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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4.고조선의 시작과 끝(ver 0.1)
게시물ID : history_174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량수
추천 : 17
조회수 : 1674회
댓글수 : 101개
등록시간 : 2014/07/29 00:22:35

고조선입니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고 쓸데없이 신경쓸 것이 많은 시기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한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끝내고 있습니다. 교과과정의 변화 때문이라 어쩔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이 글은 고등학생들의 시험을 위한 글이 아니니 좀 길게 써보도록 하죠.



고조선이란 단어 먼저 설명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고조선은 그 단어 자체로 부르는 이름이 아닙니다. 그저 나중에 나올 이성계가 세운 조선이란 나라와 구분지어서 이야기해야 되다보니 조선을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옛날 조선 혹은 오래된 조선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죠.


앞서 청동기와 철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지배자가 나오게 되었는지 이야기 했었습니다. 곳곳의 지배자들은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과 전쟁을 벌이거나 타협을 통해 덩치가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생긴 무리의 대장을 군장이라고 부릅니다. 보통 고대 국가 바로 전 단계를 군장 국가라고 부르게 되는데, 고조선도 그런 군장 국가의 형태를 거쳐 국가가 되었습니다.



고조선은 흔히 알려진대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진 것일까요? 그건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청동기 유물의 출토 시기를 생각해 볼 때 실질적으로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나온 자료로써 가장 오래 된 기록은 삼국유사입니다. 민간에서 떠돌던 이야기를 모아서 일연스님이 만든 책이지요. 삼국유사는 고려 말인 1281년에 만들어진 책입니다. 이후 이승휴의 제왕운기, 조선초기 권람의 응제시주, 세종실록 지리지 등에도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가 니다.



일단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고조선 건국 신화를 보도록 하죠.


옛날에 환인의 아들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갈구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니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라 불렀다. ... 그는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등 인간의 여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 살았는데, 늘 환웅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 곰은 약속한지 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지키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 환웅은 여자가 된 곰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고, 그를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 단군은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 삼국유사 - 


모든 역사적으로 오래 된 신화들이 그렇지만 모두 진실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신화가 만들어졌을 배경이나 각종 상황들을 유추해 신화에 가려진 진짜 역사를 바라 볼 뿐이지요. 중국에서 전해지는 역사서라고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무조건 기록을 사실로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황(유적,사료)들과 비교한 후에 신뢰도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역사로 인정받게 됩니다.


고조선을 이야기하면 꼭 나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8조법이지요.


백성들에게 금하는 법 8조가 있었다. 그것은 대게 사람을 죽인 자는 죽시 죽이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는다.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용서받고자 하는 자는 한 사람마다 50만 전을 내야 한다. 비록 용서를 받아 보통 백성이 되어도 풍속에 역시 부끄럽게 여겨 혼인을 하고자 해도 짝을 구할 수 없다. 이러해서 백성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 대문을 닫고 사는 일이 없었다. 여자는 모두 정숙하여 음란하고 편벽된 짓을 하지 않았다. 농민들은 대나무 그릇에 음식을 먹고, 도시에서는 중국 군현의 관리나 장사꾼들을 본받아서 술잔 같은 그릇에서 음식을 먹는다.


- 한서, 지리지 -


이런 자료등을 통해서 최대한 해당 시기에 대해 있었을 법한 것을 유추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위에 기록된 이야기를 모두 진실로 믿을 수는 없지만 당시의 시대상과 풍속 등을 유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고조선에 대해 남겨진 가장 오래된 기록은 무엇이고 왜 고조선이 존재 했다고 믿는 것일까요? 그 기록은 중국에서 씌여진 삼국지의 동이전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3세기쯤 쓰여진 책인 삼국지에 고조선 뿐만 아니라 고구려, 부여, 옥저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좀 더 뒤에 만들어진 사기나 후한서를 통해서도 고조선의 존재 여부와 고조선의 일화 등을 일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고조선 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고조선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시기에 나온 각종 청동기 유물과 고인돌 등은 고조선이 한반도에 걸친 지역에 있었을 것이라고 유추합니다.


이런 이유로 앞서 청동기 시기에 살펴봤던 비파형 동검이나 후에 변형되었다는 세형 동검 그리고 민무늬토기의 출토지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대략적인 영토를 가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조선의 영향력이 미쳤던 곳이라고 해야 되겠지만요.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대체적으로 중국 만주의 요령지방에 위치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후기 때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중국의 고대 자료들에 의하면 고조선이 기원전 7세기 쯤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비파형동검이 기원전 9세기 것으로 발견되는 점으로 미뤄볼 때 최소 기원전 7세기 이전에는 시작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앞서 고대 국가라고 부르기 전을 군장 국가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조선도 이 과정을 거쳐 고대 국가로 자리잡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질적인 고대 국가의 형태는 청동기 시대 말기에 가까운 기원전 5~4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유추합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내용에 의하면, 고조선에서는 기원전 4세기 이전부터 스스로 왕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당시 중국의 주나라가 실력행사를 하려다가 말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주나라 시절 중국 대륙 쪽에서는 고조선을 제후 국가 중 하나로 취급하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후가 아니라고 선언하니 본때를 보려주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중국 대륙에서 주나라 완전히 유명무실해지는 전국시대에 돌입했고, 고조선과 가장 가까웠던 연나라는 기원전 4세기말 고조선과 전쟁을 벌이면서 영토 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 많은 유물과 기록으로 고대 국가의 형태를 지녔다고 인정 받는 국가들과 영토 전쟁을 벌였다는 것은 고조선이 그들 못지않은 조직과 인원 등을 갖춘 고대 국가였다고 풀이 할 수도 있지요.



