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문제제기 2] 한국인의 사대주의적 전통에 관한 문제제기 <3>
게시물ID : history_173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추천 : 0
조회수 : 31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7/26 21:46:26

<문제제기 2-3> 혁명에 대한 인식과 문제점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예수의 혁명적 삶프랑스 혁명, 4·19혁명 같은 용어에서는혁명이라는 말을 자유롭게 쓰면서 현실의 삶에서 사회혁명’ ‘노동혁명이라는 말에는 왜 컴플렉스를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명백하다소위 단군이래 가장 악랄한 용어인빨갱이 콤플렉스’ 때문이다.


북한정권은 혁명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외세의 앞잡이로 정권을 잡았을 뿐이고그 후 샤머니즘적인 사대주의에 따라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을 뿐이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용어인 혁명을 죄책감으로 만드는 이 악랄한 소수의 지배자들을 어찌해야 하는가당연히 이 땅에서 유배시켜야 한다.


현재 지구는 이따위 인간들에 의해 정치·경제·문화·환경적으로 황폐화되고 있고민중들 다수는 자본이 쳐놓은 포획 장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프랑스의 어느 학자는분노하라는 책을 써서 세계에 그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통일신라 이후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분노’ 그자체의 과정이며그것이 1000년이상 누적되며 한(恨)'의역사를 이루어왔고많은 고전 및 현대문학들이 그 한의 정서를 풀어내어 한민족의 정서적 유전자로 재해석한 내용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이제는 분노가 아니라 그 분노의 암덩어리인 한()을 깨부수는 혁명을 해야 한다.

그 혁명의 주체는 이 땅의 피지배 민중들이며 그들의 연대에 의한 에너지의 폭발만이 남아있다.

 


역사라는 말 자체는 추상적 개념이다.


왕조중심의 정치사는 무능한 지배층이 나라의 근간인 생산대중을 어떻게 기만해 왔는지에 대한 이념의 역사일 뿐이다반면 농민수공업자상인등의 생산계층 중심의 경제사문화사풍속사 등은 추상적일 수 있는 역사내용을 구체화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역사라는 추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역사관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토록 칭송해 마지 않는 세종대왕의 치세 역시 이념의 역사일 뿐이다왕조 중심의 역사관은 이제 참고자료로 존재해야 한다적어도 오늘날까지 한민족의 역사를 길게는 4350구체적으로는 통일신라 이후 1350년 유지시켜준 이 땅의 이름없는 민중들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역사관의 정립이 시급하며 그래야만 지금 현실을 사는 생산대중들이 자신들의 노력에 걸맞는 사회적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21세기에도 조선시대의 이념정치가 연속되고 있는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생존하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정규직·비정규직을 포함한 생산대중과 집안의 살림을 책임진 노동 아주머니들그리고 묵묵히 정신적 굴욕을 감내하는 고학력 인턴·알바생들이다.


따분하게 반복되는 역사가 나의 생존을 지켜주지 못하는데 누구에게 나의 정체성을 보장받으며 나의 생존을 지켜나갈 수 있겠는가이토록 선량한 백의민족의 후손에게 최저임금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고 끊임없이 노예적 굴종을 강요하는 재벌들과 그들이 마음놓고 민중을 착취하도록 공권력을 동원하여 보장해주는 소수의 정치적 훈구파들을 이 땅에서 유배시켜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통적 사대주의의 굴레를 무조건 벗어나야 한다.


2014년인 지금 이땅의 대중들은 정치권력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노동에 대한 을 내면화시켜 삭이고 있을 뿐 결코 1% 착취자들을 용서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이제 곧 권력을 틀어 쥔 악마들이 스스로 자멸할 때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동안 끊임없이 짓눌렸던 인내심을 폭발시킬 것이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사대주의는 21세기 사회질서에서도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자기 땅의 민중들을 길거리에 버려진 애완동물 보듯하는 기득권 정치세력(이땅에는 단 한번도 진정한 보수가 생긴 적이 없다)과 탐욕스런 소수 자본가들의 치떨리는 모습을 보며 이 땅의 민중들이 언제까지 인내심을 내면화 할 수 있겠는가그것은 소위국민성이라는 것과도 상관없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상품은 전 세계에 수출하는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 사고는 한반도의 남쪽에 갖혀 상식과 정의에 입각한 대중들을 쥐어 짜는 일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가교육은 보편이다.

복지사회는 필연이다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자녀교육은 사회가 맡아야 한다.


일자리의 개수가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투자했던 모든 경제적 비용에 걸맞는 편익을 누릴 수 있는 차원 높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유기농업 중심의 소농형 농업구조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금수강산의 국토도 살리고 도시인들의 인구 분산과 학생들의 안전한 먹거리 확보는 물론 곧 다가올 식량확보 전쟁에도 대비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왜 이 나라는 미국 경제학 박사가 넘쳐나는데도 미국에서 배운 지식을 소수 자본의 돈놀이에만 이용하려고 발버둥 치는가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학은 그 근본이 경제학적 지식이 아닌 그 사회의 경제 시스템에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는가어차피 미국의 경제 금융시스템에서 살지 않을 바에야한국에 왔으면 한국 경제에 맞는 창의적 정책을 고안해야 옳지 않겠는가증권투기외환거래파생상품개발 등 한국의 경제실정에 시급하지 않은 문제들에 몰두하느라 막대한 국부를 지금도 해외로 유출시키며 국민들을 쪽박차게 만드는 것 또한 현대판 사대주의 그 자체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선현들의 인식이 지금에서 보아도 일면적이라고 느낄 수만은 없게 되었다철학자 니체는 이토록 허무하게 반복되는 역사의 영원회귀성을 긍정적이고 창의적으로 극복하는 사람을 초인이라고 규정했는데 정작 니체 자신도 오랜세월 정신질환에 시달렸다고 하니 21세기 대한민국의 반복되는 역사적 허무성을 정신병에 시달리지 않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릴 뿐이다.

하지만 니체의 긍정은 새로운 것을 향한 부정일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현재 이땅의 민중들 또한 오랜세월 종교적 신앙을 내재화 하면서 형성된 일종의 샤머니즘적 사대주의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이사회의 만연화된 갑·을관계,사회가 해야할 책임마저 가족단위로 떠맡겨져 모든 사건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으로 돌려내는 폐쇄적 사고구조 등)’의 잔재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앞으로는 천부인권에 근거한 인권선언의 정신에 따라 더 이상 노예적노동(비정규직·알바)과 노예적정신(사대주의)을 내면화하여 수용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자생적으로 자기혁명을 하며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길이 남아 있는 것이다.


출처 : k-potential.net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