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악몽같았던 3장도 끝이네요.^^
다음장 부턴 본격적인 공략이 시작됩니다.
못보신분을 위한 링크
프롤로그
제1장 심계천하 上
제1장 심계천하 下
제2장 김칫국 上
제2장 김칫국 下
제3장 악몽 1
제3장 악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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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들 아이가. 자기편을 죽이노.”
개울가 상류. 수풀 속에서 아이들과 울이는 징검다리 쪽에서 왜놈들의 내분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잔혹한 장면들이 계속됐다.
“울이야. 이제 우얄끼고?”
왜적을 물리쳤다는 기쁨도 잠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어른들의 세계에 아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울이 또한 자신이 맞춘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니 가슴 한쪽이 세차게 요동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울이도 아이니까.
“탕. 피슉.”
별안간 번개 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빠르게 아이들이 숨어 있는 수풀 사이의 바위에 튀겼다.
“옴마야. 이게 뭔 지랄이고.”
“으앙. 내는 무섭데이.”
아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울이의 상황판단이 끝나기도 전에 하나가 대오를 벗어나더니, 겁이 난 이들이 무질서하게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울이는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복기하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큰소리가 있고서 무언가 빠르게 날아와 바위에 박혔다. 그리고 뭐지. 그래 냄새. 화약 냄새가 나.’
놀란 개구리 마냥 잔뜩 엎드려 있던 자세를 풀어 울이가 아래를 살펴보았다. 흰 연기가 자욱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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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이놈들 봐라. 그랬단 말이지.”
사부로는 차고 있던 도우란(화약 따위를 보관하는 작은 가방)에서 하이고우(미리 한 발분의 화약과 탄환을 종이나 대나무 재질의 통에 장전해 놓은 것.)를 꺼내 자신의 텟보에 장전하기 시작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이. 시로 봤지? 내 텟보에 놀라서 달아나는 놈들의 모습을. 고얀 놈들. 애새끼들이 감히 우릴 농락하다니...”
“사부로형. 내가 저것들을 당장 요절을 내줄 거야. 애들이라고 봐주지 않을 거야. 참. 아이들을 저딴 식으로 교육한 네년의 잘못이 크다.”
시로는 잠시 혼절해 있던 아녀자를 뺨을 때려 깨웠다. 그녀는 더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자. 이제. 즐거운 훈육의 시간을 가져 볼까. 시로. 포로를 세워 칼로 위협하고 있어라. 이게 있는 한 이제는 저놈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부로는 텟포에 달려있던 짧은 카루카(화승총에 탄환을 총구에 넣은 뒤 탄약을 장전하기 위한 막대)로 화약을 다지며 시로에게 말했다. 그런 그의 얼굴엔 미소와 자신감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싫어. 나도 재미 좀 볼래. 이 잡년이랑 보초서는 건 심심 하단 말이야.”
시로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사부로는 그런 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낮고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로야. 네 허파에 바람구멍 나고 싶지 않으면, 내 말대로 해라. 난 한입에 두말 안 한다.”
“히익.”
시로는 한쪽 손을 들어 항복의 의사표시를 보냈다. 그런 그를 보며 사부로는 앓던 이가 빠지는 듯한 쾌감을 얻었다. 그리고선 바위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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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고 있어.’
아래쪽 바위 무덤에서 왜적 하나가 느릿느릿 상류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울이가 있던 방향이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를 인질로 삼고는 겁박하고 있는 형태였다. 울이는 좌우를 돌아보았으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놈이 가진 게 아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낸 물건이군. 아버지가 일전에 말해주신 화포 같은 것일까? 화포라 하기엔 너무 작은데…….’
울이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궁리하는 사이 정체불명의 물건을 든 사내는 점점 자신이 있는 곳으로 근접하고 있었다.
‘저자가 더 오기 전에 빨리 묘책을 생각해 내어야 해. 가까이 오면 돌팔매로 가격할 기회가 줄어드니. 그런데 어머니가 저기 있으니 어쩌지.’
그때였다. 울이 눈에 어머니를 잡고 있던 병사가 휘청하는 것이 보였다. 뒤에서 어떤 자가 몽둥이로 왜병의 어깨를 내리친 것이다. 울이가 자세히 보니 작은 키에 큰 덩치를 가진 사내아이였다. 그랬다. 분명 덕배였다. 울이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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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애송이. 네 동료 때문에 널 찾는 수고를 덜었군.”
사부로는 흰 무명옷을 입은 작은 아이에게 총구를 겨냥하며 비웃었다. 아래에선 시로와 어린 사내아이가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다부진 체격을 지닌 아이였으나, 아이는 아이일 뿐. 그는 시로가 낙승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은 자신의 사냥감에 집중하고 싶은 사부로 이었다.
