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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
게시물ID : humorstory_2382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뉘슈
추천 : 0
조회수 : 85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6/30 01:57:37

유난히도 더럽게 피곤한 밤이었다. 몇일 전에 걸렸던 바퀴벌레마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여름 독감때문일까. 머릿속에 있는 뇌수가
쪽쪽 모기가 빨대를 꽂아 마셔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여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언제나 그렇듯 사이가 좋지않은
여동생과 티격태격거릴 뿐 별다른 일은 없었다.

이윽고 지하철에 탑승했고 사람들은 만원이었다. 좋지 않은 시간대
라서 그런지 역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조금만 버티면 안락한
침대에 몸을 던져 쉴 수 있기에 이 까짓 것 쯤은 참았다.

그렇게 점점 머릿속의 기억 사이사이에 공백이 끼어들어가기 시작
했고 다시 제대로 정신을 차린 것은 10분 쯤 지나서 일 것이다.
왜냐하면 옆에서 술을 좀 과하게 마셔 구토를 했는지 약간의
냄새를 풍기는 머리가 벗겨진 과장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중년아저씨
가 옆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악취때문에 깬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중년아저씨
의 눈길에 어딘가에 머문다. 힐끔힐끔 고개를 뒤로 돌아보며 어떤
여인에게 계속. 왠지 불길한 감이 든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득찬
이곳에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것에 짜증이나 불쾌지수가 높아져
있는 나였기에 별 관심 없이 신경을 끊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손잡이에 오른손을 왼손으로 바꿔 잡고 뒷짐을
지는가 싶더니 뒤에 여인의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는게 아닌가.

나는 그 장면을 보고 놀라 말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여인은 놀라 몸을 굳힌채 엉덩이를 곧이 곧대로 내주고 있었다.
그 경직에 더욱더 과감하게 접근하는 아저씨를 보며 더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아저씨에게 한 소리 할 요량으로 입을 열었으나 먼저
지하철을 절단 시켜버릴 듯한 괴성에 입을 다물었다.

누구야! 라고 여인은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성량을 과시했다.

그와 동시에 아저씨는손을 내빼고 모른 척하고 나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여인은 나를 찢어죽일 것 같은 눈으로 본다.

"아저씨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요?"

나에게 질문해온다. 물론 다 안다는 투로. 어처구니가 없고 당황
스러운 상황이라 조금 버벅 되었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간다.

"아, 아니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아! 왜 붉냐고요.

"이건 여름감기에 걸려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지금 생각해도 조금 멍청하게 말을 내뱉었던
것 같았다. 저번에 걸렸던 여름 독감과 유난히 피로했던 오늘의
몸의 상태와 겹쳐 이루어낸 환상의 하모니(얼굴색)이리라.

"만져서 좋았어요?"

여자는 여전히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한다.
그에 화들짝 놀란 나는 옆의 아저씨를 가리키며 이 아저씨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술도 마신 인간이 태연한 얼굴빛으로 어허! 이 양반이
남에게 덮어씌우기 까지 하나! 쯧쯧.

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해버린 바람에 주위 사람들까지 나에게
한마디 씩 던져오는게 들린다. 하나 같이 좋은 소리는 없다. 마치
넌 쓰레기니까 죽어도 되라는 식으로 말한다. 아주 잘못도 없는데도.

그에 억울함이 북받친 나는 크게 아니라는 듯이 외쳤다.

"내가 아니라는데 왜 그렇게 우겨요! 난 정말 아니고 이 아저씨라고요."

그땐 당황스럽고 정황이 없어 몰랐는데 논리적으로 말했으면 어느정도
납득이라도 할 수 있을텐데. 여인의 입장으로써는 성추행범이 나라고
확정지은 상태로 되려 소리쳐 버렸으니 오히려 일이 더 꼬여버리고
말았다.

"어디서 소리치고 난리야! XX놈이 너 같은 인간말종쓰레기는 감옥에
 처 넣어야 해!"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드는 것이 아닌가. 그에 나는 차라리 잘 됐다는
심정으로 날카롭게 쏘아봤다. 눈빛이 서로 마주치는데 정말 역겨웠다.
이렇게 억울한 감정을 느껴본 것은 몇년 만인 것 같다. 여인의 눈에서
느껴지는 느낌보다 주변의 사람들이 정확한 상황판단도 되지 않았음에
불구하고 한 사람이 그렇다! 외치니 따라 외치는게 그렇게 꼴 사납게
보일 줄은 몰랐다.

