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안정복의 對중국 역사관
게시물ID : history_1768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려
추천 : 4
조회수 : 6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8/13 06:43:03
안정복의 동사강목 中
 
"우리 동방은 중국과 산천으로 막혔으니, 이는 천연으로 구별된 고장이어서 중국의 군현(郡縣)에 낄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당(唐)ㆍ우(虞)ㆍ삼대(三代) 때에는 다만 피복(皮服)을 공물로 바치고 악무(樂舞)를 바치고서 기미(羈縻)하게 하였을 뿐이라고 알려져 있고, 병합하거나 갈라서 반드시 중국 땅으로 삼고 말았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한 무제는 병력을 다하고 무위(武威)를 욕되게 하여 사이(四夷)의 경략을 일삼았다. 땅은 넓혔으나 덕에는 힘쓰지 않았으므로, 위엄은 더하였으나 혜택은 창달하지 못하여, 중국을 피폐시켰을 뿐이고 얻은 것이 잃은 것을 채우지 못하였으니, 무슨 보탬이 되었으랴"

"창해군은 세운 지 얼마 안가서 파(罷)하였고, 사군(한사군)은 세운 지 얼마 안 가서 합하였고, 현도(玄菟)는 군치(郡治)를 옮겼고, 낙랑(樂浪)은 동부(東部)를 덜어 냈다. 힘은 지켜 낼 수 없고 거조(擧措)는 전도(顚倒)되어, 이예(夷濊)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뿐이니, 어찌 중국의 수치가 아니랴"

"뒷날에 당(唐) 고종(高宗)이 고구려ㆍ백제를 현(縣)으로 삼으려 했고, 원(元) 세조(世祖)도 행성(行省)을 두었고, 명(明) 태조(太祖)는 철령위(鐵嶺衛)를 두려 하였으니, 모두가 한 무제의 사치한 마음을 답습하려 하고 옛 성왕(聖王)의 도(道)를 통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