“후후. 이 사부로님의 다네가시마 오오쓰스에 첫 희생양이 된 것을 축하한다. 꼬맹아”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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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이는 조그만 구멍에서 불꽃과 함께 하얀 연기가 나오자 순간 눈을 감아버렸다. 큰소리가 지나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자리에서 한자 벗어난 자리가 패인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짧고 작은 화포를 쓴 자를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가방에서 떨리는 손으로 비껴 맨 작은 가방에서 이것저것을 주섬주섬 꺼내다 놓쳐 버렸다.
이후 사내는 화가 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는 화포를 던져버리고 허리춤에서 왜검을 뽑고는 울이가 있는 쪽으로 돌격하기 시작했다. 울이는 힘껏 주위에 있던 돌을 던졌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퍽”
그 순간. 울이에게 달리던 왜병이 나자빠졌다. 왜적은 오른쪽 어깨를 감싸며 뒹굴기 시작했다. 울이가 보니 덕배가 던진 돌이 놈에게 맞은 것이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덕배는 몽둥이 하나를 꼬나물고는 왜인과 울이가 있는 쪽을 향해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덕배야! 조심해!”
순간. 왜병이 지니고 있던 단도를 덕배에게 던졌다. 덕배는 아무 소리 없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왜구는 그 틈을 노려 넘어질 때 흘린 칼을 주우려 했으나, 이미 그 칼은 울이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그는 우측 어깨를 감싸 안으며 침을 뱉고는 동구 밖 쪽으로 달아났다.
“덕배야. 정신 차려. 응? 덕배야”
울이는 덕배에게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아래쪽 싸움의 여파로 그의 몸은 베인 상처가 가득 했고, 단도가 박힌 배에서는 검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울아. 끄윽. 미안하…….데이……. 어무이를……. 구하지…….”
덕배는 힘겹게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입속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울이가 그의 말을 듣고 아래를 살펴보니 갑옷을 차려 입은 사내 하나와 무명저고리의 여인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울이의 눈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덕배야. 고마워. 넌 최선을 다한 거야. 그러니. 정신 차려. 응?”
붉어진 눈시울을 참으며 울이는 덕배를 불렀다. 피로 물든 그의 손이 울이의 손을 잡았다.
“울…….아……. 염치……. 없지만……. 울……. 어무이를……. 컥.”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덕배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으아아! 덕배야!”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점점 핏빛에 가까운 것이 울이의 양 뺨을 물들이고 있었다. 벌게진 눈을 훔치며 울이는 통곡했다. 그리고 덕배의 배에 꽂힌 단도를 뽑았다. 순간 그의 뜨거웠던 피가 울이의 몸에 뿌려졌다. 아까와 다른 낮은 목소리가 그의 시신주위에 울렸다.
“죽인다.”
울이는 단도와 왜검을 집고는 마을 어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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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사카이 상인 새끼. 뭐가 타네가시마야. 휴대하기 간편하지만 오오쓰스같은 힘을 낸다고 하더니만 속았군. 쳇.”
1543년 타네가시마에 표류한 포르투갈 상인이 화승총을 전래해준 이후(전래에 대한 이설이 존재함.) 타네가시마는 일본 텟포의 명산지 중 하나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한편 조총에도 등급이 있었으니, 소통(코쓰스), 중통(나가쓰스), 대통(오오쓰스)로 구분하였다. 구분의 기준은 탄환의 무게로 1문(몬메)당 3.75g였다. 코쓰스가 1∼20몬메(70g), 나가쓰스가 20∼30몬메(112.5g), 가장 큰 오오쓰스는 30∼200몬메(750g)까지 나갔다.
그럼 사부로가 산 텟보의 종류는 무엇일까? 사실 위의 구분과 달리 초심자용으로 만든 세통(호소쓰스)이라는 물건이 있었다. 위의 것보다 구경이 작고 탄자의 무게가 가벼운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부로가 가진 텟보는 길이가 짧은 단통(단쓰스 34∼50cm)이였으니, 텟보 초급자인 그의 실력과 더불어 명중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텟보는 타네가시마에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사부로는 텟보와 총을 판 상인에 대해 험담을 하며 마을 어귀로 달려나갔다. 이대로 이 곳을 벗어나 본대와 합류하면 이깟 꼬맹이들이 설치는 마을 정도는 지도상에서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희망은 아직 그의 편이라 생각하며 그는 가열하게 발걸음을 떼었다.
“헉. 이게 뭐야.”
막상 도착한 동구 밖은 시신들이 널브러진 처참한 모습이었다. 원래 대기하던 병사 다섯과 그리고…….
“이치로…….상?”
자신을 배신하고 먼저 마을 입구로 달아난 이치로 상이 피를 흘린 체 쓰러져 있었다. 날카로운 칼로 심장에 일격을 당한 듯 가슴 한편에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매복인가? 상처를 보면 동리에 있던 꼬마들의 짓이 아니야. 이건 전문가의 솜씨야.’
