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시골 할아버지 시골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 꼬맹이들 등등 그리고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
지금이야 길고양이라고 부르지만 그때는 도둑괭이, 개라고 부르지만 나 어렸을 땐 가히새끼, 강생이로 부르던 때였다 물론 나이 지긋하신 노인분들이 그랬다. 걸음마를 떼고 글자를 익히고 나서 책을 읽을 줄 알게 되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나서야 괭이가 고양이라는 것, 가히는 개의 오래된 말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말 그대로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바닷가 갯벌에 마실가는 할머니 등에 업혀 손가락을 쭉쭉 빨고 있으면 집에서 키우던 똥개 누렁이가 좋다고 막 빙글빙글 오두방정을 떨며 할머니 치마에 흙을 묻혀 할머니가 썩을놈의 가히새끼 하며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물론 누렁이는 절대 발길에 차인 적이 없었다.
산에 지게를 매고 떨어져 쌓인 솔잎 낙엽들을 모아 아궁이에 태울 땔감을 찾으러 할아버지가 길을 나서면 나는 지게에 달린 새끼줄을 잡고 갈퀴를 들고 따라갔다. 산더미같은 땔감이랑, 눈먼 갈퀴질에 운이 나빠 걸린 두더지는 뱃가죽에 구멍이 나 살 가망이 없어서 누렁이 간식으로 줬다. 누렁이는 어느날 아침에 사라졌는데, 그날 오후 할아버지가 캠핑때 쓰는 코펠 냄비 안에 담아 가지고 왔다. 그날 저녁에 가족들은 누렁이를 먹었고, 나는 절대 집에서 키우던 동물은 먹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개고기 식감은 별로였다.
옆집 할머니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할망구였다 왜 할망구였냐면, 시골 땅에 지은 집들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을 빌미삼아 우리집 앞마당에 놓은물건을 은근슬쩍 훔쳐다 자기네 창고에 숨겨놓는 뻔뻔한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좋은 우리 할아버지는 허허 하시며 눈감아 주셨다. 도둑고양이가 우리집 창고에 눌러앉아 새끼를 일곱마리나 낳았을때도 할아버지는 모르는 척 관심없는 척 할머니 몰래 개사료랑 고깃국을 어미고양이에게 먹였다.
도둑고양이는 우리집 고양이가 되어서 새끼를 다섯 번 낳았다. 첫번째는 일곱마리 두번째는 다섯마리, 그 뒤에는 기억이 안 난다. 어느날 태풍이 왔는데 물이 불어나 개집이 물에 잠기면서 고양이집도 물에 잠겼는데, 그 뒤에 한동안 안 보이다가 우리집 앞마당에 있던 풀을 뜯어먹는 걸 봤다. 배가 물풍선마냥 볼록했는데 마지막으로 낳은 새끼들 중에 누런 자기 옷 색이랑은 다른 꺼먼 걸 낳아서 그놈이 다 클때까지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어느날 집앞 밭에서 쥐약을 먹고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꺼먼놈은 다시 도둑고양이가 되어서 씨를 뿌리고 다녔다.
옆집 할머니네 옆집엔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많이 늙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얼마나 늙었냐면, 나는 정신없이 막 뛰어다니며 놀다가도 많이 늙은 할아버지 앞에선 조심조심 걸어다녔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빨리빨리 뛰어다니다가 그냥 넘어지기만 해도 할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안이 젤리로 가득 찬 물에 젖은 종이 인형 같았다. 많이 늙은 할아버지 옆에는 파수꾼처럼 개가 늘 곁을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고 가장 많이 보고싶어하는 바둑이를 낳아준 엄마개였다. 할아버지네 엄마개는 새끼를 여럿 낳았는데 그중 두마리는 그집 아저씨네 자동차에 치여 죽었고 한마리는 우리집에 왔고, 나머지 개들은 잘키워서 복날에 그집 아줌마가 잡았다.
우리집 바둑이가 그 뱃속에서 같이 난 새끼들 중에선 가장 오래 살았고, 나와 가장 오래 있었다. 그리고 바둑이도 지 엄마처럼 새끼들을 여러 마리 낳았고, 엄마 고양이처럼 어느날 뭔가를 잘못 먹는 바람에 헐떡대며 죽었다.
앞발이 하나 없는 개도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개가 물어서 뜯어버렸다고 했다 남은 한 발로 어설프게나마 뛰면서 걸어다녔는데, 내 바람과는 달리 오래 살지는 못 했다. 도시에서 놀러온 자전거에 개를 매달고 같이 산책하던 헬맷을 쓴 아저씨가 아이고 어떡하나 하면서 돈을 쥐어주었다. 앞발없는 개가 큰개에게 물려 죽은 것도 슬펐지만 큰 개가 몸부림치며 급발진하는 바람에 자전거랑 같이 바닥에 질질 끌려 온 아저씨도 만만찮게 슬퍼보였다.
개들은 사람보다 빨리 크고 빨리 죽었다 그래서 바둑이의 손자 손녀 뻘 되는 강아지가 살아생전의 바둑이처럼 몸에 반점 하나만 달고 돌아다니는 걸 봤을 때 남의 집 개였음에도 불구하고 반가워했던것 같다. 한가지 아쉬웠던건 걔네들이 할미처럼 영리하진 못했다는 거다. 마을 외곽을 지나는 도로를 가끔 덤프트럭이 줄을 지어 질주하곤 했는데, 마침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던 주인을 마중나왔다가 덤프트럭 바퀴를 보고 흥분해서 달려들던 개는 그대로 바퀴에 깔려 죽었다. 개 주인이었던 아줌마와 아줌마 아들은 쌍욕을 하며 비명을 질렀고 바로 앞에 있던 주유소 아줌마가 비닐을 가져와 으깨진 바둑이 3세를 담아 아주머니에게 줬다. 그 집 식탁에 올라갔을까? 아니면 마당 한 켠에 묻었을까?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내 집이 생기면, 혹은 혼자 독립해서 살게 된다면 꼭 고양이나 개를 키울 것이라고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소망해왔다. 그리고 20대 후반이 된 지금은 개나 고양이 대신 동물 털 알러지라는 빌어먹을 것을 키운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