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못보신분은 아래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프롤로그
제1장 심계천하 上
제1장 심계천하 下
제2장 김칫국 上
-------------------------------------------------------------------------------------------------------------------------
“양 경리께.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수하들의 말에 의하면, 어젯밤에 영의정 류성룡의 집에서 회합이 가졌다 합니다.”
“회합이라……. 그래서 모인 인사들의 면면은?”
“영의정 류성룡과 도원수 권율, 접반사 이덕형 그리고 중추부 첨지부사 김충선이 참여했다 합니다.”
“항왜까지……. 조선군이 남하하여 왜군을 칠 계획이군. 그래. 어떤 대화가 오갔는가?”
“류성룡의 사가에 조선 병사들이 은신하여 물 셀 틈 없이 감시하는 통에 수하들이 내부까지는 침입하지 못했다 합니다. 송구합니다. 대인”
“일국의 재상이 머무는 저택이니 그 정도 경비는 당연한 게지. 뭐.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아. 순천에 있는 행장을 치려고 고집부리는 도원수를 달래는 자리였겠지.”
양호는 갑옷을 입은 무장을 바라보았다. 구릿빛의 큰 얼굴에 검은색 수염과 구레나룻을 기른 험상궂은 인상을 한 청년이었다. 덤으로 다부지고 근육질 있는 체격이 좀 더 불량배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음. 수고했네. 파 유격. 이걸로 부하들과 회포나 푸시게.”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런 걸 다 주시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대인.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갑니다.”
험상궂은 얼굴과 달리 만면에 웃음을 띠며 사내가 회의실을 나갔다. 유격장 파새. 성격이 화통하고 용맹하고 무예가 출중한 자로, 전투의 선봉장으로 손색이 없는 인사였다. 다만 음주가무를 즐기는 두주불사에다가 호색한이며 지략이 없는 것이 단점이었다. 양호는 그런 그가 사냥개로 부리기에는 적당한 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경리. 장 대인께서 오셨습니다.”
유건을 쓰고 비단도포로 몸을 감싼 중년의 남자가 보무도 당당히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양 대인. 오랜만입니다.”
포권의 예를 취하며 사내는 양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장대인. 어서 오십시오. 원로에 평안하셨는지요?”
양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에게 예를 표했다.
“양 경리 덕분에 조선의 산천을 잘 유람하고 왔습니다.”
“별말씀을. 자. 좌정하시지요.”
양호는 자신이 앉은 상석을 남자에게 권했다. 그는 그런 양 경리의 모습에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양 대인. 어찌 이러십니까? 소인과 같은 장사치에게 대인의 자리를 양보하시다니요.”
“장사꾼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내각수보를 배출한 대상의 인척 분이시니 윗자리가 당연하지요.”
“허허. 경리도 참. 그럼, 마주 보고 앉는 걸로 하십시다.”
결국.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상대편을 바라보고 앉은 두 사람이었다. 조선의 임금과도 대등하게 자리하던 양호가 일개 상인에게 쩔쩔매고 있다. 반상의 구별, 특히 사농공상의 신분차이가 절대적이었던 당시 조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중국에서 상인들이 사대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곡절은 송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원을 지배하던 당나라가 무너진 이후 오대십국의 혼란한 대륙을 통일한 송의 태조 이자 무장 이였던 조광윤은 장수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의 폐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문인들을 등용하여 새 왕조의 기틀을 다 잡았다. 이러한 문치주의는 송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사상이었다.
과거가 입신양명의 유일한 기회가 되자, 송의 사대부들은 너도나도 과거시험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최초시험인 동시를 거처 생원이 되고, 향시를 거처 거인이 되면 비로소 관리임용시험인 회시를 수도인 개봉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진사가 되는데 진사들은 황제 앞에서 전시를 치러 장원과 방안(2등), 탐화(3등) 등으로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과거로 등용되는 사대부의 수는 소수였으니, 낙방한 선비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유자들의 빈곤이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일부 유학자들은 사대부들도 다른 일로 먹고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신분관계에서 벗어나 모든 이의 직업이 평등하다는 관점을 내놓았다.