여인이 경찰에게 상황설명을 할때 나는 옆에서 이 아저씨가 했다고
난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인의 말로는 아저씨가 한게 아니라
아저씨가 했다고 잘 못을 덮어씌운다는 식으로 말한다.

참 X 같았다 ^^

아무튼 계속 집안사정 이유로 자리를 뜰려고 하는 아저씨를 완강히
잡아 끌어 서면 역에서 내릴 수 있었다. 여인이 도중에 아저씨는
왜 끌고 와요! 생 사람 잡지 말고 보내요! 라고 말하는데 재수없긴
하지만 너한테 좋은 일이란다 ^^ 하고 뒤에 욕을 적당히 생략해서
해줬다.

여인의 입은 마치 이모씨의 땀을 걸레에 흠뻑 적신 뒤 꽉꽉 짜서
망치로 두들겨 넝마가 된 듯한 욕설이 다 거짓말 같이 들려왔다.

그렇게 서로 한참을 욕설을 번갈아하며 나에게 뺨을 날리려고까지
한 여인이었지만 끝까지 참고 버티니 40분이 지나서 경찰이 오더라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하니까 밥 좀 먹다가 더라.

경찰에게도 마찬가지로 울화통이 입체서라운드로 몰려왔지만 꾹
또, 또 참았고 상황설명에 들어갔다. 여인의 입장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은 내가 죽일 놈이고 내가 세상에서 유일한 쓰레기이고 키 작아
서 루져이고 돈도 없어서 차도 못사고 지하철만 타고 다니는 완전
쓰레기가 되어있었다. 그 말투에서 그 여인의 인성수준이 느껴졌다.

그리고 중년아저씨의 말. 정말 작가해도 되겠더라. 어떻게 하면
여인의 말에서 그렇게 콕콕 찝어서 30일 보컬 트레이닝 김연우
교수님의 책자에 나온 말 처럼 어찌 그렇게도 찰지게도 말할까.

아예 수능이나 보러 가지 그래.

그리고 내 입에서 나온 아까보단 나름 논리적인 근거들. 듣다보니
나름 그렇다고도 생각한 경찰은 간단한 상황판단이 끝났는지 경찰
서로 향하자고 했는데.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한 젊은 청년이
었다.

이 청년이 내가 성추행범이 아니라는 증거사진이 있다길래.
보여줬다. 경찰은 그 사진을 보더니 바로 납득했다. 왜냐하면
아저씨의 손이 여인의 엉덩이에 간 것을 정확히 찍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보며 정말 부뚜막에 올라앉은 아기소처럼 엉덩이가
달아 오른 내 엉덩이를 찰지게 때려준 그 청년에게 정말 감사하단
전했다.

네명과 한명의 경찰은 서로 향했고 나는 무죄로 다행히 진술서만
작성하고 나올 수 있었다. 여자는 끝끝내 나에게 미안하단말을
한 마디도, 죄송하다는 말을 한 마디도 안했고 중년 아저씨가
성추행범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남자는 다 그래'로 시작해서
온갖 수식어가 전세계의 온갖 언어의 마술사들의 뺨을 초속
5m로 후려 갈길정도로 갈겨됬고.

나는 그 모습에 아무런 연민의 감정도 느끼지 못했고 여인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꺼지라는 욕만 엄청들었고 경찰서인 김에
고소 한다고 으름장을 늘어놓았으나 한 인상 좋아보이는
경찰이 말려서 겨우 참고 나왔다.

정말 재수없는 하루였었다. 나의 무죄를 알린 그 청년은 나와
같이 중년 아저씨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고 셀카 찍는 도중에
뭔가 불온한 낌새를 느껴서 찍었다고 한다.

정말 그 청년에게 감사의 말을 표한다. 전화번호는 알아두었다.
다음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말이야.

그 청년 참 잘생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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