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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전이란 것이 철갑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화력전으로...
게시물ID : history_175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알라트리스테
추천 : 6
조회수 : 926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4/08/04 00:15:08
승부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고대 해전은 대부분 배를 가지고 부딪혀서 싸우는 전투였습니다.
그렇기에 지중해 같은 곳에서는 얕고 긴 갤리선 계열으로 충각을 시도하는 전법이 발달한 것이고요.
충각을 시도해서 배를 파손시키거나, 적의 수를 줄이고, 그 다음은 근접전으로 간다. 이것이 기본적인 전술이었습니다.
 
그런데 화약이 발견되자 해전의 모습도 달라지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함포가 생겼다고 멀리서 쾅쾅, 이런 형태의 전투는 초반에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갤리선->범선으로 주 트렌드가 변했으므로 충각 전법은 보이지 않게 됐지만
적의 함선으로 접근해서 근접전으로 유도하는 전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당시의 함포라는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투사하는 쇳덩어리는 폭발하는것이 아니라 무게로 박히는 형식이었고 이것으로 적의 함선을 침몰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히 정확한 타격을 필요로 했는데
아직 함포가 그렇게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게다가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상대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함포를 가지고서도 최대한 상대방에게 접근해서, 일제사격을 벌이는 형식의 전투가 자주 일어났고 이 와중에서 근접전도 벌어지게 된 겁니다.
 
이런 모습의 전투는 이제 철갑선->드레드노트로 표현되는 거함거포주의가 점점 발달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순신 장군의 전법은 상당히 시대를 앞서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거리에서의 정확한 일제사격으로 화력집중으로 상대 함선의 궤멸. 이에 대응하는 일본군은 여전히 전국시대의 영향으로 근접전을 선호했습니다. 게다가 일본군의 배는 근접전을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크기와 강도에서부터 불리했고, 이는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상승효과를 일으켜 기적적인 전투 교환비를 만들어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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