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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허접역사소설 - 도산성의 겨울(제3장 악몽 2)
게시물ID : history_174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앗카링카앗
추천 : 4
조회수 : 38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7/31 11: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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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스트금지
오늘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못 보신분을 위한 링크
 
프롤로그
http://todayhumor.com/?history_17262
제1장 심계천하 上
http://todayhumor.com/?history_17277
제1장 심계천하 下
http://todayhumor.com/?history_17303
제2장 김칫국 上
http://todayhumor.com/?history_17337
제2장 김칫국 下
http://todayhumor.com/?history_17363
제3장 악몽 1
http://todayhumor.com/?history_17420
 
 
“칙쇼. 칙쇼! 이치로 형. 고로상이 죽었어. 칼도 아니고 화살도 아니고 돌멩이 따위에 맞아 죽었다고!”
 
“진정해. 시로. 잇키(의병)놈들의 기습 같다. 조선 놈들은 투탄대(돌팔매)놀이를 즐긴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투석하는 놈들 중에 투탄대를 쓰는 숙련자가 있다.”
 
이치로는 가빴던 숨을 고르며 시로를 진정시켰다. 투탄대를 쓰는 잇키. 생각지 못한 전투에 이치로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혼란의 전국시대에 태어나 생과 사가 순식간에 갈리는 전장에서 반평생을 바친 그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노련한 아사가루 이치로를 두렵게 만든 돌팔매질 놀이. 이른바 석전은 말 그대로 상대방 측에게 돌을 던져 승패를 겨루는 경기로 그 유래는 삼국시대로까지 올라간다. 이후에도 석전의 관습은 조선조는 물론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이후까지 이어진다. 석전이 계속해서 그 명맥을 이은 이유는 일종의 군사훈련을 겸한 놀이였기 때문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석척군 이라는 투석 병과가 있었고, 조선 초기 김종서 장군이 쓴 병법서인 「제승방략」에 따르면 조선군은 어린 시절부터 연례적인 석전 행사를 통해 기골이 튼튼하고 완력이 좋은 장정들을 유사시에 동원하였다고 한다. 특히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에서도 조선군의 투석이 왜군들을 물리치는 데 일조하였다 한다.
시합으로써 석전 또한 큰 인기가 있었는데, 조선 태조와 태종 그리고 양녕대군 등이 관전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세종 또한 석전을 즐겨 감상하였으나, 사상자가 속출하자 이를 금하기도 하였다.
또한, 석전은 주로 마을 단위로 정월 대보름이나 단오 같은 명절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며 행해지기도 했으며, 심지어 촌락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를 석전으로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석전은 한반도에서 신분의 귀천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전 국민적 오락이자 전술훈련 같은 것이었다.
 
“이치로상. 어떻게 할 겁니까?”
 
사념에 잠겨있는 그에게 지로가 물었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이치로는 동료들을 모이게 했다.
 
“잘 들어라. 우린 정찰 중이라 원거리를 제압할 무기가 없다. 짧은 칼들만 있을 뿐. 그러니 저놈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엔 쉽지 않다. 허나 투석하는 잇키들 또한 고수는 단 한 명이고 나머지는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허수일 뿐이다. 그러니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엄폐한 뒤 마을을 신속히 빠져나간다.”
 
“이치로상. 그러지 말고 이걸 씁시다. 이거 한방이면 저놈들 벌벌 떨며 꽁무니를 뺄 거요.”
흥분한 사부로가 입을 열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가슴팍에 가져댔다.
 
“안 돼. 사부로. 그랬다가 마을 어귀에 있는 잡어 같은 촌놈들이 분별없이 뛰어들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들게 된다.”
 
“쳇. 그럼 이년들은 어떻게 할 거요?”
 
사부로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포승에 묶인 여인들이 이치로 일행 옆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잇키놈들 에게 준다. 놈들이 부녀자들을 구하는 동안 최대한 빨리 동구 밖에 있는 잡졸들과 합류한다.”
 
이치로를 제외한 지로, 사부로, 시로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애써 잡은 고기를 놓아주는 격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치로는 그런 그들에게 한마디 더 붙였다.
 
“적지에서 비명행사하기 싫으면 내 말대로 해라. 그리고 이들 중 하나만 본대로 데려가 정보를 캔다. 음. 그래. 저기 눈 밑에 점이 있는 년이 좋겠다.”
 
결국, 지로 이하 왜병들은 투덜거리며 단도 등을 이용해 포승줄을 끊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치로가 말했다.
 