이러한 사회적 조류 속에서 사대부들은 농업과 공업보다 쉽게 전직할 수 있는 상업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남송시대에는 반대로 상인들이 출사를 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렇게 사대부와 상인이 혼재된 사회현상을 사상합류라고 한다.
이후 원대에 이르러 지배층인 몽골족이 한족을 노예계급으로 취급하고 유자를 창녀보다도 못한 직급으로 대우하자(유생보다 취급이 낮은 직업은 거지밖에 없었다!) 이들은 상업에 전폭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한족이 다시 중원의 패자가 된 명나라 때에는 사대부가 상업에 활동하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당시 명주 오 씨의 족보(명주오씨가전)에는 이런 글귀가 있을 정도였다.
『9세에서 15세까지 공부를 시켜보고 가능성이 있으면 전폭적인 지원을 하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일을 시키도록 하라. 상업은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직업으로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러다 보니 상인가문에서 조정에 출사하여 집정 대신이 되는 경우도 흔했다. 일례로 하동지방의 염전을 장악한 왕씨 집안의 왕승고는 명의 병부상서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포주의 장씨 집안에선 일족인 장사유가 예부상서를 지냈고 만력제 연간에는 장사교가 명 조정에서 최고의 자리인 내각수보(명은 특이하게도 재상의 직책이 없었는데 재상의 권한을 내각대학사라는 기구에 위탁했다. 수보는 내각대학사들 중에서 으뜸인 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정식 명칭은 내각대학사수보 이었으나 보통은 줄여서 내각수보로 불리었다.)의 위치에 이르렀다.
양호가 쩔쩔매던 장대인은 이 내각수보를 배출한 장씨 집안의 친족 이였던 것이다.
안부인사격의 실없는 말들이 양측에 오가는 사이에 차가 나왔다. 양호와 장대인은 다향을 즐기며 환담을 이어갔다.
“장대인. 조선의 장시를 둘러보시니 어떠하더이까?”
“전시인 것을 참작해보더라도 너무나 생기가 없더군요. 사대부가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미개한 사고를 하고 있으니 조선왕이 그토록 외치는 부국강병은 공염불인 셈이지요.”
“그렇지요. 그래도 조선의 군왕과 신료들은 우리 명군 앞에서는 죽는시늉도 하니 통솔하기에는 좋습니다. 뭐. 자기들끼리는 내 험담도 하는 걸로 알지만, 자리에 없으면 나라님도 욕본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하하.”
장대인은 그런 양호를 보며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양 경리. 오늘 제가 도찰원을 방문한 것은 내 대인께 청이 있어서요.”
양호는 느슨하던 자세를 바로잡고는 장대인 쪽으로 귀를 쫑긋거렸다.
“경청하겠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대인”
“흠. 다름이 아니오라, 곧 왜놈들과 큰 전투가 있을 것이라 들었소이다. 이런 거사에 저희 상단에서 천장과 천군을 후원하고 싶으니 허락을 해주시구려.”
찰나의 순간에 양호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졌다. 허나 순식간에 표정관리를 한 양호는 화들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거절의 예를 차리기 시작했다.
“아니 됩니다. 대인. 존귀한 내각수보의 일족께서 어찌 험한 전장의 일에 관여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천부당 아니 만부당한 일입니다.”
“허허. 저희 산서상인들은 상단의 말석에 자리할 때부터 ‘의를 행하여야 재물이 생긴다.’고 배워 왔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 익힌 것을 실천하고자 하니 양 대인께선 어여삐 여기시어 받아 주시지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대 명국 흠차경리조선군무겸 도찰원우첨도어사 양호는 대인의 의행을 기쁘게 받아드릴 것을 약조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대인.”
잠시 잠깐 감추었던 양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상대가 풀어진 틈을 타서 장대인은 숨겨왔던 발톱을 꺼냈다.
“참. 경리. 지나가는 말을 듣자하니, 왜적들을 조선에서 쫓아낸 연후에 전후처리 문제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안 그래도 오늘도 제장들을 소집하여 그 문제에 대해 논의해보았지만, 쉽게 결론이 서지 않더이다. 상재가 없는 무장들만 모여서 그런지. 영 신통치가 않습니다.”
