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붕익은 인조 24년(1646)에 태어나 영조 11년(1735)에 죽은 무인입니다. 그는 숙종 25년(1699) 26세의 나이로 무과(武科)에 급제하면서 본격적인 관직생활을 한 인물입니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당쟁으로 일시 파직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생활을 하고 게다가 보시다시피 장수했습니다. 그리고 타고난 무인이었는지 노년에도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래의 일화는 그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장붕익이 죽기 2년 전인 영조 9년(1733)에 장붕익의 집에 자객이 들었습니다. 장붕익은 자객의 그림자를 눈치 채고, 바로 칼을 들고나가 그 자객과 일전을 벌였습니다. 몇 합을 겨루었는지는 몰라도 그 자객은 결국 그를 죽이지 못하고 담을 넘어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당시 그의 나이는 87세였습니다. 단숨에 담조차 뛰어넘는 자객이 80세가 넘는 노인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 버린 것이었습니다. 실록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강(晝講)을 행하였다. 훈련 대장 장붕익(張鵬翼)이 특진관(特進官)으로 입시하자, 임금이 자객(刺客)에 대한 일을 물으니, 장붕익이 대답하기를,
“잠결에 창 밖의 사람 그림자를 보고서 칼을 들고 나가니, 사람이 칼을 가지고 대청 마루 위에 섰다가 이내 뛰어서 뜰 아래로 내려가므로 함께 칼날을 맞대고 교전(交戰)하여 외문(外門)까지 옮겨 갔었는데 그 자가 몸을 솟구쳐 담에 뛰어 올라 달아났습니다.” - 영조 34권, 9년(1733 계축 / 청 옹정(雍正) 11년) 5월 12일(임진) 2번째기사」
이들의 정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대개 조선 후기 조직폭력배인 검계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장붕익은 숙종~영조 연간에 포도대장을 역임하면서 군사를 풀어 이들 검계 일원들은 모조리 체포하고 있었기에, 검계의 일원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언제든지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영조 연간에 대부분 소탕되고, 심지어 표철주라는 검계 사회에서의 유명인물은 장붕익의 대대적인 검계 토벌에 외지로 도망쳐 숨어지내다가 장붕익이 죽자 그제서야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한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 출처 : 조선왕조실록, 국조인물고,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