그때였다. 당산나무 주위에서 한 무리의 군사가 순식간에 사부로를 포위했다. 순간 사부로의 굳어졌던 인상이 펴지기 시작했다.
“하하. 반갑습니다. 어느 군 소속이신지? 기요마사공의 군대입니까? 하여간 이리 보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가토 기요마사군의 아시가루 사부로입니다.”
사부로의 눈에 보이는 병사들은 하나같이 갑옷을 챙겨 입은 일본군이었다. 그중 텟포를 든 자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아 텟보 아시가루부대인 것으로 보였다. 그중 갑주를 걸치지 않고 텟포도 없이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그에게 말했다.
“혼자인가?”
“네. 정찰을 왔다가. 적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저만 살아남아 본대에 보고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을을 탈출하는 중이었습니다.”
“단신으로 도주라…….”
중년의 사내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사부로에게 견주었다. 사부로는 일순 살기를 느꼈다.
“왜……. 이러십니까? 왜…….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여기 있던 자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하나같이 정교한 자상으로 죽어……. 당신들이 한 겁니까? 주군과 타이코전하를 배신한 거냐? 이 역적들아!”
“자. 이제 지옥에 가서 동료들이랑 합류할 시간이 됐군.”
그때였다.
“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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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이가 단도를 던졌다. 어머니와 덕배를 죽인 원수의 왼쪽 뒤꿈치에 칼이 박혔다. 왜적은 땅바닥에 넘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울이는 달음질을 해서 넘어진 그놈의 허리에 손에 쥐고 있던 칼을 그었다. 놈이 비명을 질렀다. 울이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자의 몸에 생채기를 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울이가 정신을 차려보니 십 수 명의 왜병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허나 누구 하나도 울이를 건드리는 자는 없이 잠자코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흑의를 입은 사내가 다가왔다.
“모. 야매로. 카레데 수메니 신데이루.”
알아들을 수 없는 왜어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울이는 검을 휘둘러 그자를 쫓아내려 했다.
“어이. 시카이시로. 와따시와 아나타노 코토데와 나이!”
사내의 말에 적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모친과 동무를 잃은 울이에게 그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울이는 칼끝을 사내에게 겨누었다.
“야레 야레. 사야카다이죠. 고노꼬와 도노요리 쇼리 스루가나?”
“마즈, 진세이 카라 사세마쇼. 리유와 츠키노…….”
흑의를 입은 사내가 뒤편에 화려한 갑옷을 입은 청년과 대화를 나누더니 울이 앞으로 오기 시작했다. 울이는 칼을 휘둘러 그자를 베려고 했으나 사내는 여유롭게 피하며 둘 사이의 간격을 좁혀 나갔다.
잠시 후.
“타타카 고멘.”
“퍽”
뒷목에 전해지는 강한 충격과 함께 울이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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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 헉헉…….”
울이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또 같은 꿈이었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제처럼 생생했다. 이마의 땀을 훔치며 옆에 둔 자리끼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흠. 어험. 울이 기침했느냐?”
창호문 밖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울이는 서둘러 몸을 단정히 하고 침구류를 정리한 뒤 외쳤다.
“네. 대장님 일어났습니다. 지금 나가겠습니다.”
“아니다. 내 좀 들어가마.”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울이는 그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사내가 말문을 열었다.
“내 너를 이리 찾은 것은 곧 한양을 떠나야 할 듯해서다.”
“어디로 가시는지요?”
“동남쪽으로 길을 잡을 것이다. 산이가 있는 곳으로 결정이 난 듯하다.”
울이는 그의 입에서 ‘산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자, 찰나의 순간에 안면의 변화가 일어났다. 사내는 그런 울이의 변화는 신경 쓰지 않는지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돌아가는 형세를 보니, 잘만하면 이번 한 번의 싸움으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그건 그렇고. 내려가기 전에 한양의 처자식이나 보고 가야지…….”
말을 마치며 사내의 흐려지는 눈빛을 울이는 놓치지 않았다. 울이는 평소보다 씩씩하게 그에게 대답했다.
“그럼 저도 대장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다. 넌 김 첨지와 같이 오너라. 그가 너에게 줄 것이 있다 하니…….”
“사부님께서요?”
“그래”
잠시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흑의의 사내였다.
“아직도. 그 꿈을 꾸느냐?”
“아……. 아닙니다. 그게…….”
“됐다. 내가 괜한 것을 물어보았구나. 며칠 후 남쪽에서 보자꾸나. 나 이제 가마. 추운데 안에 있거라.”
나오지 말라는 사내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울이는 사립문까지 나와 그를 배웅했다. 그가 울이의 시선에서 멀어질 때까지.
‘이제. 다시 돌아가는 거야.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