인상을 찌푸리는 양호를 보며 장대인은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그와 관련해서 소생이 한 말씀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대인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조선의 황해안과 남해안에 대규모의 염전사업을 일으키는 겁니다. 이들 조선의 바다는 물이 맑고 연중기온이 높소. 게다가 일조량 또한 높아서 염전을 한다면 큰 수익이 날 수 있소이다.”
“북방의 장로염전을 움직이시는 장 대인이 그리 보셨다면 확실하겠지요. 허나 조선에서 염전과 관련된 것은 종친들에게만 특별히 불하하는 것으로 아는데, 반발이 있을까 저어됩니다.”
“왕실 종친들이 하는 소규모 염전은 놔두고 우리 중원의 선진기술로 새로 큰 염전을 열면 됩니다. 나라를 다시 세워 줬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 우리 대 명국으로도 체면이 서지요.”
여기까지 듣던 양호 또한 녹록한 자가 아니었기에 장대인의 본심을 떠보는 회심의 한 수를 던졌다.
“아. 물론 조선에 생기는 염전의 관리는 유능한 장대인의 상단이 전적으로 맡아야 하겠지요?”
일순간 찾아온 정적. 두 사람은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파안대소를 지었다.
“하하하”
“하하하”
멋쩍게 웃는 장 대인을 보며 양호는 생각했다.
‘흠. 개중법의 부활인가? 누가 산서상인 아니랄까 봐…….’
당시 명대의 주요 상인집단으로는 산서성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산서상인과 절강, 안휘 등 강남지방에서 발호한 휘주상인이 있었다.
이중 산서상인은 산서 지방을 진이라 표기하여 불러서 진상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개중법’으로 치부의 기초를 쌓았다. 개중법이란 명나라 초기 최대 적국이었던 몽골과 근접한 명의 국경 주둔지에 군량과 생필품을 운반해 오면 전국의 염전에서 소금과 바꿀 수 있는 ‘염인’이란 교환권을 주는 제도였다. 북방지역과 가까웠던 산서상인들에게는 천일재우의 기회였다.
그러나 라이벌인 휘주상인이 등장하면서 산서상인들은 큰 타격을 입는다. 1492년 호부상서 엽기는 개중법을 폐지하고 절색제로 바꾸도록 건의하였는데, 절색제는 상인들이 북방의 군영까지 가지 않아도 소금관리와 운반을 담당했던 염운사에게 은을 내고 염인을 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강남의 휘주상인에게 불리했던 지리적 위치가 없어진 것이다.
장대인의 장씨 집안은 진상으로 대대로 소금 장사가 유명한 집안이었다.
이후 시시콜콜한 덕담들이 오가고, 양호와 장대인은 자리를 파했다.
“오늘의 환담은 즐거웠습니다. 양 경리. 곧 상단에 중원의 빼어난 기녀들이 들어오니. 흐뭇한 자리 한번 주선하겠습니다.”
“허허허. 이리 소인을 살펴주시니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 장대인. 사저로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내. 호위 무관들을 따로 붙여 드리리다.”
서로 예를 취하고 장대인은 뒤 돌아 자리를 떠나려던 순간에 양호는 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장대인. 저…….”
싱긋 웃으며 장 대인이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양 경리.”
주저하던 눈빛의 양호는 결심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내각수보께 말씀 좀 잘 해주십시오.”
“도당은 경리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찰원을 나서는 장대인의 시선에서 멀어질 때까지 양호는 읍하는 자세를 풀지 않았다.
잠시 후.
사방이 고요한 도찰원에서 지필묵을 잡은 경리 양호의 손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대 명국 흠차경리조선군무겸 도찰원우첨도어사 양호가 대 명국 병부상서 겸 요동총독이신 형개 각하께 삼가 글월을 올립니다.
최우선적으로, 조선국 경상도 울산에 쥐새끼처럼 숨어있는 적장 가등청정과 그의 군사를 불시에 타격하여 간적 풍신수길의 왼팔을 잘라버리겠습니다. (이하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