어영백화암 (鳥飛魚泳百花馣) : 새 날고 고기 놀며 온갖 꽃 향기롭네

난정계사수운호 (蘭亭稧事誰云好) : 난정 놀이를 뉘라서 좋다는고

불사은대사주감 (不似銀臺賜酒酣) : 은대에서 어사주(御賜酒)로 취함만 하리

 

인생여초로 회합불다시 (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 :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

 

[2] 왕이 술에 취하면 기꺼이 처용의를 입고서 처용무를 추며, 또한 스스로 노래하기도 하였다. - 연산 57권, 11년(1505 을축 / 명 홍치(弘治) 18년) 4월 7일(임술) 1번째기사 일부 발췌

 

[3] 왕이 풍두무를 잘 췄으므로, 매양 궁중에서 스스로 가면(假面)을 쓰고 희롱하고 춤추면서 좋아하였으며, 사랑하는 계집[嬖姬] 중에도 또 사내 무당놀이를 잘하는 자가 있었으므로, 모든 총애하는 계집과 흥청 등을 데리고, 빈터에서 야제(夜祭)를 베풀었는데, 스스로 죽은 자의 말을 하면서 그 형상을 다 하면 모든 사랑하는 계집들은 손을 모으고 시청하였다. 왕이 죽은 자의 우는 형상을 하면 모든 흥청들도 또한 울어, 드디어 비감하여 통곡하고서 파하였다. - 연산 61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1월 2일(임오) 9번째기사 일부 발췌

 

 

※ 출처 : 조선왕조실록,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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