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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게시물ID : phil_173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봄코
추천 : 2
조회수 : 77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21/08/01 02:56:19

외국어를 배우면서 느껴지는 ‘단어’ 자체의 감상을 한 여름밤 중에 중2병에 걸려 끄적여 봄.
(중2 비하해서 미안하니, 오로지 내가 중2였을 때의 열병이라고 치자.)

 

1.단어는 생각의 단축키다

 

푸름, 파랑, 녹, 청, 뤼, 칭, 아오이, 미도리, 그린, 블루, 위리디스  

단어는 여러 스펙트럼속에 늘어져 있는 현상을 저마다 한 덩이의 소리로 어렴풋이 묶는다.

우리는, 단어의 징검다리를 통해서, 단축키를 쓰듯 사고를 척척 진척시킨다.

 

 

 

2. 단어는 생각의 한계다.

 

그렇게 우리는, 한 타래의 둥둥 뜬 단어를 딛고, 그렇게 쉽게 현상을 뛰어넘어 버린다.

저마다의 강물의 물줄기가 뒤엉켜 흐르듯한 다양한 현상을 제쳐버린다. 

강렬한 단어의 이미지, 기존 관념에 묶인 단단한 돌덩이리라면 더 그렇다.

돌덩어리를 통해서 생각하지만, 돌덩어리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굳게 멎어버린다.

 

 

3. 단어는 현상에 찍힌 낙인이다.

 

낙인찍힌 단어 한두개 만으로, 무엇을 지레짐작으로 욕하고, 단정시켜버린다.

단어의 맥락, 물결을 읽기에는 시간이 없다.

왜냐면 우리는 재빨리 건너뛰고 싶고,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느림보, 징검다리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느린 사람은 가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4. 단어는 허용된다. 사용된다. 이용된다. 악용된다. 

 

마진을 탐하는 어떤 단어유통상은, 

값싼 수입소고기에 1등급 한우라고 찍고싶은 유혹에 빠진다.  

구별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유통은 급속히 확산된다.

 

경악,공포,존경,복종,환호,열광,인기, 한 단어내의 의미의 중첩을

어원학자처럼 살펴보지도 않았더라도

어떨땐 경악을 하면서도, 어떨땐 단어에 무조건 복종하고 열광한다.

 

 

5. 단어의 낙인을 풀고, 말을 걸어야 한다.

사람에게 한 두 단어의 낙인의 팻말을 걸어서, 

조롱과 비아냥으로 서로를 욕하고, 심지어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알지못하는 사건에 한 두 단어의 낙인을 걸어서,
알지못하는 당사자나 외부자에게 오히려 화살을 돌리기에도 너무 쉽다.  

말을 걸지 않고, 단어를 목에 걸고, 주홍글씨를 새기고, 경멸과, 단죄의 분노어린 환호를 한다. 

현상을 이해하고 풀려고 하지 않고, 현상을 단축하고 건너뛰고 스킵하려고 한다.

 

 

 

6. 단어는 튀어오르고 내리는 물고기처럼 반짝거리는 생명력을 얻어야 한다.


이 현상과 현상의 흐름을 거칠게 몰아세우는 단어를 듣고 말할 때면

가끔은 멈칫할 필요가 있다.  

현상이 정말 그런가? 하면서 가끔은 이해못하고 해석 못하는 부분이 나와야한다. 

이게 이런 이야기인지 아닌지 되묻고 찾으면서, 생각이 반짝거리는 부분에서 많은 순간,

변화하고, 성장한다. 사실은 잘못 짚다가 오히려 퇴보할 지도 모른다.  


시각적으로 비유하자면 강물과 한 몸으로서 반짝이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나마 이 물줄기의 흐름을 담은, 강 비린내를 징검다리가 담고 있음을 맨발로 느껴야 한다.. 

이렇게 건너야만, 조금이나마 아주 약간, 빈소리가 아닌, 현상의 물기어린, 발자취를 , 앞으로 앞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7. 단어에 이용당하지 말고, 단어를 사용해야한다.

아니면 단어는 낙인, 브랜드이미지, 사기꾼의 입발린 혓놀림이 된다. 

경외롭고 달달하고 자극적인 단어의 뭉치가 있는 곳들은, 까딱 잘못 하다가는

세상을사는나같은바보들에게, 현자놀이를시켜주는소꿉놀이터가있다.

 

...

그냥 사회현상을 한 두 단어로 재단하는 짧은 세상이 심심해서 적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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