“그냥 풀어주지 말고, 입에 재갈을 물려라. 우리의 위치를 외칠 수도 있으니. 그리고 저년들의 팔과 다리에 죽지 않을 만큼 생채기를 내라. 피 흘리는 아녀자를 보면 놈들도 외면할 수 없을 거다.”
 
이치로 일행은 여인들의 옷을 찢어 입에 물리고는 칼로 자상을 입혔다. 몸부림치는 여인네들에게서 고통의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자. 준비해라. 내가 신호하면 지로 네가 옆에 있는 년들을 던져라. 저놈들이 잘 볼 수 있는 대로에다가 말이다. 나머지는 눈물점 있는 년을 데리고 마을 어귀 방향으로 튄다. 알겠지?”
 
“알았수다.”
 
“알겠소이다.”
 
“알았어. 형.”
 
잠시 후. 대로변에 사람들이 나왔다. 상황을 살피던 덕배 일행은 그들이 마을의 아주머니들임을 확인하고는 그녀들에게 달려갔다. 울이가 있었다면 함정을 의심해서 신중히 행동했을 테지만 덕배들에게 그런 자제력 따위는 없었다. 다행히도 이치로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잇키가 아이들인지 모르고 퇴각했고, 아이들은 모친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늘이 도운 것이다.
다시 만난 모자는 얼싸안고 울었다. 사내라고 하나 아직은 어린애였다. 덕배 또한 어머니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 순간. 덕배는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뒷마무리를 부탁하고는 다시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울이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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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울이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마을 입구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작은 개울가 징검다리에서 울이는 아이들과 함께 풀숲에 숨어 왜놈 군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이 이들에게는 배수의 진인 셈이었다.
 
“울아. 저기.”
 
같이 있던 사내아이가 울이에게 신호를 했다. 저 멀리서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병영성에 있던 조선군이나 포졸들이 쓰던 벙거지 모양의 전립이 아닌 가마솥 뚜껑처럼 생긴 삼각형의 쇠 삿갓을 쓴 자들이 여인 하나를 끌고 달려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분탕질 친 왜놈들이 분명했다. 숫자는 넷.
 
‘덕배가 저놈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했구나…….’
 
울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마을을 습격한 놈들 중에서 다수가 마을을 빠져나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저들을 다 격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울이의 가슴한구석에서 커져갔다.
 
‘누구네 모친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을 안전을 위해서 후퇴해야 하나?’
 
울이는 심란한 와중에도 다가오는 적과 인질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실눈을 뜨고 전방을 노려봤다. 사물의 형상이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한 정도가 되자, 울이는 인질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눈 밑의 점. 어머니였다.
 
“울아. 저기 잡혀 오는 게…….”
 
“큰소리 내지 마라. 알고 있다. 음…….”
 
옆에 있던 아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울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불안감이 아이들 좌중에 엄습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줘.”
 
울이는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마을로 돌아가서 덕배와 합류해라.”
 
“머라카노? 우리가 놈들의 시선을 잡고는 니가 마무리하기로 안했나?”
 
아이들은 울이의 말에 반발했다.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왔던 동무를 사지에 남겨두고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말대로 해라. 이건 이제 우리 집안의 문제다.”
 
울이는 우는 아이에게서 젖을 떼는 어머니처럼 냉정하지만 단호하게 다시 말했다.
 
“집안은 무신 집안 문제. 누가 니랑 너그 아부지는 우리 동리 사람 아니라 카드나? 우리는 그런 생각 한 번도 한적 음 따.”
 
울이의 아비는 한양에서 내려온 사람이었다. 능글능글한 성격에 힘이 항우장사와 같아 마을의 대소사를 제 일처럼 챙기니 동네에서 어떠한 텃세도 없었다. 게다가 문자와 진법에도 밝아 도읍에서 벼슬하다 낙향한 무관이나 선비라는 말이 마을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돌 정도로 존경받는 인사가 됐다.
아버지는 그런 동리 사람들의 평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을에서 스무 살이 되도록 노처녀였던 어머니 점순이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어 팔자가 드셀꺼라는 관상 때문에 누구도 꺼리던 색시였다. 부친은 오히려 그 점이 너무나 매력적이라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하여간 어쩌면 천생연분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가 울이었다. 어미는 혹시 울이의 눈가에도 점이 있을까 노심초사하였으나, 아비는 울이의 눈에 점이 없어서 서운한 눈치였다. 그래도 두 사람은 삼신할매가 점지해준 아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비는 울이에게 진서와 예법을 엄격히 훈육했고, 그 영향으로 울이는 지금까지 사투리를 쓰지 않고 한양말을 썼던 것이다.
 
“그래도…….”
 
울이가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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