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이 아프거나 불편해 할 때 사심없이 걱정하고 위해주는 이를 찾기란 어려울 진대
여기에 능력과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까지 갖춘 분 밑에서 3년 가까이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어쩌면 내 삶 속에서 가장 축복받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낮아진 자존감과 건강에서 남모를 불편함과 죄스러움을 느껴
퇴사의 의사를 밝혔을 때 그토록 걱정해주시던 분의 갑작스러운 퇴사 소식은
그만큼 나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이유는 확실하게 밝히지 않으셨지만, 이 회사에서 자신이 바라는 일을 펼칠 수 없었기에
쌓아두고 있었던 화가 터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하며 지난 날의 나의 행동을 스스로 후회할 뿐이다.
이런 후회를 품자 이제까지의 나날들이 새롭게 보이더라.
20명 남짓한 조그만 회사에서 가장 닮고 싶었고, 인정 받고 싶었던 분이었기에
회사 일에 노력을 해왔고, 자신의 실력에 자책하였고, 게을러졌을 땐 그 분의 눈치를 보았던 건
내가 나를 위해 일한게 아닌, 그 분을 위해 일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고민을 풀어줄 좋은 직장동료들은 이미 한 발 먼저 나갔다.
그들의 퇴사에 직장상사와 나는 동일한 상실의 아픔을 공유했지만, 이제는 나 혼자 뿐이다.
친한 친구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나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기에,
적당한 지인들은 그러한 나를 한심하게 여길 것이 분명하기에,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는 무게를 이곳에 내려놓고 간다.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기에 빠르게 달려갔다고 자만했지만,
결국 제자리만 돌고 있었다는 무력함이 다시끔 나를 자각시켜 주는 것 같아,
처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