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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은 절대소수가 절대다수와 싸워 이긴 전투이고, 일반 백성이나 다를 바 없던 조선수군이 정예 왜 수군과 싸워 이긴 전투이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이겨놓고 전투를 벌이는 스타일의 전투를 벌였으며, 충동적이라기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철저히 그 상황을 이용해 승리를 거뒀다는 데 위대함이 있다. 그런 점에서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의 아래 사항들은 말이 되지 않는다.
<스포주의!!!>
1. 이순신의 백병전
소수의 배가 다수의 배를 상대하면서, 더군다가 거의 훈련되지 않은 수군으로 이순신 장군이 원래 거의 벌이지 않던 백병전을 벌였다? 도박에 가까운 확률에 모든 것을 걸고?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고 물리칠 때의 기본은 기세 싸움이다. 일시라도 기세에 밀리면 그 즉시 수세에 몰려 패하게 되어있고, 명량해전은 우세한 기세로 소수가 몰아붙이자 다수가 지레 겁먹고 도망치다가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전투 스타일을 볼때 근접전은 있을 수 있어도 백병전 상황으로 몰아가 확률을 절대적으로 낮추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해적 출신인 적에게 백병전으로 맞서는 것은 위험하며, 피해자가 2명으로 기록된 명량해전에서 백병전을 벌였다면 조선 수군은 소드 마스터들이었다는 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2. 구경하는 양측 군대
대장선이 당하는 걸 지켜보면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 있다가 이길 것 같으니 그 때야 나서는 조선 수군이나 이순신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내분으로 가만히 보다가 패전의 기색이 짙어지니 조금 싸우다가 도망치는 왜군은 모두 전혀 공감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영화의 반을 차지하는 이 상황은, 영화를 끝까지 지루하게 만들었다.
3. 럭키가이 이순신?
명량해전은 삼국지에 그려지는 장료의 합비 전투처럼 소수의 결사대가 다수에 맞서 기세를 보임으로써 상대를 당황시켜 일순 격퇴한 전투이다. 이 전투는 개별적인 상황이 아닌 전략적인 그림을 봐야 하며, 후에 있을 본 전투에 앞서 예봉으로서 적의 기세를 꺾고 조선수군이 숨을 돌릴 시간을 만들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물론 다수의 적을 상대해 많은 적을 물리친 결과도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이 우수한 것은 조선의 강함과 일본의 약한 부분을 명확히 뚫어보고 그에 맞춰 이기는 전투를 준비했으며 결국 이겼다는 데 위대함이 있다. 단순히 객기로 싸우다 운 좋게 이긴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길 가능성이 질 가능성에 비해 어느 정도 크다는 것은 예측한 전투였을 것이다. 이걸 단순히 하늘이 도운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을 오히려 낮추는 것 밖에 안 된다.
4. 무모한 당파전술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당파전술은 다 이긴 싸움을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무모한 전술이다. 해전에서 우수한 장비를 가진 소수의 배가 다수의 배를 상대하는 데 백병전이나 당파전술로 상대하겠다는 건 너무나 무모한 전술이다. 근접하여 화력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화력을 앞세워야하며 다수의 배가 진을 치고 충격력을 막으면 오히려 역공을 당할 전술이다.
그 밖에도 배설의 시해 시도나 조총의 M-16화, 준사의 신출귀몰과 임준영이라는 억지 감동 코드의 등장, 권율과의 지나친 대립 등, 여러모로 영화는 극적인 요소가 덧대어져 오히려 명량해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매력을 훼손하고 있다. 명량해전은 결사의지의 절대 소수가 자신의 강점과 자연적 이점, 적의 약점 등을 치밀하게 계산해 최대한의 승률로 싸워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승리한 전투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수군의 우세로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당황한 적이 지레 패한 전투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양상으로 치뤄진 전투는 역사 속에 무수히 존재하며, 이들의 공통점은 짧고 굵게 밀어붙여 오히려 소수가 최소한의 피해로 승리했다는 것이다. 다만 해전에서는 명량해전이 독보적인 존재이며, 이는 이순신 장군의 치밀함과 상징성, 그리고 조선 수군의 강력한 장비 등에 비롯한 것이지, 이를 객기를 부리며 싸운 결과 하늘이 도와 운 좋게 이긴 것으로 본다면 영화 후반부의 어느 노군의 대사처럼 몰라주는 호로후손이 되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