중국 대륙은 전국시대를 거쳐 진시황에 의해 진나라로 통일이 되지만 이내 무너지고 혼란을 겪고 나서 한나라에 의한 재통일이 이뤄지지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수 많은 중국 대륙의 사람들이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고조선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그 중 위만이란 사람이 유이민자들 1000여명을 데려왔다고 합니다.


이에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은 위만에게 변경 수비를 맡기게 됩니다. 하지만 위만은 변경에서 스스로 세력을 키우더니 그 여새를 몰아 준왕이 있는 왕검성으로 쳐들어가게 됩니다. 위만은 준왕을 축출하고 스스로 왕에 오릅니다. 이 때부터를 위만조선 혹은 위씨조선이라고 부릅니다.


중국 유민들에 의해 고조선이 무너진 것으로 볼 수 도 있는데요. 많은 학자들이 이 위만도 원래는 고조선인 이었을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왜냐면 그가 고조선에 갔을 때 상투를 틀고 있었고, 조선인의 옷을 입었다는 기록 때문입니다. 또한 준왕이 쉽게 서쪽 변방의 땅을 지키라고 해준 것과 준왕을 몰아낸 후에도 지속적으로 조선이란 국호를 썼다는 사실로 유추 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위만이 준왕을 몰아낼 당시 수 많은 중국 대륙의 유민들이 고조선의 영토로 흘러들어왔고, 그 사람들이 서로 섞여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위만 조선은 그 사실에 대한 상징적인 사건이구요.


위만이 빼앗은 위만조선은 이후 영토를 넓혀가며 꽤 강성해졌다고 합니다. 중국대륙의 한나라와 한반도에 있던 작은 나라들과의 무역을 독점하면서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장했죠.


이런 모습을 보던 한나라의 무제는 고조선이 강력해지는 것과 이들이 언제든지 흉노와 손잡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고조선을 공격하게 됩니다. 기원전 128년에 한 번 쳐들어갔다가 실패하고 기원전 109년 중국 쪽 기록으로는 해군만 해도 약 5만여명이나 되는 군사들을 이끌고 고조선을 공격했다고 합니다. 결국 한나라는 1여년에 걸친 전쟁 끝에 고조선을 무너 뜨렸다고 합니다.


결국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에 무너졌고, 한나라는 그 지역에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현도군의 4군에 군현을 설치해 자신들이 관리하는 영토로 편입시켜버립니다. 그러나 그 지역의 사람들의 반발이 너무 심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기원전 82년에 진번군과 임둔군을 지역 사람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더니 기원전 75년에는 현도군까지 빼앗겨 만주의 홍경까지 물러나게 되고 낙랑군 하나만 남게 됩니다.


후한 말인 313년에 요동지역에 있던 공손씨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옛 고조선 땅 진번에 대방군을 설치했는데, 당시 세력을 키운 고구려에 의해 설치했던 대방군 뿐만 아니라 그나마 지키고 있던 낙랑군까지 무너지면서 고조선의 멸망에 의해 생겼던 한나라 세력들이 완전히 쫒겨나게 됩니다.




이상이 고조선에 대한 요약 및 설명입니다. 


위만조선 말고 기자조선에 관한 기록도 중국의 고대 사료에 등장하지만 신빙성이 높지 않은 기록들이라 기자조선의 이야기는 학계에서는 정설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환단고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학계에서는 조선후기 이후 날조된 위서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재야사학자들이라 하는 무리가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 책은


2010년 검정을 통과한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10년 검정을 통과한 비상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

2002년 제작된 고등학교 국사

1996년 제작된 한국사통론 4판

2004년 제작된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이렇게 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정리하면서 시각적으로 참고 할 수 있는 지도와 사진자료를 넣어야 하지만, 사실상 내용 정리에 가까운 글이기 때문에 생략했다는 점을 이해해 주세요. ㅜㅜ 0.2버전을 제작할 때는 0.1버전에서 달아주신 댓글과 사진자료 등을 첨부해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고등학교 교과서의 틀을 가져다가 쓰기로 했는데 고조선에 대해 상세히 쓰다보니 한국사통론의 내용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음 글은 고구려, 부여, 동예, 옥저 등에 대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세계사와 비교해가면서 적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ㅜ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남겨주세요.


부족하거나 보충해야 되거나 혹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


제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올리고 있습니다. 링크된 글은 위 내용과 똑같습니다.

http://myahiko.tistory.com/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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